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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조, 원작 무시 太多

급전개 有

 

 

옛날에는 인어가 살고 있었대, 지금부터 내가 할 이야기는 인어가 살고 있었을 때, 일본에서 생긴 한 사람과 인어의 사랑이야기야.

바다 깊숙한 곳에는 인어들의 왕국이 있었는데. 물고기들과 거북이들을 신하 삼아 바다 속에 군림하는 인어들의 왕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딸이 있었어, 그의 딸은 머리색과 꼬리색이 화려했는데, 색이 마치 저녁노을 같은 한번 보면 잊히지 않는 색이였고, 눈은 짙은 녹음처럼 녹색이었다고 해, 인어공주는 여자 인어들 중에서도 예쁘고 아름답기에 세 손가락에 꼽혔는데, 다른 종족에게도 호감을 가지고 배려하는 아주 예쁜 공주였대, 그 공주의 이름도 아름다운 옥이라는 뜻의 ‘유’였데, 신기하니? 인어인데도 글자를 알아서 말이야. 사실은 바다나 보석 관련된 글자는 옛날 옛날에 신들이 생기고 인간이 생기고 난 직후에, 인어가 알려준 거래, 우리와 친하게 지내요-. 하고 말이야. 근데 사람들이 글자를 알고는 모르는 척했대, 그래서 인어들은 상처받고 깊은 바다로 숨은 거고 말이야.

아차차, 이야기가 딴 데로 샜네. 이제 인어공주에 대해 조금 알았으니 안데르센의 인어공주 때문에 가려져서 아무도 모르는 또 다른 인어공주 이야기를 들려줄게.

 

*

옛날에, 그렇다고 아주 옛날은 아닌 그런 옛날에 일본에서 가까운 바다 밑에 인어가 살았습니다. 인어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뽑으라고 하면 십중팔구로 공주를 뽑았습니다. 인어들의 심미안은 매우 까다롭고 정확하고 또 매우 다르기 때문에 한명 이상이 겹친다는 것은 매우 좋은 뜻이었습니다. 인어공주는 그렇게 참 아름다웠습니다. 인어공주의 나이가 14세 되는 날, 인어공주는 물 밖에 나가기로 결심 했습니다. 인어들은 일 년에 한번, 14세부터 자신의 생일 때 물 밖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어공주는 찬란한 햇빛 아래로 나가는 그날, 인어공주는 그 곳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찬란하게 빛나는 햇빛과 깨끗한 바다와는 다른 푸른 하늘 그리고 조금 멀게 들려오는 사람들 사는 소리. 그 중에 제일 높은 성. 육지의 모든 것이 그녀의 눈과 마음에 새겨졌고, 그 날 이후로 인어공주는 다음 생일을 기다렸습니다.

찬란한 햇빛과 푸른 하늘을 다시 볼 그날을 말입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인어공주는 녹음을 담은 눈을 감았다가 뜨며 다시 한 번 그 찬란한 햇빛과 푸른 하늘을 보기를 기대하면서 물 밖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습니다. 찬란한 하늘과 푸른 하늘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어두컴컴한 먹구름만이 하늘을 꽉 메우고 있었습니다. 먹구름 사이에는 파란 번개가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인어공주의 눈이 순간 크게 떠졌습니다. 먼 바다에서 큰 배 하나가 육지로 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어공주는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왕의 말을 잊고 말았습니다.

 

 

‘절대, 절대로 인간의 곁에 가지 말거라. 인간들이 너를 눈치 채지 못 하더라도 말이다.’

 

 

밝은 빛이 선체에서 새어나왔다. 하하 호호 웃는 소리가 가식적인 파티. 억지로 웃으며 다들 저의 안위와 입지를 굳히기 위해 노력하는 자리. 인어공주는 이내 선체에서 벌어지는 파티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다시 바다로 돌아가려는 그때, 인어공주의 귀에 낮은 목소리가 꽂혔다. 자신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그런 낮은 목소리. 그는 누구보다 화려했으며 그 누구보다 빛났다.

 

‘멋있어…….’

 

인어공주는 그가 마음에 들었다. 저를 돌아보게 한 낮은 목소리도, 큰 키도, 그리고 사나워 보이는 잘생긴 얼굴도, 모든 것이 쏙 들었다.

 

우르릉- 콰쾅-

천둥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인어공주는 화들짝 놀라 바다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첨벙하고 누군가가 물에 빠지는 소리가 나자 그는 선체의 난간으로 걷듯 뛰어갔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저 그가 천둥이 오는 것이 걱정되어서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분명. 여인이었다. 여인이 있었어.’

 

그렇게 운명의 시간은 다가온다. 결국 그의 파티는 거센 천둥과 파도 때문에 예정했던 것보다 일찍 막을 내리게 되고, 높은 파도가 그의 배를 집어 삼킬 듯이 몰아쳤다. 결국에는 나무로 된 선체는 거센 파도를 견디지 못해 부서지고 말았다. 거센 파도는 사람들을 바다의 품으로 감췄고, 그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한편, 인어공주는 어두운 바다의 표면을 올려다보며 불안해했다. 그리고는 결국

 

와지끈, 풍덩-

 

아까까지만 해도 불빛을 내며 떠있던 배가 결국에는 거센 파도를 견디지 못하고 부서져 내렸다. 인어공주는 그리고 멀리서 가라앉는 그를 보게 되었다. 인어공주는 심장이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다시 인어들의 왕이자 그녀의 아버지인 인어왕의 걱정 어린 명령의 옷을 입은 부탁을 잊고 그를 향해 헤엄쳐 갔다. 그는 긴팔과 다리를 휘저으며 다른 사람들을 구해 선체가 부서져 생긴 벌판지에 걸어 놓고선 본인은 힘이 빠져 가라앉고 있었다.

인어공주는 가라앉은 그를 잡으려 노력했지만 그의 가라앉는 속도가 인어공주가 헤엄치는 속도보다 미미하게 빨랐다.

손이 아쉽게 빠져 나가길 한 번, 두 번. 마침내 세 번째에 인어공주는 그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자신의 손보다는 한 마디하고도 반 마디는 더 크고 두꺼운 손.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선 잡아당겨 그의 팔이 인어공주의 어깨에 걸쳐지도록 하였다. 그의 키가 인어공주보다 훨씬 큰 바람에 인어공주의 몸은 평소보다 훨씬 무거웠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이유로는 인어공주의 머릿속에는 그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인어공주의 노력에 하늘이 감복한 것인지 곧, 육지가 인어공주와 그를 받아주었다. 인어공주는 기절한 그를 육지에 눕히고는 한숨을 돌렸습니다. 원래 인어들은 인간이 자신들의 터전에서 죽더라도 곁에 가서는 안됐다. 그 사실을 뒤늦게 머리에서 일깨운 인어공주는 당황해서 뒤에서 그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일어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는 상의를 탈의하고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은 저녁놀의 닮은 빛의 머리칼을 가진 여인의 손목을 잡았다. 여인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쓰고 그를 돌아보았다. 녹음을 담은듯한 눈에는 설명을 요구하는 듯 했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녹음을 담은 눈과 저녁놀을 닮은 머리칼의 그의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그의 이름을 부르는 신하의 부름에 잠시 고개를 돌린 순간, 그녀는 사라져버렸다. 분명, 풍덩하는 소리가 났었던 것 같은데. 그 여인을 닮은 저녁놀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가슴이 막 뛰어서 곧 있으면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다. 몸 안에서 쿵쿵 뛰는 심장을 손으로 가리며 인어공주는 큰 숨을 들이 내쉬었다. 얕은 바다에서 보는 하늘의 바닷놀은 무척이나 신기했다. 무척 저의 머리색과 같아서 그와 같이 보았음 좋았다 싶었다.

그리고는 인어공주는 자신의 생각에 자신이 놀라 지레 겁을 먹고 말았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도망치기 전에 들었던 그의 이름을 생각했다.

 

‘니지무라.....슈조’

 

인어공주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저 얼굴하고 이름이 아는 것의 다였지만, 인어공주는 그것만으로도 기뻤다. 인어공주는 쿵쿵 뛰는 가슴은 고이 안으며 그렇게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자신의 집인 용궁으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공주가 무엇을 했는지 궁금했던 왕은 공주를 불러 하루 동안 무엇을 했는지 물었다. 공주는 하늘이 어두워 해안가에서 놀았다, 들키지는 않았으니 걱정 마시라. 그렇게 말했다. 거짓말을 한 공주의 가슴은 언제 들킬지 몰라 심하게 널뛰었다.

 

그는 도저히 좋아지지 않을듯한 하늘을 자신의 방 창문을 통해 보았다. 그는 저녁노을 같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을 생각했다.

 

‘요정일까. 그것도 아니면 무엇일까’

 

그는 창에서 시선을 돌려 인어가 새겨진 태피스트리를 보았다. 야사에서 바다에 관련된 글자를 전해줬다 하는 인어는 환상의 생물이었다. 그는 인어에 관련된 정보를 떠올렸다. 하반신이 꼬리다. 누구도 본 적이 없어 환상의 생물이다, 바다나 보석에 관한 글자를 알려 주었다.

 

그리고

 

“...바다에 산다.”

 

없어진 후, 들린 풍덩하는 물소리. 만난 곳은 해안가. 그는 좋은 머리를 굴려 금세 답을 도출해냈다. 그녀는 인어였던 것이다. 그러면 폭풍이 일어나기 전, 선체에서 본 여인도 이해가 된다. 그녀도 인어인 것이다. 그는 도출된 답을 들고 매우 기뻤다. 하지만 금세 또 고민에 빠졌다. 인어라면 바다에 산다. 그것도 아주 깊은 바다에, 어떻게 다시 만나겠는가.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처음 봤을 때의 그 저녁노을 같은 머리카락과 짙은 녹음을 닮은 큰 눈. 그리고 꽤 아주 미색 짙은 얼굴까지. 매우 화려한 생김새이지만 그 모든 것들이 어울려 묘한 분위기 까지 내었던 것이다. 그는 저도 모르게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녀의 모습이 망막 안에 새겨져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는 조여오는 심장을 잡고 어렴풋이 이것이 사랑이구나, 하고 알아챘다. 높은 곳에 있는 자로서 이런 감정을 느낄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기대하지 않았을 때 이 감정을 느꼈다. 이리 황홀한 감정이던가. 그는 도저히 지워지지 않는 여인의 형상을 보며 잠에 들었다.

 

공주는 부드러운 이불에 볼을 부비며 그를 생각했다. 그는 멀리서 본 것보다 훨씬 잘생겼었다. 그녀는 작은 손을 쥐었다 폈다를 몇 번 반복했다. 운동을 하는지, 타고난 건지 하는 근육과 뚜렷한 이목구비와 심해의 색을 닮은 머리와 눈 색까지. 바다에 속한 이로서 그렇게 부러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침대에서 버둥거리며 그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가시지 않아 공주는 귀까지 빨개져 있었다.

 

‘이름이라도...알려주고 올걸 그랬나...’

 

해가 다시 얼굴을 비추자 공주는 몰래 해안가로 나갔다. 하늘은 언제 어두웠냐는 듯이 맑고 화창했다. 공주는 어제 그와 헤어진 해안가로 다가갔다. 해안가에는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인어공주는 아무도 없을 거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어딘가가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그는 스쳐지나갈 운명이었던 것일까 공주는 해안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커다란 바위는 한사람이 겨우 앉을 만한 크기에 자리만 있었습니다. 공주는 겨우 바위 위로 올라가 바다를 향해 앉았다. 자신의 어머니는 넓고 넓어서 끝이 보이지 않았다. 저 끝에는 전혀 만나지 않을 것 같은 하늘이 만나는 그 지점이 너무나 멋져보였다. 잔잔한 물결이, 파도가 만들어내는 소리가, 안에 있었을 때는 다른 모습이. 마치 저를 안심시키는 것만 같아서 너무 좋았다. 소금기를 담은 부드러운 바람은 분명 육지에서만 느낄 수 있으리라.

공주의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공주는 고개를 돌렸다. 그가 서 있었다. 놀란듯한 눈이. 저를 잡으려고 다가오는 손이, 살짝 찡그리는 표정이. 그 마저도 좋아서, 돌아가는 걸 잊었다. 그렇게 그와 공주는 다시 만났다.

 

그 곳에 있을 줄은 몰랐다. 그저 오늘은 날씨가 좋기에 그리고 어제 생각이 났기에 그녀의 생각이라도 흐리게 하지 않고 싶어 갔던 것인데, 그 곳에는 그녀의 발자국이 아니라 그녀 본인이 있었다. 드넓은 바다를 보며 쓸쓸한 등을 내보이며 그렇게 앉아 있었다. 내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거슬렸던 것인지, 그렇게 뒤를 돌아본 그녀의 얼굴은 어두웠을 때 본 것보다 훨씬 아름답고 빛이 나서, 인어보다는 천사 같았다. 그렇게 그녀는 나에게로 왔다.

 

 

“당신의 이름을 말해줘”

“아케치 유...”

“니지무라 슈조.”

“....알아, 어제 들었어.”

유, 유, 유....

그는, 아니 슈조는 입안에서 유의 이름이 쉼 없이 굴렸다. 바위에 앉아있는 유가 아무런 행동도, 말도 하지 않는 슈조가 걱정되어 고개를 갸웃할 때까지 그렇게 슈조는 유만을 바라보며 가만히 있었다.

그저, 평범할 거 같았던 하루가, 너를 만나서 전혀 평범하지 않은 하루가 되었어. 너를 만났기에 하루뿐인 유일한 하루, 특별한 하루. 너를 가지고 싶어, 너를 나 혼자 가지고 싶어, 너를 나

 

혼자

 

슈조는 제 손에 잡혀 있는 작은 손을 보앗다. 저와는 달리 하얗고, 작은 여인의 손. 저에게 잡은 손을 유가 조심스레 빼내엇다.

 

“너무 오랜 시간 밖에 나왔어. 아버지께 걸릴지 몰라. 나중에 봐야할거 같아. 괜찮아?”

 

자신이 혼날 위험에도 그녀는 타인을 먼저 생각 하는구나.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 유는 본인이 귀여운 것을 알고는 있는 걸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봐, 라는 말과 함께. 그녀는 나의 말이 끝나자 나의 뺨에 입술을 맞추고는 그대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나와 같이 온 이들은 유가 인어인 줄 늦게 깨닫고는 저들끼리 소근거렸다.

 

“그대들의 입이 가볍지 않음은 내가 알고 있다. 오늘은 그저 안개가 많이 끼어 헛것을 본 것이다”

 

그들은 눈치가 빠른 것들이니 이 정도 말하면은 유가 저들의 입에 넘나들을 사람이 아닌 것 정도는 알겠지. 나는 바다에서 등을 돌렸다. 다시 만날 것이 확실하기에, 웅성거리는 그들의 입을 다물게하고는 얼른 가자며 재촉했다. 궁시렁 거리는 그들은 저들보다 신분이 높은 나의 말에 거스를 수 없었다.

 

무슨 하늘이 하루걸러 하루로 나쁜 것인지, 장마도 아닌 기간에 이렇게 날씨가 안 좋으니 이상했다. 슈조는 그저 바다에 사는 유가 생각나 걱정될 뿐이었다. 밤에도 새벽에도 창문을 부술듯한 바람의 세기에 슈조는 계속 쉼없이 유의 생각이 났다. 아무리 깊은 바다에 산다지만은 심한 바람이 불어 걱정이 되었다. 늦게까지 유의 걱정을 하돈 슈조는 결국 늦은 새벽 겨우 잠에 들었다.

3일 동안 계속 된 험상궂은 날씨에 슈조의 기분은 최악이었다. 나쁜 날씨 덕분에 유를 만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고, 공기는 꿉꿉했다. 바닥을 뚫고 들어가는 기분을 슈조는 억지로 유의 생각을 하며 끌어올렸다. 그래도 오늘은 점점 빗줄기가 가늘어지니 내일은 만날 수 있으리라, 하는 생각을 하며 슈조는 유를 생각하며 잠에 들려하였으나, 늦은 시각 큰 소리를 내며 자신의 방으로 쳐들어온 이들에 의해 하지 못했다. 그들은 소란을 떨며 슈조를 해안가로 이끌었다. 그들이 씌워주는 우산 속에서 슈조는 해안가에서 쓰러진 유를 볼 수 있었다. 분명 이들은 3일전 저와 만난 유의 대략적인 모습을 기억했기에 다른 사람 대신 저를 불러오는 것을 택한 것이었다.

어째서 깊은 바다에 살고 있는 유가 해안가까지 와서 쓰러져 있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유의 곁에 다가간 슈조는 유의 얼굴하며 팔하며 꼬리 할 것 없이 난 생채기에 해안가에 휩쓸려 온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슈조는 자신의 자켓을 유에게 덮어주고는 망설임 없이 유의 허리와 인간이었다면 무릎으로 추정되는 부분에 팔을 집어넣어 들어올렸다. 기절한 듯 추욱 늘어진 유는 슈조가 하는 그대로 따라왔다. 슈조는 품에 앉은 유를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유리 공예품을 다루는 것처럼 조심조심 들어 자신이 사는 곳으로 데려왔다. 기절한 유를 마땅히 둘 곳이 없어 슈조는 욕조에 물을 가득 채워 그 곳에 유를 내려놓았다. 흰색이 주를 이루는 욕실에서 다양한 색채를 가진 유는 독특하고 튀어보였다. 슈조는 기적한 유를 내려다보았다. 아무리 바람이 거세도 깊고 깊은 바다에서 사는 인어가 파도에 휩쓸려서 해안가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다

 

몇시간 뒤, 유가 정신을 차렸다. 유는 오늘도 날씨가 안 좋은지 확인하러 수면 위로 올라왔다가 이런 봉변을 당한 것이었다. 결국에는 저를 만나려고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런 봉변을 당한 것이 아닌가, 슈조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엇인가 저의 잘못인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말갛게 웃는 유를 슈조는 착잡하게 내려보았다.

 

유는 빠른 속도로 육지에 적응해갔다. 마치 하반신이 꼬리만 아니었다면, 유는 진즉에 슈조의 아내 자리를 꿰차지 않았을까하는 소문이 궁에서 돌았다. 유에게는 한 나라의 왕자가 아닌 니지무라 슈조라는 사람으로 있고 싶었던 슈조는 그 소문을 듣고 매우 화를 냈다. 하지만 그 소문을 듣고서는 저 혼자 귀를 붉혔다. 그 사실은 아무도 모르는 그 혼자만의 비밀이었다.

 

태평하게 궁중 생활을 하고 있던 유에게 손님이 왔다. 바로 고향은 바다에서 온 손님이. 하반신이 물고기인 유에게 바다에서 자신을 찾는 손님이 왔다기에 매우 기뻐했다. 하지만 그 손님은 마녀였다. 남며노소를 불문하고 저의 마음에 들면 삼킨다는 그 무시무시한 마녀였다. 유는 떨려오는 손을 맞잡아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마녀와 마주했다.

 

“다리, 필요해?”

 

반투명한 검보라색의 베일 너머로 마녀는 그렇게 물었다. 유는 어리둥절하면서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녀는 붉은 입술을 올려 웃으며 물약을 하나 내밀었다.

 

“마셔, 그러면 인간의 다리가 생길 거야”

 

유의 손에 물약 하나를 쥐어준 마녀는 바다 내음만을 남기고는 사라졌습니다, 마치 환상처럼.하지만 쥐고 있는 물약이 가지고 있는 마녀의 온기만이 이건 환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유에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유는 망설임 없이 그 물약을 들이켰습니다. 그 물약은 조금 씁쓸했고, 다리에서 느껴지는 찢어지는 고통으로 인해 유는 기절했습니다.

그리고 깨어난 유에게는 꼬리대신 사람의 다리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의 다리가 인간의 다리가 된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된 슈조는 고백을 했고. 둘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앵커 1
앵커 2

 

 푸른 용기사 에스티니앙은 하루가 멀게 커르다스 서부고지에 있는 강으로 향했다. 본래 용사냥을 하러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남자이기도 했고 커르다스 서부고지로 다른 곳에 비해 자주 가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서부고지로 향하였고 그의 손에는 언제나 꽃다발이 쥐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의문을 품었다, 그 에스티니앙이 꽃다발이라고? 꽃이라고는 ‘땅에서 피어나는 식물 중 예쁜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던 그 에스티니앙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꽃다발을 들고 커르다스 강으로 향할 때면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져 있었고 아무도 그런 에스티니앙의 미소를 본 적이 없었기에 경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서부고지로 갈 때마다 꽃다발을 들고 가기도 했지만 음식을 챙겨 들고 가기도 했다. 용사냥을 하다 배가 고프면 먹을 음식이 필요하니까, 그렇게 납득을 했지만 커르다스의 추운 날씨에 왜 굳이 차가운 음식을 싸가는 것인가? 따듯한 음식도 몇 개 씩 있었지만 주를 이루는 것은 차가운 음식뿐이었다.

 

 그 결과 사람들은 몇 가지의 가설을 내놓았고 그 중에 제일 많이 나왔던 말은 에스티니앙이 연모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라는 말이었다. 대부분은 그것을 부정했지만 에스티니앙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렇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꽃다발에는 언제나 여러 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정갈하면서도 예쁘게 정리 되어 있었고 그의 품에 있는 차가운 음식들은 차가움에도 불구하고 맛있었다. 언제나 꽃다발과 음식만 들고 가던 에스티니앙은 어느 날은 작은 상자를 들고 커르다스 서부고지로 향했다. 그 정체를 에스티니앙의 친구인 아이메리크에게 물었음에도 아이메리크는 자신도 모른다며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그 날 보았던 에스티니앙은 그 누구보다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었으며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이미 말했다, 다시는 그런 미소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그 날 이슈가르드로 돌아온 에스티니앙은 아이메리크에게 제 왼쪽 손에 끼어진 반지를 자랑하며 이리 말하였다. 연인이 생겼다, 라고. 그 말을 들은 그 누구보다 놀란 것은 아이메리크 였으며 그 말이 불이 번지듯이 퍼지고 퍼져 이슈가르드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알 수 있는 사실이 되어버렸다.

 

 ***

 

 에스티니앙에게 연인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이슈가르드 전체로 퍼지며 사람들은 이런 의문을 표했다. 커르다스 서부고지는 사람이 살만한 곳인가? 커르다스에 거주는 사람들이 몇몇 있지만 그들은 일 때문에 그곳에 머무르는 것일 뿐이지 실질적으로 산다고 할 수는 없었다. 에스티니앙은 서부고지에 도착하면 언제나 강이 있는 곳에 갔기에 강에 집이 있는 것인가, 생각 할 수 있었지만 강 근처에는 위험한 생물들이 가득했다. 사람 홀로 사는 것은 무리에 가까웠다, 물론 강한 사람이라면 무사할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왜 험하고 춥고 물자도 부족한 서부고지인 것인가. 정말 에스티니앙은 서부고지에서 연인을 만나는 것이 맞는 걸까, 애초에 연인이 있는 것일까. 그런 의문 사이에서 누군가는 에스티니앙을 미행했지만 도중에 놓치거나 들켜 따라오지 말라는 말을 들을 뿐이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험악하여 미행을 하던 사람들은 모두 겁을 먹고 도중에 돌아오기 마련이었다.

 

 의문에 의문이 쌓이며 누군가가 아이메리크에게 이리 부탁했다. 에스티니앙에게 연인의 정체를 물어봐달라고. 아이메리크는 여러 명의 간곡한 부탁에 어쩔 수 없이 에스티니앙이 돌아오면 물어보겠다고 쓰게 웃으며 답했고 사람들은 환호했다. 아이메리크는 얼마 전 제 앞에 나타나 웃으며 연인이 생겼다고 말하던 에스티니앙의 미소를 잊지 못했다. 자신도 에스티니앙과 친구로서 지내며 그런 에스티니앙의 미소는 본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었다, 정말 행복하게 웃으며 반지를 보여주던 그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에스티니앙의 연인, 아이메리크는 다른 것은 몰라도 분명 에스티니앙을 그 누구보다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며칠 뒤 이슈가르드에 돌아온 에스티니앙은 오랜만에 제 친구를 보기 위해 아이메리크에게 들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아이메리크는 넌지시 말을 던졌다.

 

 “에스티니앙, 최근 연인과 잘 지내고 있나?”

 “아아, 잘 지내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최근 그녀의 몸이 나빠졌어.”

 

 에스티니앙이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그 말에 아이메리크는 쓰게 웃는 에스티니앙의 표정을 보았고 예상치 못한 말에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에스티니앙은 웃고 있었지만 그것을 웃는다고 할 수 없었다. 그것을 어찌 웃는다고 할 수 있을까, 연인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제게 반지를 보여주며 해맑게 웃던 것이 몇 주 전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런데, 연인의 몸이 나빠졌다고? 아이메리크는 제 자신이 더 멍해지는 것 같았다. 에스티니앙은 누군가를 좋아해본 적이 없다, 이성은 물론이며 동성마저 그저 사람으로 보고 있고 제 자신을 제외한 사람은 그저 아는 사람에 불가할 것이다. 에스티니앙은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을 꺼려했고, 연인이라는 존재는 더더욱 꺼려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푸른 용기사이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깊은 관계를 꺼려했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좋아하고 사랑한 여인이 병에라도 걸린 것인가.

 

 “의원에게는 찾아갔나?”

 “……….”

 “아니면 따로 먹는 약이라도 있는 건가?”

 “……….”

 “옆에 개인으로 봐주는 사람이라도 있는 건가?”

 “……….”

 “에스티니앙!!”

 

 아이메리크의 물음에는 에스티니앙은 묵묵히 찻잔을 잡고 있을 뿐이었다. 책상이 덜컹거리고 아이메리크가 고개를 푹 숙인 에스티니앙의 모습을 보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대체 이 남자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아이메리크는 그 동안 에스티니앙과 지내며 다른 사람들에 비해 친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힘든 일이 있다면 자신을 의지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에스티니앙은 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아이메리크가 한숨을 푹 쉬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 모습에 에스티니앙이 입 꼬리를 올려 웃으며 말했다.

 

 “아무도 없어, 그녀의 곁에는.”

 

 그 날 본 에스티니앙의 미소는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

 

 에스티니앙은 용들을 잡기 위해 커르다스 서부고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 때와 다름없이 커르다스 서부고지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녔고 최근 들어 잘 보이지 않는 용들에 투덜거리며 다시 이슈가르드로 돌아가려고 할 찰나였다. 깊은 커르다스 강에서 볼록눈과 놀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검은 머리카락에 하얀 머리카락이 선명하게 보였고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이 물에 흐트러지고 있었다. 그 날의 커르다스는 따뜻하다고 할 수 없었고 추우면 추웠지 따뜻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날씨에 윗도리를 벗고 볼록눈과 대화를 나누듯이 웃고 있는 여인을 보자니 에스티니앙 제 자신의 눈이 잘못 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스티니앙은 홀린 듯이 여인에게 다가갔고 여인은 볼록눈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다 에스티니앙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물속으로 몸을 감추어버렸다. 볼록눈은 에스티니앙의 등장에 황급히 자리를 피했고 그 자리에는 에스티니앙 이외의 그 누구도 있지 않았다. 그녀가 있었던 장소를 멍하게 바라보던 에스티니앙은 발걸음을 돌렸다. 대체 무엇이었을까.

 

 다음 날 에스티니앙은 그 장소에 한 번 더 들렸다. 또 나타날 것이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었지만 에스티니앙은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그 피부를 머리카락을, 그리고 자세히 보고 싶었다. 머리카락에 가려져 선명하게 보이지 않던 얼굴을. 어떤 모습이든 그저 보고 싶었다, 볼록눈에게 웃어줬듯이 자신에게도 웃어주었으면 했다. 그날 아침에서 밤이 되도록 그녀의 흔적은 눈꼽만큼도 찾을 수 없었고 에스티니앙은 발걸음을 돌렸다. 내일 또 온다면 그녀를 볼 수 있을까, 에스티니앙은 제 자신이 미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정확히 자신은 미쳤다, 얼굴도 모르고 슬쩍 본 여인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렇게 그 장소에서 기다리기만 하다니. 미쳤지 진짜. 그럼에도 에스티니앙은 다음 날, 또 다음 날, 며칠이 되도록 그 자리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실존하는지도 모를 그녀를.

 

 그녀를 기다린 지 며칠이 지나고 머리카락 한 올도 보이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지쳐가던 에스티니앙은 한숨을 푹 쉬었다. 이게 무슨 멍청한 짓인가. 그만 하자, 변태 같고 미친 놈 같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매달리는 건, 정말 미친 짓이라고. 에스티니앙, 포기해, 그녀가 다시 한 번 더 네 눈앞에 나타나는 일은 없을 거야, 영원히, 영원히 말이야. 그리고, 그리고…한 번 더 그녀의 얼굴을 보면 뭐 어쩔 건데? 보고 싶었다고 말하게? 초면인 사이인데? 만약 한 번 더 보게 된다면 너는 마음을 놓고 그녀를 포기 할 수 있어? 아니, 아니, 아니. 그럴 리 없겠지, 더 미련하고 구차하게 매달릴 거야. 한심한 새끼. 고개를 든 순간 제 눈 앞에 보인 여인의 모습에 에스티니앙은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것 같았다.

 

 “어…, 안녕하세요?”

 

 추운 커르다스의 공기가 한순간에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가슴 속에서 벅차오르는 이 감정을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는 걸까.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에스티니앙은 잠시 입을 뻐끔거리다 더듬더듬 목소리를 쥐어짜내었다.

 

 “나는 에스티니앙이다, 너는 누구지?”

 “…페실리아예요, 인어구요.”

 

 인어, 그 말에 에스티니앙은 다른 곳에 가 있던 정신이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동화에서만 보고 들어왔던 인어가 지금 제 눈 앞에 있는 건가? 에스티니앙은 멍해지는 정신을 되잡으며 제 눈앞에 있는 여인을 보았다. 물 위로 튀어나와 있는 지느러미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보아 자신의 눈앞에 있는 여인, 페실리아는 인어인 것이 확실해졌다. 인어, 인어, 분명 꿈에서만 동화 속에서만 나올 것 같은 존재에 에스티니앙은 하하 웃었다.

 

 “잘 부탁하지, 페실리아.”

 

 그 뒤로 에스티니앙은 하루가 멀다하게 페실리아에게 찾아왔다. 오늘 하루는 이러했다, 바깥에는 이런 곳이 있다, 그런 시시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페실리아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실실 웃으며 에스티니앙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인어는 사람보다 체온이 낮아 인간이 손을 대면 화상을 입는다, 페실리아는 그리 말하며 자신에게 손을 대는 것은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에스티니앙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 뒤로 에스티니앙은 바깥으로 나가본 적이 없다는 페실리아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시 하루가 오면 에스티니앙은 페실리아에게 향했다. 어느 사이엔가 페실리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즐거워지고 그녀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에스티니앙은 페실리아를 보며 조용히 가족에 대해 물었다. 그 물음에 페실리아는 살포시 웃으며 답했다.

 

 돌아가셨어요, 그 뒤로 혼자 이곳에서 살고 있어서 조금 외로웠어요. 그런데 에스티니앙이 매일매일 찾아와주니까 경계했는데도 말을 걸게 되더라구요.

 

 작게 웃던 그 모습에 에스티니앙은 쓰게 웃었다.

 

***

 

 에스티니앙은 제 자신이 페실리아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고 꽃을 본 적이 없다는 페실리아를 위해 매일매일 새로운 꽃을 들고 페실리아에게 찾아갔다. 뜨거운 걸 먹을 수 없는 페실리아를 위해 가끔씩 차가운 음식을 챙겨가기도 했다. 언제나 꽃을 옆에 두고 에스티니앙과 이야기 하던 페실리아는 붉은 꽃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 꽃 이름은 장미 맞죠? 꽃말이 뭔지 알아요?”

 

 에스티니앙은 붉은 장미를 보며 곰곰이 생각했다. 꽃을 사며 꽃집 주인이 붉은 장미를 보며 꽃말을 말해주었는데. 에스티니앙은 장미를 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기쁨, 아름다움, 열정, 욕망…, 그리고 열렬한 사랑.”

 

 그 말을 끝으로 에스티니앙은 페실리아에게 고개를 돌렸고 에스티니앙을 멍하게 보던 페실리아의 얼굴은 잔뜩 붉어져 있었다. 기쁨, 아름다움, 열정, 욕망, 열렬한 사랑. 여러 가지 의미가 있던 붉은 장미처럼 붉어진 페실리아의 얼굴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자 페실리아는 물속으로 들어가 모습을 감췄다. 아, 젠장. 에스티니앙은 뜨거워진 제 얼굴에 부채질을 했다, 커르다스의 차가운 공기마저 식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여자다. 에스티니앙은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을 식혔다.

 

***

 

 수선화, 붉은 아네모네, 스타티스, 장미허브, 달맞이꽃, 보라색 제비꽃, 훼닉스, 라일락, 민트, 아젤리아. 수북이 쌓인 하얀 눈 사이로 떨어지는 다양한 색들의 꽃이 쌓이고 쌓였다. 손에서 벗어난 꽃들은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고 바람을 타고 하늘 위로 날아가기도 했다. 커르다스 강 위에 조용히 올라가 물길을 따라 흘러가는 꽃잎이 무척이나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에스티니앙은 무릎을 꿇고 제 눈앞에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본래 차가운 몸이 더 차가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더 차가워졌다. 만질 수 없었던 몸이었지만 차갑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야 언제나 핏기가 돌지 않는 것처럼 창백한 피부였으니까. 에스티니앙은 제 머리에 씌어져 있는 투구를 벗어 바닥에 내려놓은 뒤 눈밭에 쓰러져 있는 여인을 안아들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흘러 내렸고 잠든 것처럼 내려앉은 눈꺼풀이 아름다웠다. 쉽게 원망도 하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을 어찌 욕할까. 에스티니앙은 한 번도 손을 잡지 못하고 안지도 못하고 하다못해 반지마저 끼워줄 수 없었던 그녀를 안아들었다. 눈물이 창백한 피부 위로 뚝뚝 떨어졌고 그녀를 제 품에 껴안고 서럽게 울었다. 더 이상 뛰지 않는 심장이 매정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은 그녀의 옆에 있어주지 못했다.

 

 에스티니앙은 조용히 그녀의 입에 입술을 맞췄다. 이 모든 것이 그녀가 죽어서야 가능하다는 것이 잔인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손에 곱게 쥐어져 있는 물망초가 미치도록 아름다웠다. 잔인한 여자다, 잔인하고 잔혹하고 사랑스러운 여자다. 이마에 이마를 맞대고 에스티니앙을 작게 속삭였다. 사랑해, 그 말이 더 이상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이 어찌나 서러웠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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