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옛날 어느 마을에 ‘빨간 망토’라고 불리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소녀의 머리카락은 붉었고, 사람들은 소녀의 머리카락이 신의 뜻을 거스르는 색이다라고 하며 소녀를 비난했습니다. 소녀는 머리카락을 숨기기 위해 빨간 망토를 쓰기 시작했고, 마을 사람들은 그제야 소녀를 향해 던지던 돌을 멈추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을까요?

 

*             *             *             *             *             *             *

   동화의 붉은 머리 소녀는 커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 역시 붉은 망토로 머리를 감추었고, 다시 커서 아이를 낳았다.

 

  “저 애 봐요! 머리가 붉은 색이에요!”

  “쉿, 들리겠다! 붉은 머리는 악마의 상징이라고 했어. 분명 제 어미가 악마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일거야.”

  그리고, 시간이 흐른대도 사람들의 돌팔매는 멈추지 않았다. 쿠도 레이카는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한 말을 꾹 눌러참으려 하며 입술을 콱 깨물었다. 지금 여기서 자신이 뭐라고 하면 더 피해 입는 것은 제 부모님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녀는 적갈색 눈동자에 어룽거리는 눈물을 닦아내고 담담한 척 길을 걸었다.

  집에는 언제나처럼 진녹색 비로드 옷을 입은 사내가 있었다. 레이카는 사내를 두려워했다. 숲 외곽에 있는 작은 오두막집. 미쳐서 자신을 늑대라고 생각하고 보름마다 울부짖는 사내의 아들을 손수 그 오두막집에 가둔 사람이었다. 사내의 눈동자는 언제나 얼어붙어 있었고 단 한번도 웃음이란 것을 머금은 적이 없었다. 그녀는 그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유를 답하라면 간단했다. 그가 바로 레이카의 아버지니까.

  “망토를 하고 다니라고 했을텐데.”

 

  집으로 돌아온 레이카를 향한 말은 인사도 안부를 묻는 것도 아닌 냉막한 한 마디였다. 레이카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그저 붉은 후드를 뒤집어 쓸 뿐이었다. 사내는 탁자 위에 바구니를 가르켰다. 저것을 가지고 제 오빠, 미쳤다는 그 오빠에게 가서 주고 오라는 뜻이었다. 싫다고 뒤집어 엎어버리고 달아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그 숲을 가로지르는 것이 제 어린 동생이 될 것임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레이카는 눈을 꾹 감고 눈물을 삼켰다.

  숲은 언제나 두려웠다. 햇빛과 달빛마저 온전히 비춰내지 못하는 영원한 그림자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 그림자에서 손이 튀어나와 언제라도 발목을 잡고 자신을 그 그림자 안으로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눈빛. 레이카는 처음 숲에 들어왔던 날 보았던 그 금빛 눈동자를 잊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토로하자면 제 아버지의 차가운 회빛 눈동자보다 그 금빛 눈동자가 더 무서웠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일까.

  숲길은 길었다. 발 끝에서 부스러지는 낙엽의 소리와 바람이 불어 흔들리는 나뭇잎의 소리. 아름답고 맑은 소리였다. 레이카는 그때까지 뒤집어 쓰고 있던 붉은 후드를 벗고 바람을, 숲을 만끽하였다. 아무리 머리를 드러내어도 뭐라 한 마디 하는 이 없는 이 공간, 이 순간이 진심으로 자유롭게 느껴졌다. 바람이 머리끝을 들어올려 춤을 추었다. 타오르는 듯한 빨강. 그 무엇보다 높은 태양과도, 그 무엇보다 강렬한 불꽃과도 같은 붉은 머리가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듯이 날개를 폈다.

 

  “너, 머리색 예쁘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 다음이었다. 레이카는 화들짝 놀라 다시 후드를 뒤집어썼다. 마을 사람에게 걸리기라도 했다가는…안 돼. 절망적인 마음으로 뒤돈 곳에는 거대한 검은 늑대가 있었다. 늑대의 빛나는 금빛 눈동자가, 그리고 자신을 가볍게 능가하는 크기가 완전히 압도적이었다. 레이카의 눈동자에 두려움이 가득 차올랐다. 이제 죽는 걸까? 이런 생각밖에 할 수 없어서. 오로지 할 수 있는거라곤 뒷걸음질 치는 것뿐이었다.

 

  “마츠카와 군. 그러면 아가씨가 겁먹잖아..”

 

  아까의 목소리보다 조금 더 낮고 나긋한 목소리. 이번에는 누구지? 두려움에 물든 눈동자가 향한 곳에는 제법 덩치가 큰 사내가 있었다. 레이카는 그를 보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어째서일까, 그의 눈을 보는 순간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내는 레이카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분명히 자신보다 덩치가 크고, 마음만 먹는다면 금방 제압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도 두려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해지는 느낌에 그를 잠시 멍하게 바라보고 있자니 어느새 아까의 늑대가 발치에 와 있었다. 그것을 눈치챈 레이카는 순간 몸을 크게 떨어내었다. 아까의 두려움이 다시금 몸을 잠식해들었다. 그것을 응시하던 늑대는 순간 몸을 한 차례 푸르르 떨어내더니 놀랍게도, 몸을 솟구치듯이 해 양 발로 섰다.

 

  “어..?”

 

  그녀가 조금은 얼빠진 듯한 소리를 내뱉는 순간 늑대의 키가 줄어들었다. 검은 털이 녹아드는 듯이 사라져갔고, 레이카는 그 마법 같은 광경을 멍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해치려고 온 게 아니거든.”

  “저, 기…당신도, 그, 늑대야?”

 

  가까스로 벌어진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조금 멍청하게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보통 사람이 들었다면 이 사람, 제정신일까? 라고 말할 법한 말이었지만 아까의 그 다정해보이던 거한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내며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늑대라니, 늑대가 사람으로 변한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라고 외치고 싶지만 실제로 제 눈으로 본 것이지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지,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동안 어느새 아까의 늑대는 사람으로 완전히 변해 있었다. 곱슬거리는 검은 머리와 제법 인상적일 만큼 짙은 눈썹. 아까, 분명…

 

  “마츠카와?”

 

  그래, 이렇게 불렸었지. 레이카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 사내, 마츠카와는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조금은 능청맞고 능글맞게 느껴지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기억력도 좋네. 맞아. 마츠카와 잇세이야. 그냥 잇세이라고 불러도 좋아. 그리고 저 쪽은-“

  “아즈마네 아사히야. 그, 그러니까, 응, 나도 아사히라고 불러도 좋아.”

 

  조금은 쑥스럽다는 듯이 말을 잇는 그들이 귀여워, 어느새 아까의 두려움은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후드를 잡고 있던 손은 자연스레 풀어졌고, 후드가 벗겨져 붉은 머리카락이 나뭇잎 사이로 내려온 햇살에 찬란하게 빛을 내었다.

 

  “그, 러니까, 조금 기분 나빠할 수도 있는데, 실은 전부터 조, 금…지켜보고 있었어. 너는 매일 이 숲길을 지나가는데, 그, 머리색이 정말 예뻐서..”

 

  머리색이 예쁘다, 라는 건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였으리라. 레이카는 왠지 모르게 찡해지는 코 끝을 손가락으로 꼭 눌렀다. 그 모습을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던 마츠카와가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너희들, 그러니까 인간들의 마을에 내려가지 않은지는 오래 되어서 잘 모르지만…너희 마을에서는 붉은 머리를 싫어하는 모양이지? 그러니 매번 그 후드로 가리고 다니는 거야?”

 

  순간적으로 울컥, 치밀어오르는 마음에 참지 못했다. 그 동안의 이야기, 제 이야기, 제 가족의 이야기를 전부 털어놓았다.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인데, 냉정히 말해서 신뢰할 수 있는 상대라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는데,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안심해서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아버지의 이야기, 제 오빠의 이야기, 늑대의 이야기를 전부.

  담담히 들어주는 마츠카와가, 다 괜찮다는 듯이 간간히 등을 토닥여주는 아즈마네가 너무나도 의지가 되었다. 그래서 눈물을 터트리는 일 없이 말을 마칠 수 있었던 레이카였다. 이야기가 끝난 뒤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무도 섣불리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 배려해주는 듯한 마음이 너무도 따스하게 와닿아서, 레이카 역시 입을 열지 않았다.

  한참만에 먼저 입을 연 것은 마츠카와였다.

 

  “이렇게나 예쁜 색인데 말야.”

  “응, 레이카 양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어.”

 

  그 짧은 두 마디 말이 너무도 투박했지만 따스했다. 레이카는 답조차 하지 못하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 마음같아서는 이 마을을 떠나자고 말하고 싶어.”

 

  그 뒤로 이어진 말은 조금 당혹스럽기도 했다. 레이카가 멍하게 바라보는 와중에도 마츠카와는 멈추지 않고, 조금은 느릿하게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생각보다 좀 더 너를 많이 지켜봤어. 그러니 네 말이 사실이란 걸 알아. 하지만, 하지만…네가 그걸 다 감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널 태우고 멀리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는 오직 하나야. 네가 싫어할까봐.”

  “맞아. 마츠카와 군도 나도…레이카 양이 싫어하는 행동은 하고 싶지 않으니까. 우리는 레이카 양을 조금은 더 오래 알았지만, 레이카 양은 우리들을 안 게 오늘 처음이니까. 그러니까 참을게. 이 곳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게.”

  “..너희 말대로, 나는 너희에 대해서 잘 몰라.”

 

  레이카가 고개를 기울이자 긴 붉은 머리가 찰랑이며 흘러내렸다.

 

  “그래서, 왜 날 이렇게 위해 주는지 잘 모르겠지만…..고마워. 왠지 너희 앞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기대도 좋다는 느낌이 들어. 너희도 이런 걸까.”

 

  옅은 미소가 입가에 은은히 어렸다.

 

  “앞으로는, 숲에 오는 게 즐거울 것 같아.”

 

  레이카는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오두막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몇 달 째 아무도 없는 오두막 집 앞에 빵 바구니를 두고 마을로 향하는 그녀 뒤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따라오고 있었다.

  그 숲에서의 이야기가 마치 꿈이었다는 것 마냥 마을 사람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붉은 머리를 두고 수군대는 사람들, 자신이 가둔 아들이 미치지 않았으며 진작 달아났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그녀의 아버지. 놀라울 정도로 평소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마을에서 빨간머리 아가씨가 사라진 것은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뒤의 일이다. 그 날부터는 숲에서 매일같이 들려오던 늑대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옛날부터  들려오는 소문이 있습니다. 깊은 숲 속에 늑대 한 마리가 살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 늑대는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밖으로 나오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무도 모릅니다. 마을 사람들은 늑대가 흉측한 외모를 하고 있어 부끄러워서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늑대가 산다는 소문을 듣고 혹시나 마을을 공격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숲 속 가까이는 절대로 가는 일이 없었습니다. 늑대는 이러한 소문을 알고있었던 걸까요? 소문은 거짓인 것처럼 마을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소문에도,숲 속과 가까이 살고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빨간모자 입니다. 빨간모자는 아버지가 어릴 때 부터 계시지 않았고,어머니 마저도 그만 여의었습니다. 그럼에도 빨간모자는 전혀 우울하거나 슬픈표정을 짓지 않았습니다. 빨간모자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빨간모자는 숲 속에 사는 늑대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지만, 실제로 늑대를 본 적은 없었습니다. 빨간모자는 마을 사람들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숲  속안의 생활이 너무 행복해서, 밖에 나가고 싶지 않은게 아닐까,하고 생각했습니다. 빨간모자는 늑대가 조금 부러워졌습니다.얼마나 큰 행복이길래 밖으로도 나오지 않을까요.
빨간모자는 조금 행복했습니다. 어머니와의 추억이 남아있는 빨간모자의 집,아침마다 찾아오는 작은 새 몇 마리,집을 지키는 강아지 한 마리,늘 적당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 빨간모자는 정말 간신히 살아갈 정도의 행복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빨간모자는 울지 않습니다. 늘 웃는 얼굴입니다.

*

어느 날이었습니다. 빨간모자는 마을 시장으로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빨간 모자의 집을 지켜주는 강아지가 사라져 있었습니다. 빨간모자는 집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강아지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강아지가 도망이라도 간 걸까요? 빨간모자는 쓸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빨간모자는 마을 시장으로 가기 위해서 발걸음을 옮기려고 했습니다. 아, 그런데 누군가가 빨간모자에게로 다가왔습니다. 왠 여자아이입니다. 빨간모자와 비슷한 나이대의 여자아이가 다가왔습니다. 어라, 그 앞에는 빨간모자의 집을 지키던 강아지입니다.  빨간모자가 강아지의 이름을 부르자 강아지가 꼬리를 힘차게 흔듭니다. 그건 그렇고, 이 여자아이는 누구일까요?

"저기, 너는 ...."

"이 멍멍이, 네가 키우는 거야?"

빨간모자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여자아이가 말했습니다. 빨간모자가 그렇다고하자 여자아이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너네 집이야,멍멍아! 돌아가야지? 신기하게도, 여자아이가하는 말을 알아듣는건지 강아지가 빨간모자의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빨간모자는 물끄러미 여자아이를 쳐다보다가 말했습니다.

"너는 누구야?"

"나는, 요루라고해! 나는 저어~기 숲에서 살고있어!"

여자아이,요루가 묻지도 않았는데 사는 곳까지 말했습니다. 조금 이상한 여자아이인 것 같습니다. 빨간모자는 마을로 가기 위해서 발걸음을 옮기려고 했습니다. 요루가 잡지 않았다면 그대로 갔을지도 몰라요. 요루가 빨간모자의 팔을 꽉 잡았습니다. 어디가? 궁금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묻는 요루의 말에 빨간모자는 대답했습니다. 마을,마을 시장에 가야해서... 이것 좀 놓아주면 안 될까? 여자아이라서 함부로 뿌리치지도 못합니다. 여자아이들은, 빨간모자보다 약하니까 조심해서 대해야한다. 빨간모자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하셨던 말입니다. 그에 요루가 팔을 더 꽉 잡습니다.

"나도, 나도 같이 가면 안 될까...?"

요루의 까만 눈동자가 묘하게 반짝입니다. 그 눈은 정말로, 새까만 밤이여서 반짝일 때 마다 밤하늘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까만 눈동자에 홀린 듯 빨간모자가 가만히 있자 요루가 눈 앞에서 박수를 짝,하고 칩니다. 퍼뜩 정신이 든 빨간모자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으응,같이 갈까? 그 말에 요루가 활짝 웃습니다. 빨간모자와 요루, 두 사람은 함께 마을로 향했습니다.

요루는 마을 시장에 처음 오는 듯 해보였습니다. 주변을 둘러보고 신기하게 쳐다보는 표정이 꽤 귀엽다고 생각했습니다. 필요한 것을 모두 산 빨간모자가 요루를 보았습니다. 요루는 아직도 신기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습니다.
신기해하는 요루를 달래고 다시 빨간모자와 요루는 돌아왔습니다. 요루는 빨간모자와 인사를 하고, 숲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요루가 빨간모자를 찾아왔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도, 그 다음다음 날 아침도. 요루는 그 후로 계속 빨간모자를 만나러 왔습니다. 빨간모자는 그런 요루가 싫지 않았고 오히려 좋았습니다. 요루와 함께 있으면 계속 웃음이 나오고 옆에 있고싶어 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있을 때와는 다른 기분입니다. 이건 무엇일까요?

오늘은 빨간모자의 어머니를 보러가는 날입니다. 그러니까, 어머니의 무덤에 가는 날입니다. 빨간모자는 그저께 마을 시내에서 사온 작은 해바라기를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해바라기는 빨간모자의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었습니다. 그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빨간모자가 문을 열자 보이는 건 해바라기처럼 노란 머리카락입니다. 요루입니다. 햇빛을 받아서 그런지 눈이 부십니다. 어디 가? 요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빨간모자가 웃으며 대답합니다.

"오늘은 어머니를 보러 가는 날이야!"

"그 사람은 이걸 좋아해?"

요루가 가르킨 것은 해바라기였습니다. 빨간모자는 요루에게 해바라기 한 송이를 건냈습니다. 요루는 킁킁,냄새를 맡고는 다시 빨간모자에게 돌려줬습니다. 이상한 냄새나.이거. 요루가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그래? 빨간모자도 해바라기의 냄새를 맡아보았지만 딱히 향을 느끼진 못했습니다. 빨간모자는 작은 바구니에 해바라기를 넣었습니다. 빵 몇조각도 조금 넣었습니다. 빨간모자가 바구니를 챙겨 문을 열자 요루도 그 뒤를 쪼르르 따라 나옵니다. 빨간모자를 뒤따라 나오는 요루의 뒷모습에 뭔가가 있습니다. 조금 크고... 털이 북실북실한 무언가 입니다. 컹컹! 빨간모자의 강아지가 요루를 보고 힘차게 짖습니다. 그것도 잠시, 요루가 강아지에게 시선을 주자 강아지가 끼잉,하며 꼬리를 내리곤 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요루는 다시 빨간모자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빨간모자는 그제서야 뒤를 돌아보곤 요루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뚝, 하는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어졌다. 그와 동시에, 조용한 아지트 안에서 늘어져있던 신타로가 부리나케 일어나 붉은색 후드 집업을 챙겨 입었다.

  ‘약은 사다주고 나왔지만 걱정이 되네…. 신타로, 네가 가서 간호 좀 해주지 않겠니?’ 루가 아프다는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많이 아픈 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한 시간 전. 집을 나서기 전에도 기운이 없어보였던 루였다. 늘 그렇듯이 그저 피곤해하는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몸살감기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니 괜한 자책감이 들었다.

 

  “에, 어디 가는 거야?”

 

  “아. 그게…. 엑? 마리. 그 귀는 뭐야?”

 

  이제는 익숙해진 목소리에 답부터 먼저 하던 신타로가, 마리의 모습을 보고는 잠시 말을 멈췄다. 몽실몽실한 머리카락 위에 자리한 늑대 귀 모양의 머리띠가 확연히 눈에 띄었다.

 

  “이거? 저번에 유원지에 놀러갔을 때, 세토가 사준 거야.”

 

  “아, 그래? 귀엽네. ‥이게 아니지! 저기, 루가 아프다고 해서 가봐야 할 것 같아.”

 

  “아, 아픈 거야? 얼른 가봐! 루쨩, 원래 몸도, 안 좋으니까….”

 

  ‥응, 그래야지. 마리의 말에 자책감이 배가 된 신타로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어깨 뒤로 넘어가있던 후드를 잡아 씌워 머리칼을 가렸다. 핸드폰을 손에 쥔 채 현관으로 걸어갔다.

 

  “신타로, 이거!” 운동화를 신고서 앞코를 바닥에 툭툭, 두드리던 자신의 앞으로 작은 꽃 하나가 내밀어졌다.

 

  “어?”

 

  적당히 잎이 펼쳐져있는 분홍색의 조화가 앙증맞게 예뻤다. 그 아래, 줄기에 매어진 얇은 리본이 누구의 손에서 만들어진 건지를 가늠케 했다.

  얼떨결에 꽃을 받아든 신타로가 배시시, 웃고 있는 인영을 바라보았다.

 

  “예쁜 꽃을 받는다면, 루가 조금 더 기운이 나지 않을까 해서‥!”

 

  “‥아아. 고마워.” 예쁜 마음이 담긴 조화를 소중히 손에 쥐었다.

 

 

  낮 3시임에도 길거리가 한적했다. 원래도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지는 않는 골목이었지만, 이정도로 먼지가 나뒹구는 곳은 아니었다.

  뭐, 나야 나쁠 것 없지만. 많이 극복했다고 해도 아직까지는 사람이 없는 곳을 편하게 느끼는 신타로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다만, 상대적으로 마음이 무거운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뭐라도 사갈까…“

 

  쇼 윈도우 너머로 보이는 케이크가 발길을 사로잡았다. 단 것을 좋아하는 루가 생각나, 한참을 서서 들여다보다 사가기로 결심하고는 지갑을 꺼내들었다. 전화를 받았을 때 든 자책감의 해소 겸, 웃는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케이크 상자를 보고서 발그레해질 루의 모습이 절로 그려져 입 꼬리가 올라갔다. 좋아. 사가자! 뭐하냐, 너? 낮은 목소리의 누군가가 신타로의 어깨를 잡았다.

 

  “?누구… 아. 너였냐‥.”

 

  “하아?! 그, 그런 식은 눈으로 바라보지 말라고!”

 

  자신의 선배이자, 휴대폰 속에 거주하기도 했던 사람이 보여 김빠진 표정이 지어졌다. 그 모습에 타카네가 소리를 빽 질렀다. 투덜투덜 대는 말이 이어졌다.

  윽. 시끄럽네. 텐션의 차이는 있어도 딱히 변함 없는 것 같단 말이지. 누가 에네였던 사람 아니랄까봐 울리는 큰 목소리에, 무시하고 다시금 쇼 윈도우로 시선을 돌리려던 신타로가 멈칫, 고개를 멈췄다.

  팔짱을 낀 타카네의 손에, 무언가 기다란 장난감 총이 들려있었다. 입고 있는 차림과 더불어 무언가 사냥꾼 같은 느낌을 들게 하는 것 같아 입이 벌어졌다.

 

  “야, 에네. 근데 그거 뭐냐‥?”

 

  “뭐? 아. 게임센터에서 경품‥ 으로 받은 건데, 뭐. ‥부, 불만이야?”

 

  “아니. 여전하다 싶어서.”

 

  “뭔가 찝찝한 대답이네‥.” 떨떠름한 표정의 타카네가 볼을 긁적였다.

 

  케이크를 바라보고 있던 신타로를 타카네가 이상하다는 눈길로 쳐다봤다.

 

  “아. 너, 근데 왜 여기있는 거야? 루 아프다며?”

 

  “…아!! 어. 어. 얼른 가야지.”

 

  “뭐냐, 너… 참. 이거 가져가라고 하려고 부른 건데.”

 

  “루 주려고 내가 산거지만. 그냥 너랑 같이 샀다고 해줘.”

 

  얼떨결에 하얀색 상자를 받아든 신타로의 눈이 커졌다. 포장 사이로 달콤한 냄새가 풍겼다. ‥뭐냐고, 데자뷰냐?

서로 반대쪽을 향하며. 타카네가 무어라, 더 말을 한 것도 같지만 신타로는 오늘따라 느껴지는 기이함에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아지트에서의 마리는 늑대 귀, 케이크 가게 앞에서 만난 에네 녀석은 총…. 알 듯 말 듯, 애매한 기분이 들었다.

뭐였더라. 분명 아는 것 같은데… 연극이라고 해도 될 만큼 무언가 잘 들어맞는 상황, 하지만 무언가 빠진 기분이 들어 묘했다. 왠지. 동화 중에 이런 거, 있지 않았던가? 집으로 향하는 걸음이 빨라진 만큼 생각하는 것도 빠르게 굴러갔다.

 

  다만 신타로는 현관 앞에 도착할 때까지 그게 무엇인지는 떠올려내지 못했다.

 

  *

 

  “신타로…!”

 

  신타로가 방 안으로 얼굴을 비추자 루는 이불을 덮어쓴 채로 손을 흔들었다. ‥윽. 늦어서 미안. 아냐, 괜찮으니까! 상기된 얼굴이 열을 한가득 머금고 있어, 신타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괜찮기는. 힘들어 보이는데. 정말 괜찮다니까? 루는 지그시 입 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들고 온 것들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훈훈한 열기를 온 몸으로 뿜어내고 있는 루의 곁으로 다가 자신의 차가운 손을 이마에 꾹, 눌렀다.

 

  “약은 먹었지?”

 

  “응. 먹었어. 어머님이 사다주고 가셔서‥.”

 

  “다행이네. 목만 괜찮으면 케이크 먹을래?”

 

  “어어, 케이크?”

 

  “아. 그게…”

 

  신타로는 집에 오기 전까지 있었던 일을 더듬어가며, 루에게 얘기를 전해나갔다. 늑대 마리에게서 받은 분홍색 꽃부터, 총잡이 타카네와 같이 산 케이크까지 줄줄, 끊이지 않았다.

  한참 제 기분을 섞어 길게 얘기하고 있으니, 루가 자신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게 느껴져 입을 멈췄다.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안 그래도 가까이 있는데, 얼굴까지 자신에게 고정되어 있어 부끄러워 신타로가 시선을 돌렸다.

 

  “뭐가 묻은 건 아니지만, 씌워져는 있으니까‥.” 헤헤. 루가 웃으며 중얼거렸다.

 

  “무슨 소리야?”

 

  “아, 아니. 그, 그- 신타로 지금 빨간 후드 뒤집어 쓰고 있는데다가, 그런 얘기하니까.”

 

  “응?”

 

  “동화책 중에 있잖아? 빨간 망토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핫. 귀엽다. 빨간 망토 신타로‥!”

 

  손뼉을 짝, 맞잡은 루가 신타로의 얼굴 앞에서 고개를 까딱거렸다. 아아아! 루, 루, 그만해줘! 부끄럽다고…! 좌우로 흔들거리며 웃는 루를 신타로가 껴안아 움직임을 멈춰버렸다.

 

  ‘‥그보다 빨간 망토였구나.’ 머릿속이 상쾌해짐과 동시에, 얼굴은 루와 같이 발갛게 물들어갔다.

 

 

  *

 

  “어디 불편해?”

 

  가만히 앉아 입으로 들어오는 케이크를 받아먹던 루가 흐으음, 입을 오물거렸다. 아니, 그냥…. 어쩐지 뚱한 표정이 되돌아와 신타로가 눈을 굴렸다.

 

  “왜?”

 

  “그, 신타로는 빨간 망토인데‥ 나는 왜 할머니 역할인 걸까 싶어져서…?”

 

  “아직도 그 생각 중이었냐고….”

 

  “으응. 뭔가 즐겁잖아.”

 

  하여간. 피식, 웃으며 신타로가 작게 케이크를 잘라 이번엔 자신의 입에 넣었다.

 

  “그럼, 루는 뭐가 하고 싶은데?”

 

  이불에 묻을세라 케이크 접시를 한 쪽으로 치워두었다. 루와 가깝게 앉으려 자세를 고친 신타로가 넌지시 물었다.

  꾸물꾸물. 이불을 등 뒤로 펼쳐 양 끝을 날다람쥐마냥 손에 쥔 루가 와락, 신타로에게로 안겨들었다.

 

  “으악?!”

 

  “헤헤. 늑대! 빨간 망토를 잡아먹는 늑대가 좋아.”

 

  “아… 근데 빨간 망토가 신타로라는 전제가 아니면 무리지만.”

 

  신타로가 대답하지 않아도 혼자 중얼거리며 품에 뺨을 부비던 루가, 얼굴을 들어 작게 앓음 했다.

  “…그래.” 자신의 품에 안긴 루의 머리칼을 만지작거렸다. 굳이 빨간 망토를 쓰지 않아도, 쓴 것 같은 기분이 된 신타로가 눈을 감았다.

 

 

    "꼬마 아가씨, 또 보네."

    "아, 또 늑대 아저씨예요?"

    여우인지 늑대인지 카힌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카힌은 귀와 꼬리를 가진 이 남자를 늑대 아저씨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여우라니까.”

 

”내가 늑대라고 하면 늑대가 맞아요.”

 

“… … .”

 

카힌은 비록 제멋대로였지만 나쁜 뜻은 없었다. 카힌은 순진한 여자아이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현재 진행형일 것이다.

 

“자꾸 그러면 널 빨간 망토 라 고 부르겠어.”

 

“오, 그러시던지요! 늑.대 아.저.씨. 빨간 망토가 아니라 빨간 목도리가 나을 것 같지만요!”

 

“내가 빨간 망토라면 빨간 망토인 거야.”

 

“와, 방금 그거 엄청난 소심한 복수였어요.”

 

“통했으면 다행이고.”

 

노기츠네는 카힌을 자꾸만 찾아온다. 왜인지는 모른다. 카힌이 피하려고 하지만 어느새 자꾸만 노기츠네는 카힌의 옆으로 오는 것이였다. 카힌은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그래도 시간이 계속 지나면 지날수록 카힌은 익숙해지고 노기츠네가 찾아와도 “또 왔어요? 오늘은 언제 갈 거예요?” “글쎄, 하루 종일 있다 갈까?” “그건 내가 허락 못해요.” 같은 패턴이었다. 그래, 카힌은 순진했다. “안녕, 늑대 아저씨.”하고 항상 웃으며 인사했다. 가끔 노기츠네는 카힌의 학교도 찾아 왔다.

 

“여기 오면 어떡해요!”

 

“괜찮아, 난 너 한테만 보여.”

 

라는 말로 항상 카힌에게 말했다. 노기츠네는 카힌에게 상냥했다. 전혀 말이 안 됐다. 하지만 어떠하리, 카힌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다만 노기츠네가 어떤 사람인지, 무얼 하는지는 모를 뿐이었다. 그리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카힌은 물어봐도 답해주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카힌은 그냥 조용히 창문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냥 멍하니 창문을 보다 보면 언제선가 노기츠네가 “안녕 빨간 망토 아가씨?” 라며 나타나는 것뿐이었다. 그러고 카힌도 웃으며 “안녕 늑대 아저씨.” 라며 웃어 주는 것이다. 그것뿐이다. 카힌은 가끔 혼동한다.

 

“스타일즈!!! 거기 잠깐 서 봐 나 할 말이 있는데 … .”

 

“빨간 망토 아가씨가 날 부르다니 웬일이야?”

 

“아,”

 

노기츠네가 카힌이 짝사랑 하는 아이와 똑같이 생겼다는 거다.

 

어쩌면 카힌은 노기츠네에게 의지하는 걸지도 모른다. 똑같이 생겼다. 이유는 단순히 그것뿐이다. 똑같이 생겼다는 것. 카힌에게 노기츠네는 어떤 존재일까. 노기츠네는 카힌에게 어떤 존재일까. 카힌은 아무래도 상관 없을지도 모른다. 노기츠네가 자신을 먹으려 접근했다 해도 카힌은 개의치 않을 것이다. 잡아 먹혀도 좋을 것이다. 단지 그 모습이면 카힌은 충분했다. 카힌은 자신을 속일 것이다. 아무리 노기츠네가 속으로 카힌을 한심하게 여긴다고 해도 카힌은 항상 꽃을 꺾어 자신에게 건내 주는 노기츠네를 향해 웃어 줄 것이다. 노기츠네도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노기츠네는 사실 카힌을 꼬드기려고 스타일즈와 동일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구별을 위해 일부러 귀와 꼬리를 덧붙였지만. 노기츠네는 카힌을 조종하기 위해 나타났다. 노기츠네는 스타일즈의 몸에 몰래 숙주 하고 있지만 아직 그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카힌이 스캇, 리디아, 스타일즈 등의 무리에 있어도 노기츠네는 언제나 카힌의 곁에 있었다. 가끔은 카힌은 노기츠네를 보지 못한다. 자신이 잠든 사이에 사랑에 굶주린 여우 한 마리가 늑대 한 마리처럼 자신을 껴안고 잔다는 사실도 모를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한심하다. 천하의 노기츠네가 한낱 여학생에게 꼬리를 살살 치며, 애칭까지 부르며, 자신의 본 목적을 까먹는 경우가 있다니. 남들이 들으면 그건 정말 미친 이야기였다. 하지만 노기츠네는 카힌을 본다. 카힌이 방긋 웃으면 노기츠네는 어디선가 꽃을 꺾어 카힌 에게 건네준다. 카힌은 그걸 좋아라 받는다. 노기츠네는 ‘카힌’이라는 꽃을 꺾기 위해 나타났지만 오히려 ‘카힌’ 에게 꽃을 꺾어 주고 있다. 노기츠네의 잠복기는 그러했다. 이제는 곧 슬슬 스타일즈를 파고들며 본 목적을 달성해야 했다. 그 전에 노기츠네는 스타일즈에게 몇가지 장난을 쳤다. 그러고 노기츠네는 카힌을 만나러 간다. 노기츠네가 스타일즈에게 장난을 치고 오면 카힌은 항상 바빴다.

 

“뭐해? 어디 가?”

 

“스타일즈가 갑자기 쓰러졌대요. 꼭 가야 돼요.”

 

“가지 말고 나랑 놀자. 괜찮을 거야!”

 

“아뇨, 제가 불안해요.”

 

불안하다. 그건 카힌의 지병 이였다. 노기츠네는 카힌의 지병을 고쳐주고 싶었다. 하지만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노기츠네는 카힌의 상처를 건드리며 곪아 터지게 만들어 버렸다. 그 끝은 어쩔 수 없었다. 카힌은 더 이상 노기츠네가 건 내는 꽃을 받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받지 못했다. 노기츠네가 창문을 두드려도 카힌은 그 때 울고 있다. 그리고 그걸 노기츠네가 알아차리면, 노기츠네는 알아서 사라졌다. 어디로 가는지는 카힌도 모른다. 그래, 노기츠네는 스타일즈의 몸 속으로 간다. 노기츠네는 스타일즈의 몸을 가지고 논다. 그럴 때마다 스타일즈의 모든게 느껴진다. 괴로움, 저항. 하지만 카힌의 느낌은 이것 보다 더 심함을 알고 있었다. 가끔 노기츠네는 카힌에게 찾아간다. 카힌은 노기츠네에게 친근하게 “늑대 아저씨!”라고 불렀지만 이젠 아니었다. 카힌은 이제 언제나 창문에서 등을 돌리고 있으며, 노기츠네는 유리 창을 두드린다. 노기츠네는 “빨간 망토야,” 하고 부르지만 대답은 없었다. 카힌이 등을 뒤돌고 말았다. 이건 노기츠네가 벌여 버린 일이었다. 카힌에게 줄 꽃은 쌓여갔고 썩는 꽃도 쌓여갔다. 노기츠네는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몰랐다. 노기츠네는 어느 날부터 카힌을 찾아가지 않았다. 노기츠네는 자신의 목적이 카힌을 먹는다는 것을 잊었다. 노기츠네는 이제 자신의 목적을 찾을 것이다. 노기츠네는 여전히 스타일즈의 껍데기로 있었다. 끝까지. 그리고 카힌은 끝까지 노기츠네를 스타일즈로 기억했다. 어쩌면 노기츠네는 정말 늑대일지도 모른다.

 

“빨간 망토야,”

 

자신의 목적도 잊어버린 한 마리의 늑대.

 

“왜요 늑대 아저씨?”

 

"...그냥 오늘따라 예뻐 보인다고."

에르크
샤비
동네백수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