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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마을을 지켜온 그 산의 전설을 알고 있는가? 깊고 높은 그 산의 정상에는 아무도 오른 적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 기묘하고 무거운 산 속의 공기는 마을 사람들이 들어가려고 하면 더욱 강해져 그 기에 짓눌린 채 그대로 나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 산의 정상에는 마을의 수호신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한다. 아무도 그의 모습을 본적도 없고 사람들은 모두 그를 괴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마을로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으며 마을 사람들에게 전할 말이 있으면 두루마리를 산 아래로 떨어뜨린다. 정체조차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그를 모시며 수호신이라 믿고 있다.

 

그리고 그 마을의 어느 작은 집. 한 여자 아이가 문을 열고 나온다. 어쩌다 그곳에 오게 됐는지는 누구도 모르지만 마을 사람들은 혼자인 그녀를 어릴 때부터 아껴주고 사랑해줬다. 그녀의 눈은 루비처럼 맑고 투명하였으며 영롱하게 빛나 늘 반짝이는 깊은 붉은 색. 사람들은 그 눈을 사랑했다.

“율링. 좋은 아침이야.”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잘 주무셨어요?”

“그래~. 아 마침 사과가 잘 익었던데 좀 가져갈래?”

“그래도 돼요? 네!!”

생긋 웃으며 달려가는 그녀를 보고 아주머니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양 팔 가득 사과를 한 아름 들고 돌아가는 그녀는 마치 천사의 그것을 닮았다. 마을 사람들은 다들 혼자 사는 어린 여자이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혹시 모르니 누군가랑 같이 사는 게 어떻겠냐는 제의도 해봤지만 폐를 끼치는 건 너무 싫다며 거절한 그녀. 결국 이렇게 그녀를 도와주는 수밖에 없다. 그녀는 늘 마을 안에서 따뜻했으며 부드러웠다. 그런 그녀의 영향인지 몰라도 마을은 늘 평화로웠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어느 날부터 그 평화가 망가졌다. 나무 흔들리는 소리조차 잘 들리지도 않는 수호산에서 호랑이들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형형한 눈빛의 그 호랑이들은 날카로운 송곳니로 사람들을 공격하고 마을을 무너뜨렸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지만 괴음과 함께 쓰러지는 사람들. 그녀도 창문 너머로 공포의 질린 눈으로 숨어있었다.

“하늘이 노하신거야. 하늘이...”

“우리가 수호신님께 큰 잘못을 한 것이 틀림없어.”

사람들은 저마다 한탄하며 땅을 쳤다. 이런 일이 생긴지도 일주일이 넘어가자 이장님은 마을의 어른들과 함께 수호산으로 갔다. 한눈에 보기에도 음산한 분위기. 보랏빛의 기묘한 기운이 그곳까지 흘러나오는 것 같다. 사람들은 저마다 공포를 참아내고 산의 가장 낮은 곳에 무릎을 꿇어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수호신이여. 우리가 무슨 잘못을 하여 이렇게 화가 나셨습니까. 대체 어떻게 하면 화를 푸시겠습니까.”

“사람들이 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제발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수호신님.”

엉엉 소리가 날정도로 통곡을 하며 소리를 내는 사람들. 산 깊은 곳에서 투둑 하는 소리가 나더니 그들의 바로 앞에 무언가가 굴러온다. 굳게 밀봉 된 두루마리. 수호신이 그들에게 말할 때 사용하던 것이다. 이장은 화들짝 놀라 그것을 집어 들어 후다닥 풀어헤쳤다. 사람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것의 주위에 모여들었다. 이장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을 가진 소녀를 바쳐라.

 

그 자리에 정적이 생겨났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 아이가 누구를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모든 주민들이 모였지만 그곳은 조용했다. 심지어 그녀마저도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서있었다. 우울하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있던 그녀가 조용히 입을 연다.

“제가...가면 되는 건가요...?”

“잠시만 율링. 너를 그곳에 보내다니 말도 안 돼!”

“맞아.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하지만...솔직히 이 마을에서 제일 예쁜 눈은 율링이 밖에 없는 걸.”

“호랑이가 내려오는 것도 일주일째인데. 이러다간 다 죽겠어요.”

“한 명을 희생해서 다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안 좋은 거래는 아니라고.”

머리를 긁적이며 늘어지게 말하는 한 아저씨의 말에 모두가 조용해진다. 그녀가 양 손을 꼭 잡으며 입술을 깨물다가 웃는다.

“제가 갈게요.”

“...율링.”

“아저씨 말이 맞는 걸요...저 때문에 다들 고생할 수는 없잖아요.”

생긋 미소를 지었지만 쓸쓸해 보이는 그 눈가에 사람들은 저마다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며칠 후. 얼굴에 베일을 쓴 그녀가 앞뒤로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산으로 간다. 하얀 드레스와 얼굴에 쓴 하얀 베일의 그녀는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지만 누구하나 그 모습을 칭찬하지 않았다. 그녀까지도 우울한 모습에 잠겨 아무 말이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도착한 산. 그녀가 뒤를 돌아 싱긋 웃는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산으로 들어간다. 뒤쪽에서 몰래 눈물을 흘리고 있던 아주머니가 울면서 뛰쳐나간다.

“아이고. 안 돼! 율링아!!”

그녀를 잡으려 했지만 아주머니가 산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결계와도 같은 것이 아주머니의 앞을 막았다. 그렇게 허망한 표정으로 멀어지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흐린 눈으로 마주했다.

 

사박사박. 나뭇잎이 밟히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유일하게 나있는 길 하나만을 의지하며 그곳을 올라가고 있지만 맞는 것인지 그녀 스스로도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가던 길을 멈추고 기괴한 모습으로 자라있는 나무 하나를 집고 선다. 큰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어두운 앞 쪽에서 무언가가 빛을 내며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설마 이런 곳에 사람이 있는 걸까. 하는 마음에 그녀가 그 빛을 따라 갔다. 하얗게 빛나는 그 빛은 마치 그녀를 인도하듯 그녀와의 거리를 유지했고 혹시 그녀가 뒤처지기라도 하면 한참을 빙글빙글 돌며 그녀를 기다렸다.

 

대체 뭐지...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지금은 달리 다른 방법이 없었다. 얼마나 더 뛰었을까. 그녀가 숨을 잔뜩 몰아쉬며 나무에 팔을 기댄다. 마른 기침까지 하며 가슴을 치자 하얀 빛은 그녀의 옆으로 와 그녀를 달래듯 뺨에 기댔다. 그 모습에 그녀가 힘없이 웃으며 다시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조금 더 앞으로 가자 그 끝에 보이는 것은

 

커다란 성.

 

이 산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크고 웅장한 성. 어쩐지 음산해 보이는 모습에 겁이 난 그녀가 한참을 바라보고 서있자 빛은 그녀를 보고 들어가라는 신호를 하고는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그녀의 두 배는 더 되어 보이는 대문 앞에서 그녀가 주저한다. 열지 못하고 계속 손을 멈칫하다가 천천히 그 문을 민다.

 

끼이익.

 

크기만큼이나 묵직한 소리를 내며 열리는 문. 그 너머에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화려하고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는 내부가 보인다. 또각또각. 그녀의 신발 소리가 넓은 방 전체에 울리고 있다. 열릴 때와 같은 소리로 닫히는 문. 앞에 있는 계단을 올라가자 벽에 쪽지가 붙어있다.

 

‘오셨습니까. 사모님? 식당에 식사가 준비되어 있으니 그리로 가시지요.’

 

“사모님...?”

자신을 말하는 것인가? 그녀가 쪽지를 뒤집자 식당으로 가는 길을 짧게 적혀있었다. 그녀가 그 길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자 식당 문 앞에도 쪽지가 붙어 있었다.

 

‘사모님. 식사는 어떤 것을 하고 싶으신가요? 원하시는 식사를 손가락으로 표시해주세요.“

 

그리고 쪽지의 아래에는 음식의 이름들이 잔뜩 적혀있었다. 처음 보는 음식들이 많은 그녀로서는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몇 가지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 그러자 그 쪽지의 밑에

 

‘알겠습니다.’

 

하는 글자가 생겼다. 놀란 표정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나자 문이 스스로 열렸다. 그녀가 그 안으로 들어가자 방금 전 그녀가 골랐던 음식들이 식탁 위에 잔뜩 올려져 있었다. 그녀가 양 손으로 입을 가리며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식탁을 보자 식탁 옆에 있는 쪽지가 팔랑 거렸다.

 

‘맛있게 드십시오. 사모님. 원하시는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그녀가 자리에 앉아 바로 앞에 놓인 수프를 떠먹었다.

“맛있다...”

그녀의 얼굴에 생긋 미소가 지어진다. 그 주변에 보이는 화려한 음식들은 그녀가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고급의 요리들이었다. 어느 새 눈이 커진 그녀는 순간 자신의 상황도 잊은 채 식사를 즐겼다. 그리고 그것이 끝나고 그녀가 포크를 내려놓자

 

똑똑

 

문에서 소리가 들렸다. 율링이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 봤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대신 문에 다시 쪽지가 붙어져 있었다.

 

'방은 복도 끝 오른쪽에 있습니다. 주인님께서 오실 때 까지 시간이 있으니 그곳에서 쉬십시오."

 

문득 그녀가 한기를 느껴 주변을 돌아보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가 그 쪽지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니 두 사람이 눕고도 남을 만한 킹사이즈의 침대. 그리고 그 위를 장식하는 커튼. 한쪽에는 책을 가득 채운 책장. 그녀가 침대에 살포시 앉아 만져보니 부드러운 감촉이 그녀의 손을 타고 올라왔다. 자연스레 기분이 좋아지는 그녀. 스르르 그 자리에 누워 눈을 감는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눈을 뜬 건 그녀의 머리에 손길이 느껴질 때였다. 침대 위에 나있는 커다란 창문으로 달빛이 들어왔다. 어느 새 이렇게 시간이 지난 걸까...그녀가 잠이 덜 깬 표정으로 눈을 뜨며 생각했다. 그리고 그 손길을 따라간 곳에는 누군가가 침대 끝에 걸터앉아 있었다. 율링은 그 사람의 얼굴을 보려 했지만 그곳까지 달빛이 손을 뻗지 못 했다. 투박하고 거친 손가락. 하지만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는 그 손길은 따뜻했다. 완전히 자리에서 일어나 앉은 그녀의 머리카락 끝을 손가락 사이로 보내고 다시 올리는 손은 다정함이 가득했다.

“누구...세요...?”

율링의 떨리는 목소리에 그는 답이 없었다. 손을 더 뻗어 그녀의 뺨을 만진다. 부드럽게 엄지 손가락으로 그녀의 뺨을 문지르며 그는 그녀를 보고 있었다. 어둠에 가려져 시선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가 자신을 보고 있다고 느꼈다.

“혹시...수호신...님이신가요?”

“...정말 멋대로군.”

그녀의 물음에 그는 작게 중얼거린다.

“그런 귀찮은 별명 그만 하라고 했건만...”

맞는 걸까...그녀가 속으로 생각하고 다시 입을 연다.

“그럼...저를 왜 여기에...”

그녀의 물음에 상대방은 다시 말이 없다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가 어떤 상황인지 알기도 전에 그녀의 입술을 물었다. 놀란 그녀가 두 눈을 꼭 감는다. 첫 키스. 흔히 첫 키스는 달콤하다고 하지만 그녀는 지금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다. 단순한 제물이 아닌가. 그녀가 혼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는 사이 그는 그녀의 혀를 감싸 섞었다. 뒤이어 숨이 막혀오는 그녀. 그의 옷자락을 잡은 손이 떨려온다. 그 모습에 입을 열고 혀를 꺼내는 그. 그녀가 숨을 몰아쉬며 떨리는 눈꺼풀을 천천히 뜨자 그제야 상대방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조금 놀라 눈을 깜빡거렸다. 얼굴의 반 넘게 가리고 있는 가면. 그리고 그 가면 뒤로 보이는 왼쪽 눈의 흉터. 그 너머의 얼굴이 상상이 가지 않았지만 그녀는 어쩐지 무섭지는 않았다. 호기심이었을까. 그녀가 무심코 손을 뻗어 가면 가까이에 가져갔다. 그리고

 

탁.

 

빠르게 그녀의 손목을 잡는 커다란 손. 그녀가 놀라 흠칫한다.

“아직 너무 이른 것 같군.”

“아...죄송해요...”

그의 손 하나에 들어가고도 남는 얇은 손목. 그가 손목을 잠시 만지작거리고는 내려놓는다. 그녀를 다시 침대에 눕히고 그는 일어난다.

“오늘 여기까지 오느라 피곤할 거다. 더 자라.”

“당신은...”

“여기 불 꺼. 커튼 치고.”

“네. 주인님.”

그가 허공에 대고 말하더니 허공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곧 불이 꺼지고 커튼이 쳐졌다. 그녀가 불안감에 그의 옷 끝자락을 잡고 있으니 그가 다시 앉아 그녀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춘다.

“난 어디 가지 않는다. 안심하고 자라.”

“......”

아직 그 손을 놓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정신이 몽롱해졌고 곧 눈을 감았다. 그가 그녀의 옆에서 머리를 쓰다듬다가 다시 일어난다.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하늘이 환해진 후였다. 그녀가 눈을 비비며 일어나자 허공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일어나셨습니까. 사모님? 식사가 준비되어 있으니 식당으로 가시지요.”

그녀가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급하게 사과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 죄송합니다. 많이 놀라셨나요? 어제는 놀라실까봐 쪽지로 안내 해드렸는데...사모님 전용 시녀입니다. 원하시는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칸 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칸...”

“네. 그럼 식당으로 가실까요?”

 

복도를 걷는 소리는 하나였지만 목소리는 둘이었다.

“오늘은 날이 좋으니 주인님께서 사모님을 모시고 뒤의 정원을 산책하고 오라 하셨습니다.”

“정원이요?”

“네. 이 곳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희귀식물까지 있으니 가보시는 것도 즐거울 겁니다.”

그녀가 식당 앞에 도착하자 스스로 문이 열렸다.

“다른 시녀와 하인들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목소리를 드러내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사모님 옆을 지키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기...그 사모님이란 게...”

“아, 사모님께서는 이곳에 주인님과 혼인식을 올리고 정식으로 부부가 되실 겁니다. 오랜 시간 주인님이 기다렸던 순간이죠. 혼인식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습니다.”

‘혼인...?’

“제가...요?”

“물론이죠. 사모님은 주인님이 오래 전부터 찾아다닌 사람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모님을 모시게 되어 전 행복합니다.”

감격에 찬 목소리가 들리고 다시 목소리가 멀어졌다. 식당 안에 있는 그녀의 자리로 목소리가 옮겨갔다.

“앉으시죠. 사모님.”

 

그곳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편안했다. 칸은 늘 그녀의 주위를 맴돌며 정원과 오솔길. 그리고 늘 새로운 이야기를 해줬다. 아는 것이 많았던 칸은 부드러운 말솜씨로 율링을 즐겁게 해주며 그녀 역시 행복했다. 매일 밤은 그가 찾아왔다. 늘 불이 꺼진 방. 그의 얼굴은 한 번도 본적이 없다. 그녀에게도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늘 그녀의 말을 들어주고 다정하게 감싸 안아주었다.

“그래서 오늘은 칸이 장미꽃으로 꽃다발 만들어 줬어!”

“그런가.”

“머리맡에 뒀는데...어두워서 안 보여...같이 보고 싶었는데...”

시무룩한 목소리에 그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내일 아침에 보겠다. 일단 늦었으니 자는 게 어떠냐.”

“맨날 재워...하루에 보는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푸흐흐.

“내가 보고 싶은 거냐.”

“아니...그래도...”

그녀가 말을 흐리자 다시 웃는 소리가 난다.

“알았다. 오늘은 더 있지.”

“히히~.”

그녀도 웃고는 그녀의 옆에 누어있는 그의 품을 파고 들었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한다.

‘어느새...이 사람이 좋아진 걸까...’

 

보름달이 크게 떠있던 어느 날 밤. 두 사람의 침실은 약간의 소란스러움과 웃음이 있었다.

“오늘 쿠키 만들었는데 먹어봤어?”

“아아. 아까 칸이 건네준 거 먹었다. 맛있었어.”

“진짜?”

“그래.”

생긋 웃다가 그녀가 궁금한 표정으로 묻는다.

“근데...조로. 그 가면은 왜 쓰고 있는 거야?”

“......”

 

알려줄 수 없는 걸까.

 

그녀가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을 하려던 때.

“알 거 없다.”

평소와 다른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말에 그녀가 입을 닫는다. 어쩐지 그녀에게 순간 서운함이 밀려왔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는 건 이해한다. 정말 아픈 상처가 있을 수도 있지. 그래도...

“너무 단호한 거 아냐...?궁금할 수도 있지...”

“아직 그런 걸 알기엔 우리 사이는 그 정도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의 단호한 말에 그녀의 심장이 순간 내려앉는다.

 

그 정도는...아니었던가...

 

그녀가 이곳에 있게 된 시간은 이미 몇 개월이 넘었다. 그 동안 그와 그녀는 매일 밤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가끔은 사랑 비슷한 말들이 오갔다. 그녀는 이제 그가 편해졌고 어쩌면 마음 한 구석은 조금씩 마음을 내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올 밤이 기대됐고 그와의 대화가 궁금했다. 무섭고 말도 안 된다 생각했던 결혼이 행복할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도 했었다. 그런데 그 기대가 오늘 깨졌다. 그의 옷자락을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도 그녀의 감정을 눈치 챈 것일까. 그녀의 옆에 누어있던 몸을 일으킨다.

“난...여기 왜 데려온 거야...?”

그녀가 묻는다. 그녀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낯설다. 그리고 그 등은 답이 없었다. 그녀의 애처로운 눈빛을 무시한 채 그는 그대로 방을 나갔다.

"가지마..."

혼자 남은 방에 그녀의 목소리가 떨린다.

 

그는 오지 않았다. 벌써 며칠 밤을 혼자 지낸 걸까. 혹시라도 오늘은 오지 않을까. 더 기다리면 오지 않을까. 그런 마음 하나로 밤을 새다가 새벽이 다가오고 나서야 고개를 떨구고 자리에 눕는다. 흐릿한 별들을 바라보고 그녀가 흐느낀다.

 

언제 이렇게 마음이 커진 걸까.

 

마음 한 구석만 내주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 새 그녀의 심장을 통째로 가져갔다. 그녀가 그대로 앞으로 쓰러지듯 침대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토해낸다. 그녀가 늘 하고 싶었던 그 말이 결국 그녀의 입 밖으로 나와 버린다.

"보고싶어..."

희뿌연 안개가 사라지고 태양이 떠오른다.

 

“...사모님.”

대답이 없다.

“들어가겠습니다.”

10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그녀는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칸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불도 제대로 덮지 않은 채 아무렇게나 누어 잠이 들고 있는 그녀가 보인다. 아직 부어있는 눈과 빨갛게 달아오른 눈가. 그리고 가뭇한 눈 아래는 어제도 그녀가 울다 잠이 들었음을 보여준다.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칸이 그녀를 깨운다.

“사모님. 일어나셔야죠. 아침 드셔야 합니다.”

“안 먹을래요...”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중얼중얼. 눈도 못 뜬 그녀가 베개 속으로 얼굴을 가린다. 칸이 더 말하려다 결국 입을 다물고 율링에게 이불을 덮어준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환한 햇살을 커튼으로 가리고 그녀가 방을 어둡게 만든다.

“그럼 편안히 잠 드시길.”

결국 그녀는 시계 바늘이 중심을 넘어서고 나서야 일어났다. 그럼에도 피곤함은 풀리지 않은 건지 시무룩한 얼굴로 방을 나온다. 그녀의 옆으로 급하게 무언가 바람이 분다.

“사모님. 이제 일어나셨습니까.”

“네...”

“어제 얼마나 늦게 주무신 겁니까? 건강에 해로워요.”

“......”

그녀는 대답 없이 고개를 돌렸다.

“점심 준비 되었으니 일단 그거부터 드시고 다시 주무세요.”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다시 옆에서 깊은 한숨이 들리더니 문이 열린다.

 

아직 달이 다 차지 않은 어느 날, 커다란 대문이 열린다. 밖에서 들어오는 한기와 함께 약한 바람이 분다. 뚜벅뚜벅. 무거운 걸음소리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온다.

“주인님.”

인사하는 칸의 목소리에 그가 겉옷을 그녀에게 건넨다. 그의 옷과 허리의 칼을 받아들며 그녀가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조용히 말한다.

“이제 그만...사모님을 만나시는 게...”

“......”

“어제도...새벽까지 울기만 하시다가 잠이 드셨습니다...진실을 말하는 건 나중이더라도 일단 얼굴을 보고 화를 풀어드리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안 그래도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는 분인데 저러다가 쓰러지시기라도 할까 겁이 납니다...”

“......”

그녀의 울먹이는 목소리에도 아무런 대답이 없다가 그가 발걸음을 뗀다.

“주인님...!”

 

달칵.

 

문이 열린다. 창밖의 빛과는 다른 빛이 방안에 들어왔다. 오늘도 그를 기다리다 그대로 잠이 들어버린 것일까. 쓰러지듯 침대에 누어있는 모습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리게 만들었다. 그가 침대 끝에 걸터앉아 그녀를 바라본다. 사실 그는 매일 밤 이곳을 찾아왔다. 밤이 되면 성의 근처 숲을 서성거리다가 그녀가 스스로 지쳐 잠이 들면 안으로 들어와 그녀를 봤다. 야위어가는 뺨에 손도 대보고 차가운 이마에 입도 맞춰보고 부운 눈가를 어루만져줬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그녀가 잠이 들 때만 가능했다. 그녀에게 화를 내버렸다. 낼만한 일도 아니었고 내서는 안됐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다렸는지 그녀는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야 겨우 찾았는데 다시 그녀를 안을 수 있게 됐는데 또 놓칠 수는 없다. 혼자 떠돌아다니며 뭘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그는 한 순간도 그녀를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녀의 머리를 양손으로 받쳐 자신의 무릎에 눕히고 두 팔로 끌어안는다. 천천히 힘이 들어가는 그 양팔에 보이지 않지만 흐느낌이 느껴졌다.

 

눈을 떴다. 뜨고 싶지 않았다. 그를 만났다. 꿈에서 그를 만났다. 눈을 뜨자마자 사라져버려 이젠 희미하기까지 한 꿈 자락을 겨우 붙잡는다.

“조로...”

결국 그녀가 울어버린다. 꿈속에서 그는 웃고 있었다. 그녀를 보고 웃고 있었다. 단호한 입매가 부드럽게 올라가 그녀를 보고 있었다. 지금은 마치 환상과 같아 그녀는 더욱 쓰려진다.

“흐아아...아아앙......”

얼굴을 가리고 가슴을 치며 마치 어린아이처럼 우는 그녀. 문이 쾅하는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모님...!!!”

“보고 싶어...너무 보고 싶어...미치겠어. 답답해 죽겠는데...어디에도 안 보여...나 어떡해...칸... 나 어떡해...”

그녀는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다. 그녀가 얼마나 아플지 칸은 느낄 수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고통은 마치 죽음과도 같다고 그가 칸에게 말해준 것이 생각난다. 그 고통을 칸의 서툰 감정으로 위로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잠시 후 코코아를 들고 그녀에게 돌아왔다.

 

이제...보실 수 있습니다...

 

그녀는 속으로 위로 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납니다. 사모님과 주인님을 갈라놓은 모든 사슬이 끊어집니다. 조금만 참아주세요.

 

커다란 보름달이 창문을 가득 채웠다. 초점이 흐릿한 눈으로 책을 읽고 있는 그녀. 불을 켤 수도 있지만 보름달은 그녀의 독서를 도와주기에 충분했다. 소설 속 내용은 두 남녀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 그녀의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 이 두 사람이 막 사랑을 하려던 때 갑자기 바람이 불어왔다.

 

창문은 닫아놨는데...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대로 들고 있던 책을 떨어뜨렸다. 문 앞에 서있는 그 그림자는 그의 것이었다. 그녀가 매일 밤 눈물로 기다린 사람. 조로.

“조로...”

그의 모습이 일렁거렸다. 말을 하고 싶은데, 보고 싶었다고, 왜 이제 오냐고, 내가 미웠냐고, 하다못해 원망이라도 하고 싶은데 목이 막혀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아...아...”

사라질 것 같았다. 그 꿈처럼 흩어질 것 같았다. 손을 그에게로 뻗는다. 침대에서 내려 천천히,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잡고 다가갔다. 휘청거리는 모습에 그가 바로 다가와 그녀를 잡는다. 손에 느껴진다. 진짜 그가 느껴진다. 매일 밤 울면서 상상하던 그대로, 꿈에서 봤던 그대로.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채로 돌아왔다. 숨이 턱턱 막혀 제대로 쉬어지지도 않는다. 눈물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쉴 새 없이 흐르고 온몸이 떨려왔다. 그에게까지 떨림이 전해진 걸까. 그녀를 안고 있는 양팔에 힘이 들어간다.

“...미안하다.”

“...뭐가...뭐가 미안해...네가 왜 미안해...”

“혼자 두게 해서.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아서.”

“알면서...알면서 왜 그랬어. 바보야...”

“미안하다...”

더 이상은 외롭지 않을 밤이 깊어간다.

 

“이젠 말해줄 수 있는 거야?”

“그래.”

손을 꼭 잡고 둘은 침대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로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벌써 천년도 더 된 과거다. 정확한 때는 기억 안나. 어쩌면 이 천년 전의 일일 수도 있다. 그때는...율링 너도 우리와 같은 신이었다.”

“...내가?”

“그래. 내가 이 산의 신이었다면 너는 모든 동물의 수호자였지. 그 때도 우리는 사랑을 했다. 이 성에서 말이야.”

“...이 성에서라는 말은...난 그 때도 여기 있었다는 거야?”

“칸도 그때 있었지. 그 녀석은 네가 자신을 기억 못하는 걸 안타까워하고 있다.”

전혀 몰랐다. 머릿속을 전부 뒤져봐도 그런 기억 따위 존재 하지 않는다.

“애써 기억하려 할 필요 없다. 네가 기억 못하는 건 당연한 거야.”

그거 그녀의 손에 깍지를 낀다.

“우린 신이지만 불사는 아니야. 하지만 우리가 죽기 위해서는 아주 특별한 방법이 있어야해. 그리고 그 방법은 인간의 몸으로는 알 수 없어.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나는군.”

그가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그때 마을 녀석들은 너를 원했어. 내가 있었는데 말이지. 그 녀석들은 기회를 노리다가 산에 불을 질렀다. 내가 산을 수습하는 동안 넌 산짐승들을 보호하고 있었어. 그때를 노린 거다. 나중에 산짐승한테 물으니 네가 결계를 치고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었다고 하더군. 그렇게 난 널 잃었다.”

“그런...”

“내가 널 다시 찾았을 때 넌 이미 엉망진창으로 죽어있었어. 어떤 짓을 당한 건지 짐작이 갈 정도로 처참한 너를 봤을 때 난 미쳤다. 그대로 마을 사람들을 모두 학살했어. 한 놈도 남김 없이. 당연한 이야기지만 난 벌을 받았다. 이 가면도 그 때 생긴 거야. 벌은 상상 이상으로 끔찍하더군. 나에게서 다시 널 뺏어갔으니.”

“어떤...벌이었는데?”

“...네가 환생한 시간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 녀석들은 날 벌주기 위해 일부러 너의 환생을 늦췄어. 그리고 네가 환생한 후에 또 너와 사랑을 이루면 다시 널 신으로 만들어주겠다고 하더군.”

“......”

“시간이 지나니 마을은 다시 사람들이 들어왔다. 네가 없는 천년은 내게 지루할 뿐이었어. 그리고 어느 날 너와 같은 눈을 가진 아이를 발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자식들 내 구역에 마음대로 들어왔었군. 환생한 너는 그 녀석들이 데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너의 모습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네가 어떤 모습이었어도 난 널 알아 봤겠지만.”

그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율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실 널 데려오면 안 됐었다. 하지만 난 불안했어. 약속한 시간이 끝나기 전까지는 네가 이 사실을 알아서도 안 됐었어. 그래서 난 너에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그녀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춘다.

“보고 싶었다. 율링.”

“......미안해...”

“뭐가 말이냐.”

“아무 것도 몰라서...기억을 못 해서...아무 것도 모르고 난 화를 냈으니...”

“네가 잘못 한건 하나도 없어. 그때도 지금도. 넌...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그녀의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아주면서 그는 쿡쿡 웃었다.

“조로...”

“어.”

“...사랑해...”

눈꼬리가 휘어지며 그녀가 웃었다. 그리고 그녀가 쓰러지듯 눈을 감는다.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하얀 공간. 그녀 혼자 서 있었다. 여긴 어딜까. 주변을 둘러보다가 앞으로 걸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어떤 사람들의 형체가 저 멀리 흐릿하게 보인다. 그들은 그녀 가까이로 다가왔다.

“율링~!!너무 보고 싶었어!!정말 얼마나 기다렸나 몰라!”

오렌지 빛 머리를 가진 여자는 그녀에게 달려들어 껴안았다. 옆에 금발의 남자는 울고 있었고 흑발의 여자는 말없이 웃었다. 그리고 그들의 가운데 있는 흑발의 남자의 손에는 원통형의 관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반짝이는 빛이 담겨져 있었다.

“이건...”

“그래. 네가 처음에 조로에게로 갈 때 따라간 빛이야. 그리고 너의 기억이지. 그 멍청한 자식이 마음대로 일을 벌이길래 좀 도와줬지. 어떻게 가는지 알려주지도 않고 말이야.”

나미는 괘씸하다는 듯 주먹을 휘둘렀고 루피는 웃으며 그녀에게 관을 건넸다.

“시싯. 자 율링! 네 꺼야!! 다시 우리 동료로 들어오는 거네!!”

그녀도 웃으며 받아들었다.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과거에 알던 사람들이겠지. 그리고 이제 다시 알게 될 사람들이다. 율링은 관을 꺼내 빛을 품 안에 안았다. 환한 빛의 그녀를 감싸고 그녀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녀가 눈을 떴을 때는 다시 그녀의 방이었다. 그녀는 웃었다.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모든 기억이 연결되었다. 그래. 난 한번 죽었었다. 하지만 이제 다시 살아있어. 그녀가 그대로 밖으로 나간다. 익숙한 이 곳. 그때와 달리 많이 낡아진 대문을 밀고 밖으로 나갔다. 숲의 입구에 서있는 그. 그녀가 활짝 웃는다.

“조로!!!”

그가 돌아본다. 둘은 다시 마주 봤다. 천 년 전과 같은 눈빛으로. 그녀가 그의 가면에 손을 올린다. 그는 가만히 있었다.

“사랑해...조로...”

그녀가 다시 웃었다. 가면에 금이 가면서 조각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너도...하나도 안 변했네...”

“당연한 소리를 하는 거냐.”

여전히 더러운 눈매지만 그녀를 볼 때만은 세상 누구보다 다정한 그 눈빛. 너무 그리웠다.

“보고 싶었어.”

“나도.”

둘은 서로를 안았다. 두 번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고 속으로 다짐하며.

 

그녀가 다시 칸을 불러주자 그녀가 얼마나 감동했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흐느끼는 소리가 성 전체에 울려 펴졌다.

“사모님... 절 다시 기억해주시다니... 다시 사모님을 이렇게 모실 수 있게 되어 행복합니다...사모님...주인님...”

“그만 울어요. 칸. 이제 난 어디 안 가.”

그녀 뿐 아니라 성 안의 모든 사용인들이 행복해서 울던 날. 그녀가 돌아 온 날이다.

 

그리고 결혼식 날.

웨딩드레스와 면사포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몇 배로 증가시켰다. 어쩐지 이런 상황이 부끄러운 그녀. 그녀의 머리를 손봐주고 있는 나미에게 속삭인다.

“너무 긴장 돼...”

“너무 그러지 마. 오늘은 행복한 날이잖아.”

신랑과 신부의 입장이 끝나고 서로가 마주봤다. 시선을 통해 둘은 웃었다.

‘사랑해.’

‘영원히.’

 

그 뒤에는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는 조금은 진부한 결말일 수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니 된 것 아닐까.

 

 

"......쓸쓸했거든요."

 

의외의 대답에 Q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예상했던 대답은 첫째, 잡아먹기 위해서. 둘째, 노동자가 필요해서. 설마 말동무가 필요해서 그랬을 줄은 몰랐다. 한참을 조용히 머그만 만지작거리던 Q는 다시 물었다.

 

"그래서 지금은... 안 쓸쓸합니까?"

 

***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성. 커다란 성의 주인은 인간이 아닌 무언가. 낡은 성에 처음으로 방문한 인간이 원한 것은 정원의 장미.

노인이 빨간 장미를 꺾었을 때 성의 주인은 분노했고 시든 장미 대신 네가 여기 있으라 했다. 그러자 노인은 엎드려 빌며 울었다.

저는 꼭 집에 돌아가야 합니다. 가족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너는 돌아가라. 그리고 네 가족 중 한 명을 이곳으로 보내라.

얼마 후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커다랗고 낡은 성의 문을 두드린 것은 곱슬머리에 안경을 낀 젊은 남자.

당신은 그 노인의 아들입니까? 아뇨. 저는 그 노인의 부인이 데려다 키운 고아입니다. ...당신이 떠날 때 슬퍼한 자들이 있었나요? 아니요. 집으로 돌아가고 싶으세요? 집이 싫어서 이곳에 온 것입니다. 알겠어요. 당신이 지낼 곳을 보여드릴게요.

성의 주인이 바라는 것은 많지 않았다. 만약 돌아가고 싶어지면 바로 얘기할 것. 식사는 함께 할 것. 자기 전, 자고 일어나서 인사를 나눌 것. 그것뿐이었다. 청년은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둘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같이 지내기 시작한 지 3일째 되는 날의 아침에 성의 주인이 물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의 이름을 모르네요."

"Q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특이한 이름이네요. 애칭인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성의 주인을 잠시 바라보던 Q는 다시 싱거운 브로콜리 스프를 먹기 시작했다.

 

"저는 당신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글쎄요. 한동안 저를 부르는 이가 없어서 잊어버렸네요. 아무 거나 원하시는 대로 부르세요."

"네에."

 

 

커다란 성의 수많은 방에서 두 사람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은 서재였다. 따뜻한 벽난로 앞의 소파는 늘 같은 시간에 채워졌다. 둘은 나란히 앉아 각자의 책을 읽거나 종종 얘기를 나눴다. 성의 주인은 Q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즐겼고 때때로 소녀처럼 웃었다. 그럴 때마다 Q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일주일, 한 달. 두 달. 시간은 착실하게 지나갔고 그 사이 Q는 그녀를 다이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Q는 수백 번 망설였지만 결국 성의 주인을 그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다. Q가 처음으로 그녀를 다이스라고 불렀을 때 그녀는 조금 놀란 것 같았다. 하지만 곧 옅게 웃었고 Q는 그것이 허락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다이스는 Q가 왜 자신을 다이스라고 부르기로 결정했는지 묻지 않았다. Q 또한 굳이 말하지 않았다.

성의 주인에게 이름이 붙은 이후 둘은 더 친해졌다. 인사는 점점 더 자연스러워졌고 다이스가 웃는 날 또한 늘어났다. Q의 이야기에 다이스가 밝게 웃던 어느 날 밤, 그는 결국 그녀에게 말했다. 그 이름은 내가 아주 아끼는 이름이에요. 그렇군요. 네. Q의 말에 다이스가 고맙다고 말하며 웃었다. Q는 어쩐지 오늘따라 그 이름을 자꾸만 더 부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다이스."

"네."

"질문이 있습니다."

"뭔가요?"

"왜 여기로 사람을 보내라 했습니까?"

 

Q의 질문에 다이스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Q는 괜한 것을 물었다 싶었지만, 계속 궁금했었다.

 

"......쓸쓸했거든요."

 

의외의 대답에 Q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예상했던 대답은 첫째, 잡아먹기 위해서. 둘째, 노동자가 필요해서. 설마 말동무가 필요해서 그랬을 줄은 몰랐다. 한참을 조용히 머그만 만지작거리던 Q는 다시 물었다.

 

"그래서 지금은... 안 쓸쓸합니까?"

"덕분에요."

"다행이군요."

 

Q의 말에 다이스가 다시 조금 웃었다. 분명히 알 수 있는 그 미소에 Q는 또 다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다이스."

"네."

"당신은... 저보다 나이가 많습니까?"

"비밀이에요."

"...저보다 더 오래 삽니까?"

 

Q의 질문에서 다이스는 그의 두려움을 느꼈다. 한동안 청년을 바라보던 성의 주인은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의 앞에 앉았다.

 

"저도 질문이 있어요."

"뭔가요?"

"당신의 손을 잡아도 될까요?"

"네."

 

곧 커다랗고 털이 많은 손이 하얗고 매끄러운 손가락들을 잡았다.

 

"걱정하지 말아요. 우린 괜찮을 거예요."

 

Q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손을 뻗어 다이스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그녀는 곧 그의 무릎에 얼굴을 기댔다. 방안에는 장작이 타는 소리만이 한동안 울렸다.

 

"Q."

"네."

"그 아가씨 이야기, 또 해주세요."

 

다이스의 부탁에 Q는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그의 옆집에 살던 조그마한 여자. 언제나 즐거운 듯 웃으며 그를 좋아하는 것을 숨기지 않았던 여자. 새처럼 재잘거리고 강아지처럼 따라오던 여자. 그런데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게 된 여자.

 

"그녀는 꽃을 좋아했어요. 개나리, 벚꽃, 수국, 작약... 마당에는 언제나 꽃이 피어있었습니다. 계절마다 다른 꽃이 피었죠. 그녀는 여름을 싫어했지만, 하나만은 좋아했어요."

"...여름엔 장미가 피니까요."

"장미는 여름에 피는 꽃이기 때문...입니다."

 

성의 주인이 고개를 들었다. 곧 그녀의 눈동자에 청년의 놀란 표정이 담겼다.

 

"Q."

"......다이스?"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게 된 여자. 언젠가부터 불이 켜지기 시작한 성.

 

"미안해요."

 

다이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로 돌아갔다. 방안에는 다시 장작이 타는 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Q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다이스의 앞에 앉은 Q는 조금 전에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무릎에 얼굴을 기댔다.

 

"당신이 아까 그랬잖습니까. 우린 괜찮을 거라고.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Q는 가만히 그녀의 무릎을 토닥였다. 잠시 후 그의 얼굴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그는 올려다보지 않았다. 다이스의 눈물은 계속 그의 볼을 타고 흘러서 꼭 Q가 우는 것 같이 보였다. 둘은 한동안 그렇게 앉아있었다. 장작은 계속 타들어갔고 Q는 일렁이는 불빛을 보면서 그녀의 울음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그래서 그들이 어떻게 되었냐고요? 우리는 모두 동화의 끝을 알고 있지 않나요?

그리고 그들은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율링
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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