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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데이

: 6월 14일. 연인들이 서로의 마음을 다시 확인하는 의미에서 키스를 나누는 날
에소루엔

Esoruen

데스페라도 X 에소루엔 로시스

던전앤파이터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는가 싶지만 구태여 말하자면, 데스페라도와 루엔은 주변에서 질색할 정도로 사이가 좋은 커플이었다.

무법지대를 휘젓는 악명 높은 2인조. 한쪽은 사신이라 불리고, 한쪽은 악몽이라고 불리지만 정작 둘만 있으면 깨가 쏟아진다니. 두 사람 손에 죽어간 수많은 카르텔 잔당들을 생각하면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와 그녀는 기본적으로 애정이 끓어 넘치는 인간들이었다.

 

“…그래, 너희가 닭살 커플인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긴 하다만 오늘은 왜 유독 더 지랄 맞게 구는지 물어봐도 될까?”

 

그렇게 말하는 마이스터의 손이 가늘게 떨리는 것은 분명 일에 대한 피로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랜만에 제 작업실로 찾아온 두 사람이,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도 자꾸만 스킨십을 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화를 낼만한 일이지만, 인내심과 교양으로 똘똘 뭉친 마이스터는 스패너로 두 사람을 때리는 대신 먼저 저렇게 물어봐 주는 선처를 베풀었다.

 

“지랄 맞게 굴다니, 뭐가?”

“아니, ‘뭐가?’가 아니지!! 네 녀석 품에 안겨서 자꾸 쪽쪽거리는 네 애인부터 놔 주고 말하지 그래 데스페라도!!”

“숨은 쉬어가면서 화내라, 너 목에 핏대 섰다”

 

‘누구 때문인데!’ 그렇게 외치려던 마이스터는 그 말조차도 제 화를 돋울 뿐이라는 걸 알고 입을 닫았다. 평소엔 그래도 멀쩡하게 떨어져서 앉아있고, 애정표현도 제가 봐도 상관없는 적당한 선을 지키는 주제에 오늘은 왜 이런단 말인가. 그는 오늘 루엔이 데스페라도 품에 안겨서 몇 번이나 입을 맞췄는가를 셀 용기조차 들지 않았다. 캥거루도 아니고, 왜 그렇게 품에 쏙 안겨있는 걸까. 제가 없는 사이에 유아퇴행이라도 온 건가? 수많은 말이 목구멍 안쪽에서 들끓는 와중에도 마이스터는 침착함을 유지했다.

 

“루엔, 너라도 뭐라고 대답해주지 그래? 오늘 왜 이러는 건데?”

“뭐가?”

“너까지 그러기냐!! 왜 하루 종일 뽀뽀하고 자빠진 건지 묻는 거야!! 내 염장이라도 지르려고?”

“아아, 이거”

 

드디어 마이스터가 왜 화내는 건지 이해한 루엔이 소리 죽여 웃었다. 누구는 속에 열불이 나는데, 웃음이 나오나? 마이스터는 자꾸 떨리는 제 팔을 다른 팔로 꽉 잡았다. 치면 안 된다. 작정하고 싸우면 어떻게 될지 몰라도, 주먹싸움은 절대로 진다. 2대 1이라서가 아니라, 루엔이랑 1대 1로 싸워도 반드시 질 것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무법지대의 악몽을 맨손으로 이기는 메카닉이 있을 리가 없지 않는가.

 

“오늘 키스데이라고 해서, 충실히 기념일을 이행하고 있지”

“…그게 다라고 말할 건 아니지?”

“다인데?”

“이…”

 

아차. 방금 욕할 뻔 했다. 마이스터는 침착하게 소수를 세는 것으로 마음의 평화를 찾은 후 데스페라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뭐 왜 뭐’ 입은 아무 말도 안 하지만 눈빛으로 그리 대답해주고 있는 그는 자신과 제 애인은 아무 죄도 없다는 듯 루엔의 허리를 꼭 껴안았다.

 

“그래서, 제너럴 녀석이 그때까지 완성할 수 있겠냐고 묻던데 가능 하냐?”

 

은근 슬쩍 일 이야기로 돌리는 건가 싶지만, 저건 모른 척 하려는 게 아니다. 마이스터의 눈에 두 사람은 정말로, 진심으로, 자기들이 이러고 있는 게 뭐가 나쁜 건지 모르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으니까.

 

“…밤샘 하면 어떻게든 될 걸. 애초에 가능 하냐, 가 아니라 가능하게 해야 하는 거 아냐?”

“그건 그렇지”

“그럴 거면 그냥 명령을 해 주는 편이 좋겠는데, 이래서 황도군이란”

 

어깨를 으쓱인 그는 스패너를 내려놓고 공책과 펜을 들었다. 공학자가 아닌 이상 봐도 모를 수식들의 연속. 다른 나라 언어를 쓰는 사람처럼 두 사람은 알아 볼 수 없는 문자와 식들을 주르륵 적어 내려간 마이스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유롭게는 아니지만, 완성은 가능하겠어. 제너럴에게 가서 전해줘”

“됐어, 안 전해줘도 돼. 아마 될 거라고 할 테니 안 된다고 할 때만 와서 전해달라고 하더군”

“아, 그래?”

 

완전 마음 편하게 부려 먹히고 있다. 제 취급이 이 정도 밖에 안 됐던가. 아니면, 제 실력을 너무 믿는 건가. 후자면 차라리 화는 안 나지만, 그래도 역시 찝찝한 건 어쩔 수 없다.

 

“어쨌든 너희 둘 다 여기서 사라져. 난 일 할 거니까”

“왜? 아직 열차 시간까지 좀 남았단 말이야. 여기서 기다리면 안 돼? 조용히 있을게”

“조용히 하겠다는 게 그러고 있어?! 쪽쪽 소리 때문에 노이로제 올 거 같거든?!”

“뭐야 마이스터, 질투해? 할 수 없네, 마이스터도 뽀뽀 해 줄까?”

 

루엔의 말은 전적으로 놀리는 것에 가까웠다. 그녀 성격이라면 진짜로 입을 맞추려고 들것 같긴 하지만, 그것조차도 장난일 테니 놀리는 게 확실하지. 마이스터는 ‘필요 없어’라 대답하려고 했지만,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든 데스페라도 때문에 대답할 필요도 없어졌다.

 

“누구한테 뽀뽀를 한다는 거야 너. 장난 하냐? 내 앞에서 그런 소리가 나와?”

“아. 데스페라도 또 질투 한다. 농담이야, 농담”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마. 넌 내 거야”

 

아. 그냥 때려야겠다, 역시. 이렇게 무자각으로 사람 염장 지르는 녀석들이 제일 싫다.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안 죽으니 스패너로 때려도 되겠지? 반격하려고 하면 지금까지 참아온 분노를 8비트 랩처럼 읊어줄 수도 있다. 자신은 많이 참았고, 그 참아온 분노의 표출이 스패너 한방이면 충분히 싸다고 생각했으니까! 스패너를 도로 쥔 마이스터는 팔꿈치를 들었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었다.

 

“네, 네. 그리고 너도 내 거고 말이야. 그렇지?”

“알면 다른 놈한테 입술 비비고 하지 마라 확 쏴버릴 지도 모르니까”

“날?”

“아니 상대를. 저 녀석이라도 쏠 거니까”

 

이런 미친놈을 봤나. 애인 뽀뽀 한번 때문에 자길 쏘겠다고? 마이스터는 아무리 들어도 진심인 데스페라도의 말 때문에 결국 회심의 일격을 날리려는 걸 포기했다. 잊고 있었는데, 데스페라도는 그 무법지대에서도 사신이라고 불리는 남자였다. 자기 연인에게는 따뜻하고 좋은 녀석일지 몰라도, 그 외의 인간들에겐 건들면 황천 가는 폭탄이나 다름없었다.

 

“…그냥 제발 좀 가라. 내가 빌게 어?”

“뭐, 일해야 한다면 어쩔 수 없지. 데스페라도 우리 저녁 먹으러 갈까?”

“그럴까,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일해야 해서’ 쫒아내는 것만이 이유가 아니지만, 어차피 지금까지 상황을 봐선 말해줘도 납득하지 못하겠지. 작업실에서 나가는 그 순간 까지도 입술을 비비고 있는 두 사람이 시야에 사라지자마자 마이스터는 쓰린 속을 달래려는 듯 냉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딱히 연애 같은 건 관심도 없어서 옆구리가 시리다던가 하는 건 아니지만,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키스데이고 나발이고 없어지면 좋겠네”

 

내년에도 저러고 다닌다면 그땐 제 작업실엔 출입금지 시켜야지. 굳게 다짐한 마이스터는 제 애인이나 다름없는 기계와의 시간을 위해 마르바스의 하인을 불렀다.

키스데이

류현

마츠카와 잇세이 X 이류현

하이큐-!!

 

 

현재 이 상황은 나에게 있어서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답지 않게 눈을 반짝이면서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라던가, 묘하게 들떠서 캘린더 앱을 켜놓은 그 액정이라던가 말이다. 둘 다 그리 달가운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 왜 그렇게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거니.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막상 대답을 듣는다고 해도 이득이 없을 것 같아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냐고 안 물어봐?”
“부담스러운데.”
“얼른.”

대답을 재촉하는 그의 시선에 불안하게 흔들리던 눈동자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입술을 괜히 물었다가 놓기를 반복하면서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니까, 사실 그가 이렇게 묻기 시작한다면 나에게 좋은 일은 거의 없었다. 그에게만 좋은 일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의 독촉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눈앞에서 이렇게 애달프게 바라보는 시선을 거부할 수도 없기에. 깊게 들이마셨던 숨을 한숨처럼 내뱉은 후에 턱을 괴었던 손을 풀고 두 손을 기도하듯 끌어모았다. 제발 그가 이상한 소리를 하지 않게 해주세요, 하면서.

“그래서, 왜 그래?”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아?”

그가 물어오는 질문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오늘이 무슨 날이냐고? 잠깐, 그는 며칠이냐고 물은 것이 아니라 무슨 날이냐고 물어왔다. 기념일? 기념일을 챙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었다. 생일? 그럴리가. 그의 생일은 학기가 시작하기도 전이다. 그렇다고 내 생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렇다면 뭘까, 뭐였지?

“배구부 단체 회식?”
“그럴 리가 있어?”
“그럼 뭔데, 뭔데 마츠가 이렇게나 신이 났어?”

어깨를 으쓱이면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현을 했다. 곧 이어진 웃음소리와 함께 그가 아까보다 좀 더 허리를 숙였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책상이 유일한 방패막이인 것 같았다. 가까워진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그의 온기와는 정 반대로 낯설게 차가웠던 것 같았다. 그는 전에 없이 신이 나 있었다. 좋아하는 음식을 앞에 둔 것보다 더 들떠있는 것 같은 모양새에 나는 다시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이렇게나 가까운 거리는, 조금 곤란하다.

“6월 14일.”
“오늘이지.”
“키스데이래.”

그런 걸 대체 어떤 놈팽... 사람이 알려준 거야? 대뜸 그런 말을 하는 마츠카와의 얼굴은 정말 산뜻하기 그지 없었다. 와, 이 사람이 이렇게나 밝은 얼굴로 웃기도 하는 구나, 하고 새삼스럽게 다시 깨닫게 해주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잔뜩 굳어버린 머리를 어떻게든 다시 굴리려고 노력했다. 그가 뱉은 말을 조심스럽게 다시 곱씹어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이 상황에 어울리는 말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키스데이? 키스? Kiss? 내가 알고 있는 그 키스를 말하는 게 맞나? 수십번을 때리는 머리 속의 질문과 다르게 능글맞게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있는 그는 퍽 여유로워보였다. 참 담담하다. 어떻게 이런 말을 뻔뻔하게 뱉을 수 있지! 그것도 학교, 단 둘도 아니고 사람들이 진뜩 있는 교실에서 말이다. 이 남자의 뻔뻔함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건 예상 외로 더 뛰어난 것이었다. 그렇구나, 그랬구나. 키스데이. 말라온 입술을 혀를 내어서 쓸었다. 그의 시선이 진득하게 자신에게로 다가와 자신을 훑어내리는 것만 같았다.

“뭘 바라.”
“뭐겠어?”
“잊어버리신 것 같은데, 여기는 교실인데?”

지금 그게 중요해? 그런 대답이 들려왔다는 사실에 나는 잠시 자신의 귀의 이상을 의심해봐야 했었다. 지금 이 사람 뭐라고 했지? 그게 중요하냐고? 잠시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면 나에게 중요한 게 대체 뭐가 더 있지? 입술과 입술이 맞부딪히는 그런 것보다는 학생답게 예의를 지키는-, 아니 이것도 나에게는 별로 어울리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여기는 교실이란 게 중요하고 여기서는 안 해.”
“다른 곳에서는 해준다는 소리?”
“켁.”
“기대할게. 여자친구 님.”

능글맞게 입꼬리를 끌어당긴 그가 손을 뻗어 흐트러진 내 머리칼을 쓸었다. 답지 않게 조심스러운 손길에 한 번, 그리고 제 멋대로 이야기를 진행시켰다는 사실에 한 번 더 그렇게 두 번 놀랐다. 저기, 마츠? 뒤늦게 그의 이름을 외쳐 불러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렇게 가버리면 어떡해? 구겨지는 표정은 이미 관리가 될 수 있는 지경을 아득히 뛰어 넘어 있었다. 키스데이, 그 날에 꼭 키스를 하란 법은 없잖아? 그래. 이거다. 나는 이렇게 반박을 했어야 했던 거였다. 멍청한 이류현. 영악한 마츠카와 잇세이! 뒤늦게나마 자신의 머리칼을 손으로 부여잡고 입술을 잔뜩 깨물어봤지만 달라지는 사실은 하나도 없었다. 아아, 이 이기적인 남자친구 님. 더 이상 보이지도 않는 그의 뒷모습을 향해서 의미 없는 욕설을 들이부었다.

“왜 그렇게 무서운 표정이야?”
“그러게!”
“화났어?”
“아니!”

잔뜩 표정을 구기고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그가 나가버린 교실 문만을 바라보고 있으면, 친구가 나에게 다가와 걱정을 해주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나를 향해 건네는 말에 이미 잔뜩 농락당했다는 생각에 흥분해 있는 나는 높은 소리가 빼액 하고 튀어나가고 말았다. 아아, 친구에게는 조금 있다가 진정한 후에 진심어린 사과를 건네야 겠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던 사이, 그나마 존재감이 옅어져있던 사실이 다시 치고 올라와 안 그래도 바짝 올라있는 감정을 더욱 더 끌어올렸다. 빌어먹을 키스데이! 대체 누가 이런 기념일을 만들어서! 결국 그렇게 이어진 원망은 애꿎은 곳으로 향했다. 모든 연인이 달달한 사랑을 나누는 키스데이, 나와 나의 연인은 달달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기념일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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