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이트 데이
: 3월 14일. 남성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탕을 선물하여 사랑을 고백하는 날


산희
오시타리 유시 X 나가사와 치히로
테니스의 왕자
* 어색한 사투리 주의
“치히로 씨.”
“치히로 선배!”
“치히로!”
유시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근처에 있는 치히로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여러 남학생들에게 둘러싸여 가지각색, 여러 가지 모양의 사탕을 가득 품에 안고 있었다. 치히로는 예의 친절한 얼굴로 사탕을 준 남학생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다들 정말 고마워. 이렇게 많은 사탕을 학교에서 받는 건 처음이야!”
그 말이 끝나자 모두가 그녀를 둘러싸고 괴성에 가까운 환호성을 질렀다. 치히로는 그런 그들의 반응이 익숙한 듯 시계를 보더니 손인사를 건넸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수업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유시가 본래의 포커페이스를 테니스 기술로까지 끌어들이는 사람이라면, 치히로는 자신이 가진 매력이 어떤 것인지 알고, 그를 완전히 이용하는 데 능숙한 사람이었다. 치히로는 자기 자리에 앉아 수업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가 수업을 듣는 일이 흔치 않다보니, 학생들은 수업을 듣기보다 치히로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 물론 유시에게는 참으로 바보 같은 일이었겠지만. 수학시간이었기에 유시는 그녀를 관찰하던 걸 그만두고 수업에 열중했다. 열심히 듣고 있던 치히로가 그런 유시를 보고 싱긋 웃은 건 보지 못한 채였다.
“굉장하네, 치히로. 점심시간 전까지 이만큼이나 받은 거야?”
“응. 가쿠토도 조금 먹을래? 나 혼자서는 이걸 다 먹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무슨 뜻으로 준 건지 뻔히 다 아는데 먹을 수는 없잖아.”
“하지만 이걸 다 먹으려면 며칠이나 걸릴지 모르고, 혼자서 이만큼이나 먹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가쿠토가 두 사람의 반을 찾아오자마자 사탕을 잔뜩 받은 치히로와 한참이나 이야기를 나눌 동안, 유시는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이건 오렌지 맛이고, 이건 딸기 맛, 그리고 이건……,’ 이라고 말하며 가쿠토와 함께 사탕을 탐색하는 치히로는 꽤나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체중 관리를 해야 하니 눈으로라도 사탕을 맘껏 먹으려는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녀의 눈이 반짝이지 않을 리가 없으니까. 가쿠토는 열심히 사탕에 관해 치히로와 이야기를 시작했고, 그녀는 아예 사탕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가쿠토, 이 사탕 칼로리가 몇이나 될까?”
“정말 먹고 싶은가 보네.”
“하나만이라도 맘 놓고 먹고 싶은데 다들 너무 큰 것들만 줘서 곤란해.”
“그 전에 다 녹아버리지 않을까?”
“아, 그걸 생각 못 했어. 이 아까운 걸 전부 녹게 두어야 하는 건가?”
“아토베한테 부탁이라도 하는 게 어때?”
“아무리 아토베 군이라도 이렇게 많은 사탕을 보관해주는 건 힘들겠는데.”
두 사람의 바보 같은 이야기에 유시는 그들을 바라보던 것을 멈추고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마 수업이 끝나고 돌아갈 때까지 저 둘은 사탕 이야기만 늘어놓을 게 뻔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가쿠토의 예상마저 맞아 떨어진 나머지, 치히로가 받은 사탕은 거의 녹아 있었다. 아쉬움에 치히로가 사탕이 든 상자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자, 유시는 혀를 찼다. 그러면서도 얼마나 사탕이 먹고 싶으면 저럴까 싶기도 했다. 치히로는 8세 때부터 완전히 연예계에 들어섰다. 어린 나이였지만 눈치가 빠르고 상대가 원하는 방향으로 잘 나아가는 이였기에. 다른 또래들에 비해 더 많은 것들을 주변에서 요구했다.
조금 더 예쁘게 웃기, 조금 더 쾌활함을 어필하기, 조금 더 사랑스러울 수 있는 법을 연구하기.
그것을 그녀는 군말 없이 소화해 내었다. 언젠가 가쿠토가 그런 일이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치히로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것들 하나같이 익숙해서 아무렇지 않은걸.”
그렇게 말하는 그녀에게는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굉장히 낯선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가쿠토는 난감한 표정을 짓다 애써 웃어보였고, 치히로는 물론 아무렇지 않게 가쿠토의 말을 받아주고 있었다. 유시만이 치히로가 가지고 있는 차분함을 알아채었을 뿐이었다.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가뜩이나 잘 다스렸던 본인의 마음을 철저하게 감췄다. 그리고 학교에 갈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 주어지면 꼭 학교에 갔다. 집에서도 결코 쉬지 않는지, 그녀의 어머니인 나가사와 여사가 종종 유시를 만날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치히로는 요즘 집에서도 그다지 맘 놓고 웃지 않아.”
좋아하는 음식도 마다하고 늘 열심히 자기 관리에 힘쓰는 모습은 그대로였지만, 어쩐지 예전과는 다르게 즐겁지 않아 보인다는 의미였을 거라고 유시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날, 예전에 그녀와의 일이 생각났다.
“유시.”
“와.”
“유시, 유시……,”
“전화 끊으래이, 간다.”
어딘가 겁에 질려 있던 목소리에 유시는 그녀의 전화를 받자마자 곧장 치히로의 집 앞으로 향했다. 그녀는 담벼락 아래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와 그라고 있노.”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 치히로는 눈물을 방울방울 떨어뜨렸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곧장 유시의 품에 기대어 흐느꼈다. 유시의 옷이 눈물로 젖어갔다.
“아, 아빠가. 유시, 아빠가.”
그리고 내뱉은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오열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유시는 그녀의 부모가 이혼하고 치히로의 아버지는 홀로 러시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는 치히로가 하고 싶어하는 말 대신 등을 토닥여주며 가방에 넣어 두었던 사탕을 하나 까 입에 넣어주었다.
“뚝 그치라.”
“나 아기 아니야!”
말은 퉁명스럽게 내뱉었지만 그녀는 유시가 입에 넣어준 사탕을 오독오독 소리가 나도록 깨물어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사탕에 기분이 좋은지 약간의 미소가 감돌아 있었다. 그 때 이후로 치히로는 사탕을 좋아했다. 좋은 기억이었나 싶어 다행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사탕에 목을 매달다시피 하는 모습은 조금 곤란했다. 한 달에 한 번 내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먹지 않으면 신경이 곤두서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아는 건 유시밖에 없었기에 그가 대체로 그런 치히로를 달래주어야 했다. 그는 녹아버린 사탕을 보다 시무룩해져 있던 그녀에게 그 때 그랬던 것처럼 입 안에 사탕 하나를 넣어주었다. 그에 놀랐던 치히로가 도르륵 소리를 내며 사탕을 입 안에 굴려 깨물어 먹기 시작하더니 집으로 돌아가려는 유시의 뒤에 따라가며 물었다.
“유시.”
“와.”
“오늘은 좋아하는 사람한테 사탕 주는 날인데, 유시는 날 좋아해?”
“집에 들어가서 자빠져 자라.”
“아, 정말 무드 없어! 그래서, 나 좋아해?”
“가스나가 뭐라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