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발렌타인 데이

: 2월 14일. 여성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을 선물하여 사랑을 고백하는 날
청아루

청아루

토도로키 쇼토 X 쿠로미야 루오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어린 소녀들은 이 날만큼은 빌런도 평화로이 지나가주길 소망하는 2월 14일. 사랑을 위한 날이 돌아왔다. 해마다 돌아오는 날이지만 해마다 길거리가 커플로 가득해서 묘하게 부러움을 자극하는 날이기도 했다. 누군가는 서툴게 쓴 러브레터를, 누군가는 밤새 열심히 만든 수제 초콜릿을, 누군가는 화려한 이벤트를 준비해 선물하는 날은 달콤한 날이요. 사랑하는 사람을 쟁취하는 날이기도 한다. 그리고 어쩌면 여러 행사들 중 가장 자신과 동 떨어진 날이 아닐까. 그리고 올해는 최악이 아닐까.

 

  학교 가는 길이 단내로 골목의 구석구석을 채우는 통에 작게 스며든 피 냄새를 맡지 못했다. 눈치를 챘을 적에는 이미 날카로운 단도가 어깨를 스치고 홀연히 사라졌다. 멀리서 빠르게 던진 칼날은 생각보다 깊게 살을 긁었다. 베인 어깨를 움켜잡고 주위를 둘러보아도 주변에서 소스라치게 놀란 인영들의 그림자만 보일 뿐, 피 냄새를 몰고 다니는 어둠은 보이지 않는다. 등교, 출근 시간이라 사람이 더 몰려있는 것을 생각하면 애초에 가까이에서 던지지는 않았을터다. 소녀는 욱신거리는 상처를 더 세게 누르며 학교로 다시 향했다. 주변 병원보다는 출석을 하고서 양호실에서 리커버리 걸에게 치료를 받는 것이 더 괜찮다는 계산이 맞아떨어지기를 바라며, 자신이 유에이 고교의 히어로 과 학생이라는 걸 부디 모르고 던졌길 바라면서.

 

  “등교길에 괴한이라니 무슨 일이야?”

  “피, 피피피! 피 많이 나잖아 어서 양호실 보내!”

  “지혈이라도 해야지 이러고 오면 더 안 좋아지잖아.”

  “지금 이 상황에 그걸 따질 때야?!”

 

  가방만 두고 바로 양호실로 갈 생각이었는데 반 친구들에게 둘러싸여져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이제 슬슬 어지러운데. 자신보다 더 호들갑을 떨며 반응하는 반 아이들이 낯설어 교실을 나서기 위해 몸을 돌리자 저 끝에서 색이 다른 두 눈과 마주쳤다. 괜찮냐고 묻는 듯한 얼굴을 오래보고 싶지 않아 그대로 지나쳐 밖으로 나왔다. 이이다 군과 오챠코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이마저도 뒤돌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걱정해주는데, 신경써주고 있는데, 괜찮다라는 입발린 대답도 못하고 나왔는데. 머리와 따로 놀아나는 몸은 발을 옮겨 양호실로 향하고 있다.

 

  리커버리 걸과도 아무 대화 없이 묵묵히 치료를 받고 나오자 그제서야 조금 시야가 트인 것 같았다. 어쩌다 다쳤냐고 물어볼 법도 한데 아무 말 없이 치료만 해준 건 분명 그녀의 배려가 내제되어 있겠지. 주변에 폐를 끼치고 있구나. 역시 히어로 같은 걸 선택하는게 아닌데. 하루에도 몇 번씩 중얼거리는 한마디는 이제 소름끼치게 익숙하다. 마치 자신이 아닌 다른 인격이 머리도 마음도 휘젓고 다니는 것 역시.

 

  교실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고 창밖의 구름을 바라보는 눈이 유독 초점이 안 맞았다. 일반과는 한참 이벤트를 즐기는지 소란스러웠고, 옆의 B반도 평소보다 들떠보였다. 다들 오늘을 오늘에 맞게 하루를 보내는데 나만 이런건가. 발렌타인 데이는 여자아이가 좋아하는 남자아이에게 초콜릿을 건네며 고백을 하는 날. 누가 정했는지 빌런보다도 질이 나쁘다. 차이면? 오늘 같은 날이 제격이라며 성심성의껏 준비한 고백이 차인다면? 이는 변하는 것이 무서워 시도조차도 안 했을 친구라는 선을 지키는 관계를 ‘고백을 위한 날’이라며 사람을 절벽에서 밀치고, 그 떨어지는 심정으로 내몰려 고백하는 아이는. 친구라는 이름마저 잃은 안쓰러움을 누가 구해줄 거지? 그 위기는 히어로조차 구해줄 수 없는데.

 

  과거 자신도 절벽으로 밀쳐질 초콜릿의 위기를 겪어봤지만 이는 입 밖으로 꺼내본 적도, 기억도 떠오르기 싫다. 직접 만들 용기조차 없어 깔끔한 포장의 선물용 초콜릿을 사다가 가방에 넣고 가져갔을 뿐. 건네지도 않고 혼자 먹었다. 가끔 한쪽 눈 위에 붉은색과 하얀색으로 반으로 색이 나뉜 장미꽃이 시들어 부스러지는 상상을 해보지만 꽃과 닮은 사람이 준 처음 모습 그대로 굳어져 있어 허탈감을 느낀 적도 있었다. 아주 먼 예전으로 기억을 더듬어도 가장 처음부터 곁에 있던 소꿉친구는, 토도로키 쇼토는 입만 무례할 뿐 얼굴이 좋아 자주 다른 동급생 여자아이에게 불려 고백을 받기도 했다. 그럴 때면 뒤에서 바라보기만 하고 신경도, 관심조차 갖지 않았지만 늘 먼저 돌아온 토도로키의 뒤에서 울먹이는 여자아이가 자신을 원망과 부러움을 담고 노려보는 눈빛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저 소꿉친구로 옆에 있을 뿐인데. 나는 너처럼 따로 불러내어 고백할 용기도 없을 텐데. 그럼에도 늘 해마다 챙기고, 지금도 가방에 들어있을 초콜릿을 혼자 먹을 생각을 하니 다친 어깨가 아까보다 더 욱신거려서 눈의 장미에게 물방울을 먹여준다.

발렌타인데이

강루

텐쇼인 에이치 X 시가라키 미츠루

앙상블 스타즈!

 

 

* 원작 파괴 多

  “미카! 여기, 사탕 좋아하지!?”

  “시가쨩, 왠 사탕인가? 오늘이 내 생일인기냐? 아니면 시가쨩?”

  “아니! 오늘 발렌타인 데이잖아! 미카, 설마 발렌타인 데이를 잊어버린 거야?”

  “응아아, 깜빡 잊고 있었다 아인가, 그래도 요맘때쯤 단 것들을 잔뜩 받는 건 기억하고 있었데이! 그나저나, 저 큰 사탕보따리는 무엇인고? 시가쨩이 들고 있는거! 누구 줄낀가?”

  “비밀이야! 알려주지 않는다고 삐치지는 않을거지? 다른 애들한테도 비밀! 미카 스승님이나 마드모아젤에게도 비밀이야!”

  2학년 B반 아이들과 같은 동아리 학생들에게 차례차례 사탕이나 초콜릿을 모조리 다 돌리고 남는 건 편의점에서 선물용으로 파는 큰 발렌타인 바구니였다. 아주 큰. 분명 저가 몽땅 다 먹으면 당뇨병으로 응급실에 실려갈

터였다.

  한참을 고민하다 산 발렌타인 선물용 바구니였다. 들었다 놓았다, 카운터에 조금씩 먹으면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도 괜찮겠죠? , 핸드폰을 켜서 통장 잔액을 확인하고 , 메일 조금 보내고 , 곧 하나밖에 남지 않아버리자

황급히 바구니를 들고 카운터로 달려가 결제해버렸다. 곧 알바생이 빈 자리를 채우려는 듯 창고에서 새로운

바구니를 꺼내 진열대에 놓아버려서 당황해버렸지만.

  오후 6시, 하늘이 빨간색과 주홍색 물감으로 색을 칠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수업이 끝나서 다른 교실들의 문은 모두 굳게 잠겨져 있고, 학생들은 띄엄띄엄 보였다. 그 와중에 활짝 열려져 있는 학생회실 문. 아마 오늘 사탕을 돌리러 수예부에 들렀을 때 보았던 슈 선배의 얼굴이 사람 한 명 죽이고도 남을 표정이었으니 에이치 선배는

분명 등교했고, 지금즈음이면 학생회실에 있을 것이었다.

  “에이치 선배!”

  케이토 선생님 – 케이토 선생님은 항상 내가 따라다니며 선생님이란 호칭을 붙일 때마다 안경을 추켜올리며

저지시켰다 - 께 혼날 것을 작정하고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아마 반성문에 설교 3시간으로는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었다. - 불쌍한 - 유즈루에 토리까지 있으면 아마 토리는 꼴 좋다며 낄낄거리고 유즈루는 토리를

저지시키고 나에게 사과를 하겠지. 아니면 눈치 빠른 유즈루는 내가 사탕이 잔뜩 든 바구니를 든 걸 보고 토리

목덜미를 끌고 나갈지도 몰랐다.

  “어 미츠루, 무슨 일이니? 네 성격에 학생회 일을 하러 제 발로 걸어들어왔을 리는 없고..♪”

  “엑, 저 그래도 토리만큼 농땡이 피우지는 않는다구요? 그나저나, 남은 사람들은 어디 갔어요?”

  망상에 잠겨 있던 저를 다시 수면 밖으로 끌어내버린 건 에이치 선배의 목소리였다. 민트향이 잔뜩 들어가서

듣기만 해도 상쾌해지는 목소리. 목소리가 좋으니까 아이돌도 하시는 거겠지. 온갖 생각으로 흐려지려 하는

정신을 다잡기라도 하듯이 눈을 깜빡이며 애꿎은 신발코를 계속 바닥에 긁었다. 그리고 갑작스레 느껴지는

발렌타인 데이 선물용 바구니의 무게감. 어떤 타이밍에 드려야 할까?

  “귀여운 토리는 또 학생회 일을 하다 도망쳐버렸고, 유즈루는 그런 토리를 잡으러 갔어. 케이토는 홍월 레슨이 있는지 잠시 자리를 비웠어. 후후...♪ 그래서 지금 나뿐이었는데, 미츠루가 왔네? 심심하려던 차에 잘됐어♪”

  에이치 선배의 눈이 스리슬쩍 휘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푸른색 눈이 선배의 눈살에 살짝 가려졌다 다시

나타났다. 그 표정이, 병원에서 처음 만났을 때와 너무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때에도 저는 점적 주사에

다리를 지탱하며 서 있었었고, 에이치 선배는 의자에 앉아 있었었지. 저를 쳐다보는 에이치 선배의 눈 색이

너무나 예뻐서 먼저 말을 걸었던 기억이 어슴푸레 기억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생각나는 흑역사들. – 저는

에이치 선배를 프로듀스과로 전과하기 전까지 동갑으로 알고 반말을 썼다. -

  “아, 맞아. 에이치 선배, 오늘이 발렌타인 데이잖아요,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이나 사탕을 주는 날! 어떠세요. 사탕은 꽤 받으셨어요? 초콜릿이나!”

  “먹고 싶어도 병원에서 보기만 하면 뺏어서 말이야, 모두 돌려보냈어. 후후♪ 혹시 미츠루가 들고 있는 저

바구니에 들어있는 건 사탕이니?”

  “어, 아마도요..? 에...”

  멋쩍음에 뒷통수를 슬쩍 긁었다. 맞아, 드려봤자 병원에서 간호사나 의사 선생님게 뺏기겠구나, 학교에

숨긴다고 해도 케이토 선생님이 바로 수거해 가시겠지. 늦어도 너무나 늦어버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밀려오는 후회감. 집에 가져가면 엄마에게 뺏길 게 분명하고, 학교에다 두면 유통기한이

지나버릴 때까지 먹지 못할 게 확실하고, 어떡하지? 편의점에 다시 가서 환불해달라고 하면, 환불해 줄까?

  “미츠루, 그 바구니, 나에게 줄 거였지?”

  “어.. 맞아요! 그런데.. 드리면 못드실게 너무 뻔해서.. 따로 반 아이들이랑 나눠먹을까 생각중이였어요!

아니면 기념으로 바구니라도 따로 빼서 드릴까요?”

  그래, 반 아이들하고 나눠먹으면 금방 해치우지 않을까? 많이 남으면 부활동 할 때 더 나눠주고... 뒤로

바구니를 감추며 에이치 선배에게 슬쩍 웃어보였다.

  “미츠루가 주는데, 굳이 사양할 필요는 없잖아? 후후.. 이리 줘♪ 어떻게든 먹을 테니까 말야, 잘 먹을게♪”

  선배의 말에 넋이 빠진 듯 뒤로 숨겨두었던 발렌타인 선물용 바구니를 책상에 슬쩍 올려두었다. 그리고 갑작스레 밀려오는 당혹감에 붉어지는 얼굴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에, 엑? 선배, 진짜 드시게요? 이거 사탕이랑 초콜릿 장난아니게 많은데, 드시다가 당뇨병 생기실지도

몰라요! 아니면 살이 찌시거나.... 선배 살 찌시면 안되잖아요!”

  “정 못 먹겠다 싶으면 반 아이들하고 같이 먹으면 되니까 말이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지, 진짜죠? 중간에 뺏겨도 선배, 제가 줬다고 말하기 없기! 이거 케이토 선생님께 들켰다간, 저 3시간짜리

설교로 끝나지 않을지도 몰라요!”

  - 그리고, 화이트데이에는 세배로 주기! 약속이에요! - 걱정하지 말라는 에이치 선배의 목소리를 들으며

학생회실을 빠져나왔다. 덜커덕. 하고 닫히는 문 소리. 에이치 선배에게 다시 한번 절대로 말하지 말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또 친한 후배에게 발렌타인 선물은 무사히 전달했다는 메일 하나. 아, 에이치 선배에게

메일 왔다. 무슨 내용이지? 다시 핸드폰을 켜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고 실실 흘러나오는 웃음소리.

  「 미츠루, 행복한 발렌타인 보내! 」

  에이치 선배도 행복한 발렌타인 보내세요!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