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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님

매그너스X르네

메이플스토리

어느 평화로운 날, 메이플 월드의 루디브리엄 근방에 있는 꿈과 사랑이 넘치는 ‘판타스틱 테마파크’. 날씨는 따사롭고 햇빛은 화창하고, 신나는 음악이 흐르는 배경에 누군가 불어 놓은 비눗방울이 반짝이며 떠다닌다.

 

 

“소풍하기 정말 좋은 날이야...!”

 

 

르네는 그렁그렁하게 감격이 맺힌 눈으로 행복하게 두 손을 맞잡고 살랑이는 봄바람을 들이마셨다. 따뜻한 바람에 살랑이며 흐트러지는 새까만 머리카락, 도톰한 분홍색 윗도리에 딱 달라붙는 청바지를 입고 어쩔 줄 모르게 열로 들뜬 볼을 한 얼굴은 꿈꾸는 소녀 이하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매그너스 님, 저기 가요, 저기!"

 

 

귀여운 미소를 함뿍 머금고 한껏 들떠 신나게 뛰어가는 르네의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붓하게 팔랑거렸다. 햇살 끝에 사르륵 부서지며 눈부시게 빛나는 검은 머리카락, 그보다 더 반짝이는 환한 웃음을 띤 얼굴, 누가 봐도 저절로 따라 웃음을 지을 만치 사랑스러운 기쁨을 그득 담은 표정을 한 르네의 손끝에, 어울리지 않는 남자가 하나.

 

 

“대체 내가 왜 이런 곳으아아.”

 

 

매그너스는 약간 죽고 싶었다.

쪽팔린다. 개 쪽팔린다. 진짜로 세상에서 제일 쪽팔린다. 변장도 안 하고 왔으면 그는 그냥 혀 깨물고 죽었을 것이다. 변장이라 봤자 노바족의 상징인, 용을 닮은 뿔과 꼬리와 날개를 감춘 것뿐이었지만... 그나마 그것만으로도 그가 그 '군단장 매그너스' 이리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있으면 자살한다.

 

사실 변장을 했대도 시선이 좀 죽고 싶을 정도로 따갑긴 했다. 유원지 한가운데 험악하기 그지없는 인상의(심지어 눈가에 길게 흉터까지 있는) 이 미터짜리 근육질 사내 하나... 가 핑크색 티를 입고... 단순히 안도되는 것은 그가 자신의 의지로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는 증거가 손을 끌고 룰루랄라 앞장서고 있다는 점 정도였을까.

 

 

“솜사탕이다! 솜사탕~~!”

 

 

...그래도 별로 안도 안 되는데. 그는 정말 약간, 죽고 싶었다.

 

 

 

그러니까 사건의 시작은 겨우 일주일 전, 그가 아무 생각도 없이 시작한 내기의 대가에서부터였다.

 

 

"이겼어요! 이겼어요! 매그너스 님, 제가 이겼어요!"

"......너 밑장 뺐냐?"

"밑장은 매그너스 님이 빼셨잖아요. 두 번이나 그 짓 하신 거 제가 봤어요."

"......젠장.”

 

 

밑장까지 뺐는데도 이겼다 이거지. 매그너스는 미간을 모으며 손에 쥔 카드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척 봐도 쓸데없이 고급스러운 문양이 들어간 카드 안에 든 그림이 영 못마땅했다, 그렇게 바라본다고 내용물이 바뀔 리도 없었지만.

 

 

“어떻게 스트레이트 플러시를 쳤는데 그걸 이기냐? 너도 밑장 뺀 거 아냐?”

“게임을 하면 이겨야죠! 것보다 제가 매그너스 님을 상대로 사기를 칠 리가 없잖아요!”

“......하긴, 사기 쳤으면 내가 알았겠지.”

 

 

사기 쳤으면 표정이 저렇게 여유 만만할 수가 없다. 이상하게 히죽히죽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르네는 속임수를 쓰면 누구라도 단숨에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표정변화가 심각했다, 단순해빠져서 히히 웃는 얼굴로 배팅하는 꼴이 영 웃겨먹어서 사기적인 카드로 물 좀 먹여 주려고 했더니 제일 사기적인 카드를 들고 있더라. 이거 완전 운빨망겜 아냐.

 

매그너스는 구깃구깃해진 표정을 애써 펴려 노력하며 테이블 위에 카드를 던졌다ㅡ으아, 내 컬렉션! 하고 실없는 르네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애초에 진짜 컬렉션이면 써먹지도 않았을 것이다ㅡ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유쾌하지는 않았다. 지는 것 싫어하고 손해 보는 것 싫어하는 그에게 후자는 당연한 것이지만, 아마 전자는 그러니까.

 

 

“매그너스 님, 매그너스 니임, 르네 이겼는데...”

 

 

...하고, 간식 기다리는 개마냥 눈을 반짝거리는 르네가 바로 눈앞에 있었기 때문에.

 

내기 했다 이거지, 내기 했다 이거야. 온 눈빛으로 ‘잊은 거 아니죠, 거짓말 한 거 아니죠, 르네를 배신하지 않을 거죠.’를 외치고 있는 르네는 지나치게ㅡ적어도 매그너스의 눈에는ㅡ 귀여워빠졌고 그만큼 좀 웃겼다.

나를 뭘로 보냐며 한 마디 덧붙여 주고 싶었지만 두 번이나 크게 뒤통수를 친 전적이 있는 탓에 행성 안팎에 배신자로 굳어져 버린 그가 그런 말을 했다가는 별로 영양가 없는 눈빛만 받고 말 것 같기에 매그너스는 속으로는 어쨌든 겉으로는 영 불만스러운 표정을 고수하며 의자의 등받이에 날개를 기댈 뿐이었다.

 

 

“그으래. 젠장, 그깟 소원, 들어 주지. 뭐든 말해 봐.”

“뭐든지요?”

“그렇다니까, 아ㅡ 다 이겨먹은 판이었는데 어떻게 그걸 치냐. 너 진짜 무슨 수 썼지.”

“아니거든요! 그냥 간절하게 하늘에 빌었어요! 왜냐면, 왜냐면 르네 꼭 매그너스 님한테 빌 소원이 있었어서...”

“얼씨구, 얼씨구, 얼씨구.”

 

 

간절히 빌면 우주가 들어주디? 매그너스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그의 업신여기는 제스쳐에 르네의 표정이 간식 뺏긴 개처럼 그렁그렁해졌지만 매그너스가 그녀를 아무리 귀이 여긴대도 그 정도 얄팍한 수에 넘어갈 수가 있었다. 그는 고급스럽고 위엄 있는 모양새의 테이블 위에 영 어울리지 않게 놓여 있는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병 속에서 귀여운 흰색 무늬가 있는 동그란 사탕을 하나 꺼내 르네의 입에 밀어 넣었다.

영 영문도 모르고 사탕을 문 르네의 눈매가 동글동글하게 누그러지더니 이내 놀라우리만치 단순하게 풀린 표정을 짓는다, 그와 눈을 마주하자 배시시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방금 승리를 거머쥔 후라 제법 기분이 좋은 상태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겨우 사탕 하나 쥐어 준 정도로 간단하게 풀리고 마는 표정이 정말 귀엽고 멍청하고 귀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매그너스는 간질간질한 손끝을 괜히 매만지며 비죽비죽 말려 올라가려는 입매를 가다듬었다.

 

 

“매그너스 님, 저어, 정말이죠, 정말... 뭐든지 들어 주실 거예요?”

 

 

헤헤 웃던 르네가 이내 뺨을 한가득 물들이며 은근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빛마저 숨을 죽인 듯이 은은한 검정만을 두른 눈동자가 그 수줍음과는 어울리지 않게도 꽤나 매혹적이어서, 그 달짝지근한 눈빛 속에서 뭔가 엉큼한 기색을 읽은 매그너스는 제 입가로 새어나가는 웃음을 참으려 일 분 가량 노력해야 했다.

 

...뭐, 그러니까 그 때까지만 해도, 그는 그의 작고 요망한 꼬맹이가 뭘 부탁할지 눈치 채지 못한 상태였다. 르네가 그런 끈적끈적한 눈빛을 할 때 뭔가 질척하고 얄궂은 일이 뒤따라온다는 것 정도는 당연히도 알고 있었으나, 그는 그녀가 평소처럼 입맞춤이나 동침 따위를 부탁할 것정도만을 예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ㅡ당연하지만 웃고 말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ㅡ.

그러고 보니 스트레이트 플러시가 뜨면 뭔가 불행한 일이 발생한다는 괴이한 속설이 문득 뜬금없게도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세상에 우연으로 뜬 것 도 아니고 밑장을 두 번이나 빼서 일부러 띄운 패인데 상관이 있을 리가 있겠냐는 심정으로 무신경하게 넘어갔고, 아무튼 그리하여 만 하루 뒤에 그는 직감이 외치는 경고를 무시했던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는 처지가 되었던 것이었다.

 

 

“...그래, 뭐든지.”

 

 

매그너스는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르네를 향해 허리를 살짝 숙였다. 새까만 눈 안에서 온갖 감정이 환희를 닮은 빛으로 소용돌이치는 것이 괴이하게도 매그너스의 두 눈 안에 똑똑히 틀어박혔다. 그래, 아름다운 눈이다, 죽은 이의 것처럼 그 무엇도 비추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을 담고 섞이며 바라보는 이를 빨아들이고 매료시키는 눈. 그 매혹은 두려울 정도로 달콤하고, 그리고 또...

 

 

“놀이동산 같이 가 주세요.”

“그래. 뭐?”

 

 

제 대답이 귀에 돌아오고 소원이 머릿속에서 조각조각 분해되어 단어로 맞춰지는 그 짧은 순간 후에야, 그는 르네가 한 말을 제대로 인식하고 정신을 떨궜다. 잠깐만, 잠깐만, 잠깐만. 방금 저 녀석이 지금 뭐라고......

 

 

“이번에 개장한 ‘판타스틱 테마파크’! 르네랑 같이 가 주세요!”

 

 

......나는 아무래도 망했다. 그것이 눈을 반짝이는 르네를 바라보며 그가 겨우 떠올릴 수 있던 생각의 마지막이었다.

 

 

 

ㅡ그리하여 지고하고 위대하신 헬리시움의 폭군, 노바의 전사 매그너스 님께서는 현재 텅 빈 눈동자로 비눗방울 나부랭이가 떠다니는 유원지 한가운데 와 있게 된 것이었다.

 

말이 되는가. 어딜 가나 제 차림으로는 눈에 띌 거라고 설득을 시도해 봤지만 돌아온 것은 깜찍하기 그지없는 핑크색 윗도리였다. 심지어 그의 체격에 아주 딱 떨어지는. 노바족의 상징인 뿔과 꼬리와 날개 때문에 다들 알아볼 거라고 한 번 더 설득을 시도했더니 그걸 죄다 그녀의 능력으로 없애 버린 황당하기 짝이 없는 행위를 마주한 매그너스는 어쨌든 자신이 유원지에 갈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조용히 직감했다.

뒤에 달려 있던 꼬리도 날개도 한순간에 떨어져 균형을 제대로 잡을 수 없었던 것은 둘째치고라도ㅡ뒤도 아니고 앞으로 넘어진 순간 르네가 작게 웃음을 터트린 것을 그는 똑똑히 들었다! 건네받은 옷의 색깔이 아주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누구 거냐고 물었더니 ‘르네가 남자일 때 입던 거!’ 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것으로 봐서는 딱히 의도한 고문은 아니었던 듯 했지만 어쨌든 매그너스는 굉장히 죽을 맛이었다.

 

약속을 깨는 것을 일 분에 열 번씩 고민했지만 그가 넘어져서 무릎이 깨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서도 무를 생각을 안 하는(조용히 옆에서 포션을 건네주었으니 곧 죽어도 그가 다친 걸 몰랐다고는 하지 못할 것이다) 그 매정함이, 세상에 평소에는 서류에 손만 베어도 엉엉 울면서 상처에 입을 맞추고 호호 입김을 불어 줄 정도로 지나치게 그를 과잉보호하는 르네의 것이라는 점에서, 매그너스는 솔직히 자신이 약속을 깼다가는 불어 올 후환이 매우 두려웠다.

 

......그러니까 그래서.

 

 

“매그너스 님, 무슨 생각 하세요?”

“지난날의 과오를 후회하는 중이다.”

“그래요? 근데 그런 것보다 저것 좀 보세요!”

 

 

저 못된 계집애. 매그너스는 울고 싶었다. 제 취급이 이렇게 심했던 적은 맹세코 단 한 번도 없었지 말이다. 르네는 어쨌든 그에게만큼은 늘 고분고분하고 사랑스러운 소녀였다, 물론 지금도 표정은 사랑스럽기 그지없었으나 엉거주춤 걷는 그를 질질 끌고 걸어가는 그 손길에 감히 고분고분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일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을 것이었다.

 

르네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표정으로 가판에 놓여 있는 머리띠를 집어 들었다. 귀여운 곰돌이 귀가 달려 있는 머리띠를 제 머리에 대어 보다가, 동그랗고 작은 뿔이 달린ㅡ매그너스는 사슴 뿔 박제를 바라보는 사슴이 된 것 같은 애잔한 기분을 느꼈다ㅡ 머리띠를 그의 머리 위에 씌워 주고는 하얀 손을 꼭 맞잡으며 밝게 웃는 모습이 참으로 귀여웠지만 매그너스는 별로 그 귀여운 웃음에 속고 싶지 않았다. 이 악마.

 

 

“매그너스 님, 이거 매그너스 님이랑 너무 잘 어울려요~! 이거랑 이거랑~ 또 뭐 사지?”

“어쩜 이렇게 쓸데없는 물건이. 내 뿔이나 도로 꺼내라.”

“꺄악! 아이스크림이다! 매그너스 님, 아이스크림도 사 주세요!”

 

 

......잠깐만, 내가 계산하는 거냐? 아니, 내기에 져서 온 거니까 보통 이럴 때는 내가 쏘는 게 맞기는 한데... 매그너스는 포션의 효과로 이미 다 낫고 만 무릎에서 억울한 욱신거림을 느끼며 르네의 옆모습을 노려보았다.

 

 

“......얼마요.”

 

 

...그러나 반항은 오래 가지 못했다, 매그너스는 환장할 것 같은 표정으로 눈을 꽉 감고 저를 쳐다 볼 생각도 안 하는(그러니까 정확히는 아이스크림을 세상에서 제일 바라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귀여운 옆얼굴에서 고개를 돌렸다,

 

젠장할, 별 수 없지. 솔직히 말하면 이 아주 건방지고 못돼먹은 행위가 그렇게 불쾌하지는 않았고, 더 솔직히 말하면 가끔은 이런 막무가내인 면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무릎은 아직 좀 열 받지만 하루가 지나기 전에 살살 기면서 무릎의 안부에 대해 물어 볼 녀석이 르네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크게 짜증이 나지는 않았다.

 

투덜거리며 메소를 털려던 그가 세상이 생각만큼 그렇게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잠시만요, 머리띠 두 개, 아이스크림 하나... 밸리베어 500마리 정도면 되겠군요.”

“뭐야?”

 

 

뭐 몇 마리? 매그너스는 아득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등 뒤에 콜라를 달고 다니는 곰이 돌아다니는 것 같긴 했는데... 그는 손을 조금 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래, 돌아다니네. 곰이. ......몬스터가.

 

 

“설마... 설마 해서 묻는 건데, 지금... 물건 값으로... 몬스터를 잡아라... 이 말인가?”

“네, 손님! 밸리베어 500마리를 처치해 주시면 됩니다.”

“말이 되는 소리를... 웃기지 말라고 해, 르...”

“아이스크림이 삼십 센티나 돼! 엄청나! 매그너스 님!”

 

 

......그냥 먹지 마, 라고 하기에는 르네가 정말 너무 반짝이는 눈을 하고 있었다.

할 말을 잃은 매그너스가 그녀를 빤히 바라보자, 르네는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그와 시선을 말끄라미 맞추며 배시시 웃었다. 매그너스 님, 아이스크림 사 주세요,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요... 하는 목소리가 환영처럼 뒤에서 울려 퍼지는 것만 같은 웃음이었다.

 

 

"......먹고 싶냐?"

"네!"

"죽어도 먹어야겠냐?"

"네!"

"...내가 맨손으로 등 뒤에 콜라 달린 곰탱이랑 스너프 쇼를 찍어야 한대도?"

"아, 그거 말인데..."

 

 

르네는 배시시 웃는 얼굴로 뭔가 뒤적거리더니... 커다란 대검을 하나 꺼내 내밀었다.

......아주 익숙한 검이다. 모를 수가 없었다,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내밀어진 까만 검을 받아들었다. 이 감촉, 모양, 무게, 자잘한 흉터까지 전부 그가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카이세리움."

"헤헷.“

 

 

......그럴 수밖에 없지, 매그너스가 쓰던 검이니까. 불과 하루 하고 반나절 정도 전까지만 해도 그걸로 성채에 쳐들어온 모험가를 처리하고 있었으니까.

 

이 망할 계집애, 작정하고 왔구나. 일행 분이 아이스크림을 많이 좋아하시는 모양이네요, 하하! 하고 재수 좋게 웃는 직원을 뒤로 하고, 매그너스는 이를 갈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곰 모양의 몬스터 사이로 뛰어 들어갔다.

 

 

“젠장!!! 너 이러려고 나 데려온 거지!”

“하지만 몬스터가 너무 기엽고 사랑스러운걸.”

“으아아악!!!!!! 빌어먹을!!!!!!”

 

 

르네는 기엽고 폭신한 곰돌이를 단 한 대도 때릴 수 없엇더... 르네는 걔네들한테 힘업이 얻어맞고 잉잉 울며 집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거야... 하고 가증스럽게 슬픈 표정을 지어 보인 르네는 삼십 센티짜리 아이스크림을 받아들며ㅡ“저거 다 처리하실 동안 미리 먹고 있어도 돼요?” “네, 하시는 거 보니까 선불로 드려도 괜찮겠네요.”ㅡ 느긋하게 매그너스를 응원했다.

 

 

“매그너스 님, 힘내세요! 매그너스 님이 너무 빨라서 몇 마리 남았는지도 모르겠어~”

“이 빌어먹을 계집애야, 파티 걸려 있으니까 시스템 창에 뜰 거 아냐!”

“아무리 대사 읽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그렇게 메타 발언 막 하고 다니면 어떡해요! 어쨌든 파이팅!”

“너는 그냥 말을 하지 마라, 듣는 용 속 터지니까!!!”

 

 

곰돌이 썰리는 속도 좀 봐, 우리 매그너스 님 정육점 차리셔도 되겠네! 아, 닥치라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매그너스가 생각했던 것처럼 피와 살이 튀기는 장면이 펼쳐지지는 않았지만(그만큼 솜과 털이 튀긴 했다) 그는 도무지 퀘스트 셔틀이 된 억울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내가 다시는 너랑 소원 내기를 하나 봐라.

 

그가 곰 모양 몬스터 오백 마리를 거진 다 처리했을 즈음에 르네는 이미 삼십 센티나 되었던 아이스크림을 전부 배 안에 구겨 넣고는 손잡이 부분의 과자를 오물대고 있었다. 아무리 버는 순간에 사라지는 게 돈이라지만 이렇게까지 순식간에 사라질 필요가 있나? 매그너스는 허탈한 표정으로 르네를 바라보며 옆에서 덮쳐 오는 밸리베어를 팔꿈치로 퍽 쳤다.

 

 

“...내 노동력으로 산 아이스크림은 맛있더냐?”

“너무 맛있어요! 앗, 매그너스 님도 한 입 드릴걸. 너무 맛있어서 잊어먹었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더니.”

 

 

매그너스는 한숨을 내쉬며 마지막 몬스터를 간단하게 베어 버리고 르네에게로 다가갔다. 돌아오는 그가 영 흉흉한 기색이었던지(아마 그녀도 곧 베어버릴 표정이었을 것이다) 잠시 움찔하나 싶던 르네는, 이내 속없이 헤헤 웃으며 머리띠를 꼭 쥐고 그의 옆으로 붙었다.

 

 

“매그너스 님, 매그너스 님, 이거 씌워 주세요!”

“손이 없냐?”

 

 

르네는 소매 속으로 손을 쏙 감추며 배실배실 그를 바라보았다. 아무튼간에... 그는 제 머리 위에도 머리띠가 있었더라는 것을 기억해내고는 내밀어진 것과 함께 분질러 버릴까 진지하게 고민하다, 그것들이 자신이 방금 처치한 몬스터의 마릿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것을 상기하고 얌전히 소매 밖으로 내밀어진 곰돌이 귀가 달린 머리띠를 쥐었다.

 

살짝 고개를 숙인 까맣고 동그마한 정수리가 보인다. 속없이 귀엽기도 하지, 머리띠를 씌우는 손끝에 까만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휘감기는 감촉이 참으로 사랑스러웠다.

 

 

“......히히.”

“......”

“저 너무 좋아요, 매그너스 님...”

“...오오냐.”

 

 

......아무튼 정말 미워할 수가 없는 여자.

 

우는 듯이 그렁거리는 눈이 그를 바라본다, 겨우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지독히도 좋아하는 이인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오늘처럼 못된 고집쟁이가 된 일조차 어쩔 수 없이 사랑스럽고 말 정도로. 그 고집조차 드문 일이라 기뻐지고 말 정도로.

 

매그너스는 햇빛에 젖어 눈부시게 반짝이는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조금 웃고 말았다. 햇빛처럼 천진하게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하고 좋아하는 것, 얼마 없는 고집을 피울 정도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그 행위에서 그는 마음 한 구석에서 벅차오르는 간지러움을 느꼈다. 너는 이런 것을 좋아하는구나, 너는 이런 것을... 짤막한 파편의 단면, 늘 행복한 얼굴의 그녀가 잘 보여주지 않는 확연한 선호.

늘, 그가 그녀를 사랑하고부터 그래왔다. 아무리 아프더라도, 아무리 성가시고 귀찮더라도ㅡ사실은 그것은, 르네가 이만치나 기뻐한다면 매그너스에게는 전혀 귀찮지 않은 것이 되고 말았다. 아는지 모르는지는 모르겠지만, 요 꼬맹이. 그는 배시시 웃음 짓는 발간 볼을 쓰다듬으며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래, 가끔은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고.

 

 

“그러면요, 매그너스 님...”

“그래.”

“자이로드롭 타러 가요, 자이로드롭!”

“......”

 

 

취소.

 

그리하여 그래서ㅡ 매그너스가 퀘스트 셔틀에서 성채의 폭군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폐장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고서도 한참 뒤였다더라는, 그런 흔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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