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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슙

아카아시 케이지X야나기 노아

​하이큐-!!

맑게 갠 하늘이 눈부셨다. 펼친 우산을 접어낸 아카아시는 고개를 올려 하늘을 보았다. 언제 비를 쏟아냈냐는 듯 말간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똑, 똑, 우산을 따라 떨어지는 빗방울이 시멘트바닥을 적셨다.

 

“다행이다.”

 

우산을 돌돌 말아 접어 정리하며 아카아시가 중얼거렸다. 한 손에 잡히게 정리된 우산에 커버를 씌워 가방에 넣었다. 그러다 문득 눈에 들어오는 휴대폰의 램프가 깜박이고 있었다. 연락이 왔나싶어 휴대폰의 잠금을 푼 아카아시는 램프가 깜박이는 이유에 엷게 미소를 지었다.

 

[오전 10시. 노아와 수족관.]

 

캘린더의 알림이었다. 화면에 한 줄로 뜬 내용은 오늘의 일정을 알려주고 있었으며, 아카아시가 웃는 이유이기도 했다. 잠깐 본 시간은 오전 9시10분. 아카아시는 조금 걸음을 서두르기로 했다.

 

주말 오전이라 그런지 지하철에는 꽤나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속에는 아카아시도 있었다. 사람이 많은 탓에 앉을 곳이 없어 서서가던 아카아시는 휴대폰 진동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좋은 아침, 비가 그쳐서 다행이에요. 오는 길조심하고, 나중에 봐요!]

 

야나기였다. 그녀다운 라인에 아카아시는 올라가는 입 꼬리를 막지 않았다. 가볍게 톡톡 화면을 두드리며 답장을 보냈다. 빨리, 그녀가 보고 싶었다.

 

사람들로 복작이는 개찰구를 지나 지상으로 올라오니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가 되어 있었다. 출구에서 보이는 표지판에는 오늘 야나기와 만나기로 한 수족관의 위치가 적혀 있었다. 최근 새로 증축공사를 한 곳으로, 현존하는 수족관 중에서는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라고, 지난 번 광고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아카아시는 수족관으로 데이트 신청을 했을 때, 아이처럼 기뻐하던 야나기가 떠올라 저도 모르게 푸흣, 웃고 말았다. 표를 보여주며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었을 때 야나기가 그렇게 기뻐할 줄은 몰랐었다. 그랬기에 조금 더 일찍 말할 걸 그랬나- 하고 후회하기도 했다.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수족관이 보였다. 건물을 저 뒤에 있었지만 가는 길목에 꾸며둔 가로수길은 방문객들에게 큰 인기였다.

 

“아.”

 

멀지않은 곳에서 야나기가 보였다. 평소와 달리 머리카락을 높게 올려 묶고, 긴 플레어스커트에, 쇄골이 보이는 니트와 코트로 코디를 한 야나기는 평소와는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터라 여럿 남자들의 시선을 받고 있었다. 꽤나 마음에 들지 않는 광경에 아카아시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특기인 포커페이스가 무너지는 것을 느끼며 아카아시는 걸음을 빨리했다.

 

“누나.”

“…?”

 

에? 휴대폰을 보던 야나기는 ‘누나’라는 호칭에 어리둥절해 하며 고개를 들었다. 분명 제가 아는 목소리지만 뭔가 달랐다. 고개를 들어 눈에 들어온 사람에 야나기는 당황했다. 둥한 얼굴로 제 앞에 있는 건 아카아시였다.

 

“케이지?”

“누나, 오늘 왜 이렇게 예쁘게 하고 왔어요?”

“어? 그야 오랜만에 데이트니까.”

“춥지 않겠어요?”

 

처음 말을 걸 때 둥하던 얼굴은 어느새 평소의 단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런 아카아시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하고 잠깐 고민을 해보니 그제야 노골적인 시선들이 느껴졌다. 맑지만 짙은 체리를 도록, 굴려 주변을 보니 별 이상한 놈들이 저를 보는 시선이 보였다. 아하. 아카아시는 제가 아니라 저놈들에게 화내고 있는 중이었다.

 

상황을 이해하고 나니 무척이나 귀여워졌다. 그러고 보면 아카아시는 야나기가 짧은 치마나 파인 옷, 시스루 소재의 옷을 입는다고 해서 화를 낸 적은 없었다. 오히려 잘 어울린다고, 그렇지만 춥지는 않겠느냐고 걱정이나 칭찬을 할 뿐이었다.

 

“응, 괜찮아요. 오히려 오늘 따뜻한걸요? 게다가 코트도 가지고 왔고.”

 

눈을 반달로 접어 웃으며 물음에 대답해주었다. 어깨에 걸치고 있던 코트를 여미며 이야기 하자 아카아시는 피식, 웃었다. 오늘도 예뻐요. 잘 어울린다. 크러치를 든 손을 바꾸자 아카아시가 먼저 손을 잡아왔다.

 

“표는 미리 예매했어요. 바로 들어가면 되요.”

 

부드럽게 깍지 낀 손을 잡고 나란히 가로수길을 걸으며 수족관으로 향했다.

 

 

 

 

 

 

최근 공사를 한 곳이라 그런지 굉장히 깨끗한 외관을 자랑했다. 수족관의 입구 바로 옆에는 현장발매가 가능한 무인 매표소가 있었으며, 도우미로 보이는 직원도 두 명 정도 서 있었다. 아카아시가 표를 미리 예매했기에 둘은 곧바로 입구로 향했다. 두 사람분의 표를 보여주고 안으로 들어가자 야나기는 작게 감탄했다. 와아. 순수하게 놀라서 나오는 감탄사에 아카아시는 작게 웃었다. 규모가 커 길을 잃지는 않을까 염려되었다.

 

그런 관람객들의 마음을 알았는지 각 층마다 위치를 알리는 표지판과 지도가 설치되어 있었다. 들어오면서 가져온 수족관 일정표를 본 아카아시는 야나기에게 보여주었다.

 

“어디부터 가실래요? 오후 3시에 이벤트인 펭귄 쇼가 한다고 하는데, 보실거죠?”

“와, 펭귄! 응, 볼래요! 음… 그럼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내려올까요?”

“그렇게 해요.”

 

일정표에 눈을 두며 아카아시의 이야기를 듣던 야나기가 펭귄 쇼를 한다는 말에 아이처럼 기뻐했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했다. 고작해야 오전 10시20분.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잠깐 고민했다. 이왕 온 거 위층부터 차례로 보자고 생각하며 이야기하니 아카아시가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스컬레이터가 있었지만 위층까지 가기에는 번거로워 엘리베이터를 타기로 했다.

 

띵- 경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니 벽면이 유리로 된 내부가 보였다. 그 덕에 도쿄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여 꽤나 절경이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꽤나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탔다. 엣? 언제 이렇게 많이도 기다리고 있었는지 내부는 꽉 채운 만원이 되었다. 게다가 아카아시와 야나기가 제일 구석 쪽에 자리를 잡은 터라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몰려들었다. 무게 초과의 경고음이 울리고서야 몇 명이 빠져 나갔다.

 

“이런…”

 

어쩌다보니 카베동을 하는 자세가 되어버렸다. 스무스하게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였지만 다들 제일 위층까지 가는 모양인지 도중에 멈춰서 내리는 사람은 없었다. 야나기가 저는 괜찮다고 편하게 있으라고 했지만 몸을 돌리지 못할 정도로 꽉 차버려 아카아시는 엘리베이터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꽤나 고생을 해야했다.

 

겨우 목적지에 도착해 멈춘 엘리베이터가 우르르 많은 사람을 쏟아내고서야 다시 문을 닫았다.

 

“케이지, 괜찮아요?”

“…네, 어떻게든.”

 

자판기에서 차가운 음료를 뽑아 건낸 야나기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걱정하는 야나기에게 괜찮다 웃어 보인 아카아시는 야나기의 손을 잡았다. 응? 기대했잖아요. 여기 오는 거. 왔으니 재미있게 놀아야죠. 살짝 힘을 주어 당기니 발이 움직였다. 살짝 고개를 들어 옆모습을 보다 배시시 웃었다.

 

 

 

 

나선형으로 꾸민 길을 따라 걸으며 원통의 거대한 수조 안의 해양생물들을 구경했다. 그 안에 사는 생물들의 주거환경을 그대로 재현한 수조는 정말 사육사들이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쓴 것을 보여주었다. 길을 따라 죽- 내려오다 보니 수조터널까지 와 버렸다. 통로 전체가 방탄유리로 된 수조여서 물빛으로 일렁이는 몽환적인 곳이었다. 게다가 머리 바로 위로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와 다양한 생물들을 볼 수 있었다. 사진을 찍기도, 동영상을 촬영하기도 하며 즐거운 듯 웃어 보이는 야나기에 아카아시는 안심했다. 사실 오늘 여기에 온 이유는 야나기의 기분전환을 목적으로 한 것이 컸다.

 

최근 일이 바빠 스트레스로 엉망인 컨디션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같은 과 동기인 여자에게서 공사가 완료되었다는 수족관 이야기를 들었다. 그 길로 아카아시는 야나기에게 의견을 물었다. 또 일 때문에 미안해하며 거절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과는 달리 야나기는 사진과 함께 답장을 보내왔다. 사진은 스케쥴표였으며, 언제가 괜찮다고 알려주는 답장에 아카아시는 다행이라며 한숨 쉬었다. 약속이 확정되었으니 다음 할 일은 간단했다. 표를 예매하고, 그 주에는 다른 약속은 잡지 않는 것. 그것뿐이었다.

 

그 결과 지금 저는 야나기와 함께 수족관에서 데이트를 하고 있었고, 야나기는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일 생각 전혀 안하고 단순히 즐겁게 웃는 야나기에 안심하며 아카아시는 시계를 보았다. 넓은 곳을 걸어 다니며 구경하느라 어느새 시간은 정오를 넘어가고 있었다. 어중간한 시간이었지만 슬슬 점심을 먹지 않는다면 또 굶을 것이 뻔했기에 아카아시는 구경에 한창인 야나기를 불렀다.

 

“슬슬 점심 먹어요.”

 

 

 

 

펭귄 쇼까지 보고 나오니 밖은 오렌지 빛으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오늘 고마워요, 케이지.”

“뭐가 말입니까?”

“케이지 덕분에 스트레스가 풀렸어요. 오랜만에 즐겁게 놀았거든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요즘 많이 피곤해 보여서, 걱정했는데 이렇게 도움이 되어서 기뻐요. 깜박이며 켜지는 가로등을 따라 가로수길을 걸으며 이야기했다. 정말 일 생각 하나도 없이 즐거웠어요. 예쁘게 휘어지는 눈꼬리를 보며 아카아시도 따라 미소 지었다. 저도 오늘 즐거웠어요.

 

허리를 숙여 가볍게 입술을 맞대었다. 그에 야나기도 키득 웃으며 짧게 입 맞췄다. 데이트가 끝나면 언제나 하는 인사였다. 오늘도 고마웠고, 오늘도 사랑했다는 의미의 버드키스는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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