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 BACK​

우당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휴게실 쪽에서 들린 비명은 분명 이 특무실 유일한 여성 옥졸의 것이었다. ‘또 뭐야?’ 단련장에서 나오던 타니자키는 대수롭지 않게 불평했지만, 그의 뒤를 따라 나오던 사에키는 얼굴이 확 굳어버리고 말았다. 정확하게 무슨 일이 터졌는지는 모르지만, 어쩐지 대략적인 상황은 알 것도 같다. 그녀가 특무실 안에서 저 정도로 큰 소리를 지를 때는, 늘 똑같은 사람이 이유가 되곤 했으니까.

 

“에노키?”

 

조금은 빠른 걸음으로 휴게실로 향한 사에키는 문을 열자마자 훅 풍겨오는 단내에 인상을 찌푸렸다. 인공적인 블루베리 착향료의 냄새. 바닥에 앉아 울상을 짓고 있는 에노키. 그리고 그녀의 양갈래 머리 한쪽에 붙어있는 풍선껌….

 

“사에키….”

“무슨 일이야? 그 껌은 또 어쩌다가?”

“모르겠어요, 자고 일어나니까 이게 붙어서…. 어어, 어쩌지? 잘라야 하나…?”

 

물론 그게 가장 빠른 해결법이긴 하겠지. 하지만 사에키는 선뜻 ‘그렇겠지?’ 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머리카락쯤이야 금방 자라지만, 일단 그녀의 신체 일부다. 다시 자라난다 해도 선뜻 잘라라 권하는 건 싫다. 아까우니까.

‘그러고 보니 어디서 머리카락에 껌이 붙었을 땐 어떻게 해야 하나 들은 것 같았는데. 아야코가 말해줬던가?’ 희미하게 옛날 일을 떠올린 사에키는 정확한 해결책을 찾아올 테니 그녀에게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하려 했지만, 타이밍은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에노키, 무슨 일인가?”

 

비명을 듣고 뒤늦게 찾아온 키리시마는 자신보다 먼저 와있는 사에키를 힐끔 보고 에노키에게 다가갔다. 에노키가 걱정되어 달려온 건가. 꺼내려던 말을 삼킨 그는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키리시마…! 으으, 이거 봐요. 어떡해?”

“껌이 붙은 건가. 음. 머리카락이 엉망인데.”

“잘라야 할까요? 떼어내면 아프겠죠…?!”

“일단 진정해라. 진정해.”

 

분명 제 앞에서는 나름 침착했던 에노키가, 키리시마 앞에선 마치 어린아이라도 된 것 마냥 솔직하게 말하며 투정을 부린다. ‘어떡해?’ 만 남발하며 발을 구르는 에노키, 그리고 침착하게 그녀를 달래는 키리시마. 사이좋은 대화를 지켜보던 사에키는 아무 말도 남기지 않고 휴게실을 나갔다.

아야코에게 가서 껌을 떼어낼 방법이나 물어봐야지. 알아낸다면 키리시마에게 알려주고, 자신은 하던 일이나 하자.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 그 자리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을 느낀 사에키는 소리 없이 복도로 나아갔다. 분명 먼저 온 것은 자신인데, 왜 자신이 방해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까. 모든 건 다 두 사람이 지나치게 친하기 때문이겠지. 누구도 나쁜 사람은 없는데, 사에키는 얼굴에서 자꾸 웃음이 사라지려고 했다.

 

“…?”

 

아야코를 찾아 가사실로 가던 사에키는 바닥만 보고 걷다가 익숙한 단내에 고개를 들었다. 이건 분명, 아까 휴게실에서 나던 껌의 냄새다. 향의 근원지를 찾아 두리번거리던 그는 식당 문 앞에서 히라하라와 이야기를 나누는 타가미를 발견했다. 단내는 그의 입에서 나고 있었다.

‘아아, 역시 오늘도인가.’ 눈을 가늘게 뜬 사에키는 타가미의 옆에 멈춰 섰다. 언제나 에노키에게 이런 장난을 치는 건 그였지. 사에키는 아까 전 자신의 예상이 빗나가지 않은 게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뭐야?”

 

히라하라와 할 이야기는 끝난 걸까. 기척을 느낀 타가미가 기세 좋게 껌으로 풍선을 불며 물어왔다. 분명 말은 ‘뭐야?’고 했지만, 눈빛은 왜 말을 걸었는지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사에키는 그리 믿고 단호하게 본론만 물었다.

 

“에노키한테 왜 그런 거야?”

“뭐가?”

“‘뭐가?’ 가 아니잖아? 머리카락에 껌을 붙여놓으면 어떡해. 장난이라 해도 적당히 해야지.”

 

‘흐음.’ 두어 번 더 풍선을 분 타가미는 망설이지도 않고 단물이 다 빠진 껌을 삼켰다. 장난은 적당히, 라. 참으로 사에키 다운 말이다. 비꼬는 것이 아니라 타가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물러 터졌으니 매일 뒤치다꺼리만 하는 거지.”

“뭐?”

“잘 해주면 다 기억해 줄 것 같지?”

 

타가미의 말에 사에키는 대답하지 못했다. 언뜻 들으면 ‘당연하지 않아?’라고 답해야 할 것 같은 질문인데, 제가 지내온 세월을 생각하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호의라는 건 상대에게 가장 호감을 사기 쉬운 수단이지만, 계속되다 보면 무뎌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같은 호의라고 해도 상대에 따라서 그 무게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지. 사에키는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키리시마의 얼굴을 억지로 지웠다.

 

“그렇다고 괴롭히는 게 옳은 건 아니지.”

“그건 네 기준이고.”

“그런 대답이 어디….”

 

두 사람의 대화가 말싸움으로 번지려는 순간, 대화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 성큼성큼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타가미!’ 평소보다는 확실히 화가 난 것 같은 목소리로 용의자를 부르며 달려오는 에노키의 양갈래는 양쪽의 길이가 달랐다.

 

“타가미가 한 거지?! 아까 저 잠들기 전에 옆에 있었던 거 다 기억한다고요?!”

“증거 있냐?”

“입에서 나는 단내나 지우고 대답해요!”

 

‘쳇.’ 별로 변명 할 생각도 없는 걸까. 타가미는 그녀가 화내는 걸 무시하며 등을 돌려 가버렸다. ‘어디 가요?’ ‘결국 머리 잘라버렸잖아!’ ‘타가미!’ 내용은 달콤하지 않지만 계속해서 이어지는 그녀의 말은 오직 타가미에게만 향하고 있다. 아아, 그런 건가. 사에키는 이제 알겠다는 듯 목구멍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감정들을 삼켰다.

어떤 방식으로든 관심을 끌 수 있다면, 그리고 그 관심이 지속될 수 있다면, 선과 악 같은 건 어찌되든 좋은 건가.

상냥함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만으로는 키리시마를 향하는 에노키의 시선을 돌릴 수는 없지. 하지만 짓궂음이라면 어떤가. 비록 부정적인 목적이라 해도 그녀는 자신을 계속 바라봐 줄 것이다. 타가미가 저지르는 모든 나쁜 짓은, 모두 이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에키는 그걸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난….’

 

팔랑팔랑 흔들리며 멀어져가는 새까만 머리카락. 길이가 각각 다른 그 머리칼을 자신도 모르게 잡아당기려고 한 사에키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급히 손을 내렸다.

이것은 옳지 않은 방법이다.

그걸 알면서도, 자신은 무의식적으로 행하려고 했다.

마치 나쁜 병에라도 걸린 기분이다. 마른세수를 한 사에키는 제 방으로 도망치듯 사라졌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