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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시마, 이것 봐요! 예쁘죠?”

 

어느 날 에노키가 외출 후 뜬금없이 제게 내민 것은 새빨간 봉우리가 아름다운 튤립이었다. 평소 백국을 사기 위해 꽃집을 자주 들락날락하는 그녀였으니, 거기서 사온 걸까. 작은 화분 안, 조금은 비좁아 보이는 튤립을 보던 그는 싱싱한 이파리를 만지며 물었다.

 

“진짜군”

“당연하죠. 조화를 화분에 담아둘 리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사온 건가?”

“응! 예쁘죠? 예쁘지?”

 

저 예쁘냐는 물음만 벌써 세 번째다. 그렇게 듣고 싶어 한다면 대답해 주는 게 좋지. 고개를 끄덕여 동의한 그는 잎이 짓무르지 않게 만지작거리던 손을 거두었다.

‘별일이군’ 키리시마는 어지간히도 튤립을 마음에 들어 하는 에노키를 보며 그리 생각했다. 평소에도 꽃을 좋아하고 길가에 꽃이 피는 계절이면 꼭 산책을 나갔던 그녀지만, 백국 이외에 따로 꽃을 사오는 일은 드물었는데.

 

“방에서 기를 건가?”

“응! 이 안에서 소녀가 나올 테니까! 밖에서 기르다가 길이라도 잃으면 안 되잖아요?”

“소녀?”

 

무슨 소리지. 키리시마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꽃에서 소녀가 나온다니. 그게 가능한 일이던가. 혹시 평범한 꽃처럼 보이지만, 실은 마물에 가까운 것이라면 납득이 갈 것 같지만 꽃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키리시마는 몰라요? 책에서 보면 튤립에서 소녀가 나오던데…”

“…그 책, 제목이?”

“어어. 엄지… 뭐더라? 엄지공주! 그래! 엄지공주요!”

 

처음 들어보는 책이다. 키리시마는 아직 피려면 한참 남은 꽃봉오리를 보며 에노키가 말한 소녀를 상상했다. 저 안에서 나올 정도면, 정말로 엄지만하거나 그것보다 작을 수밖에 없겠지.

 

“꽃이 피고 소녀가 나오면, 키리시마에게 제일 먼저 보여줄게요!”

 

그의 시선을 어떻게 해석한 걸까. 에노키는 그렇게 말하곤 소리죽여 웃었다.

잔뜩 들뜬 기분으로 올라가는 그녀를 보던 키리시마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엄지공주. 분명 그런 제목이었지. 까먹지 않게 책 제목을 중얼거리며 관내를 어슬렁거리던 그는 한참 뒤 서양 서적이 가득한 책장에서 찾던 책을 발견했다.

 

‘서양 동화였나?’

 

생각보다 얇은 두께의 책은 반은 그림, 반은 글씨일 정도로 삽화가 많았다. 동화책이란 주로 이런 법이지. 키리시마는 그 자리에 서서 책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내용은 간단했다. 꽃에서 태어난 작은 소녀가 여기저기 납치당하고 끌려 다니다가 마지막엔 꽃의 나라 왕자님과 행복하게 산다는, 흔한 해피엔딩.

이걸 읽고 튤립을 사온 거였군. 삽화에 그려진 붉은 튤립을 가볍게 손으로 쓰다듬은 그는 미련 없이 책을 덮어 제자리에 꽂았다.

 

‘정말로 나오나?’

 

다른 동료들이었다면 동화책의 내용을 그대로 믿어버린 에노키를 귀엽다 생각하며 웃었겠지만, 매사에 진지한 키리시마는 그녀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책 속의 엄지공주는 마법사가 준 튤립에서 태어났었다. 아마 평범한 꽃집에서 팔던 에노키의 튤립에선 태어나지 않겠지만, 온갖 기이가 가득한 이 옥도에선 또 모를 일이었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확인 할 방법은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그는 도서관 구석 창문으로 해가 저물어가는 바깥을 보았다. 요 최근은 쭉 날씨가 좋았으니, 꽃봉오리도 금방 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동화의 내용이 단순히 허구인지 실화인지도 알게 되겠지.

이왕이면 후자이길 바라며, 키리시마는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그녀가 꽃을 사온지 3일 정도 지났을까. 애석하게도 키리시마의 궁금증은 아직 해결되지 못한 상태였다. 아직 피지 못한 튤립은 조금씩 봉오리가 벌어지긴 했어도 만개까지 시간이 걸릴 것 같았고, 에노키는 또 그걸 초조해 해서 비료를 주거나 키우는 환경을 바꾸려 들지 않았으니까. ‘당연히 오래 걸리죠, 소녀가 나올 꽃이니까!’ 그렇게 말하며 물을 주는 그녀에게 어찌 제가 재촉을 하겠는가. 키리시마는 그저 가만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응? 에노키는 어디 갔니?”

“아, 사이토 씨”

 

일이라도 시키려는 건가. 키리시마는 서류를 정리하던 중 나타난 상사에게 목례했다.

 

“에노키라면 방에 있을겁니다”

“방에? 그러고 보니 에노키, 최근 방에 자주 틀어박혀 있는 거 같네”

“아마 튤립 때문일 겁니다. 거기서 소녀가 나올 거라며 하루 종일 들여다보고 있거든요”

 

‘튤립?’ 키리시마의 말에 반문한 사이토가 이내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라며 웃는 거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제 상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정말로 사왔나 보구나, 귀여워라”

“네?”

“아아. 얼마 전 에노키가 동화책을 읽고 있어서 말을 걸었는데, 정말 튤립에선 아이가 나오느냐고 묻는 거야. 그래서 직접 해보면 될 거라고 해줬는데… 진짜 사올 줄이야”

 

아. 짧은 감탄사를 내뱉은 키리시마가 시선을 돌렸다. 자신만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 건 아니고, 딱히 다른 누가 알아도 서운할 건 없는 사실이라지만 기분은 좋지 않다. 어쩌면 이건 누군가 자신과 같은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 보단, 그 상대가 사이토라서 언짢은 걸지도 모른다.

사이토는 언제나 에노키에게 더없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녀를 처음 이 특무실에 추천한 것도 사이토였고, 그녀가 곤란할 때마다 가장 먼저 손을 내미는 것도 그였다. 언제 어디서나. 상사가 부하를 돌보는 이상으로 에노키에게 잘 대해주는 사이토는 자신의 편애가 다른 부하들에게 흉하게 보이지 않게 늘 정도를 지켰다. 덕분에 두 사람의 기묘한 관계를 지적하는 동료는 없었지만, 키리시마는 달랐다. 말로만 내뱉지 않을 뿐. 그는 제 상사의 과보호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이토가 에노키의 모든 것에 간섭하는 덕에, 에노키는 자기도 모르게 상사의 뜻대로 움직여버릴 때도 있었으니까.

 

“알려줘서 고마워, 방으로 가봐야겠네”

“…살펴가십시오”

“응, 키리시마도 열심히 하렴”

 

사이토가 가고 나서 다시 서류정리를 하던 키리시마는 문득 에노키의 튤립이 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면, 피어도 그 안에 아무것도 없기를 바랐다. 분명 아까 전 까지만 해도 소녀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기대했으면서, 겨우 상사 때문에 마음을 바꾸다니. 스스로가 생각해도 바보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정말로 소녀가 나온다면, 어쩐지 사이토의 뜻대로 또 에노키가 휘둘려 버리는 것 같아서.

 

“키리시마! 일 다녀올게요!”

 

제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방에서 나온 에노키는 열린 문틈으로 인사를 하고 가버렸다. 꽃에 대해 아무 말도 없는 것은, 아직 꽃이 피지 않았다는 거겠지.

키리시마는 서류정리가 끝나는 대로 그녀의 방으로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며 펜을 든 손에 속도를 올렸다.

 

 

 

 

 

몇 시간 뒤 들러본 에노키의 방은 무서울 정도로 조용했다. 주인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방이 이렇게 텅 비어보일 수 있는 걸까. 깔끔하게 정리된 책상과 어질러진 침대, 그리고 여분의 망토가 잔뜩 걸린 옷걸이를 지나쳐 창가로 온 그는 활짝 피어있는 튤립 앞에 멈춰 섰다.

‘언제 핀 거지?’ 그는 조금 놀랐지만 답은 간단했다. 그녀가 나가고 노을이 지기 전, 마지막 햇빛을 받고 피어난 거겠지. 하필 피어도 그토록 기다리던 사람이 없을 때 피다니. 짓궂은 꽃이었다.

 

“……”

 

예상대로 라고 해도 좋을까. 소녀 같은 것은 없었다. 어쩌면 있었다가 도망친 걸 수도 있지만, 이 방에선 벌레 한 마리도 보이지 않으니 그럴 가능성은 적겠지. 활짝 핀 붉은 꽃잎은 생기로 넘쳐났지만, 에노키는 이걸 보고 마냥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잘 된 건가? 키리시마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사이토의 뜻대로 되지 않은 것 같아 그건 안심이지만, 이걸 보고 실망할 에노키의 얼굴은 보고 싶지 않다. 모순된 이야기다. 그는 스스로 이 감정이 이상함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둘 다 사실이니,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올곧고 솔직한 그는 언제나 제 감정을 어떻게 대해야 할진 몰랐어도, 그걸 부정하진 않았다.

꽃 앞에서 한참 서있던 키리시마는 처음 이 화분과 마주했을 때처럼 이파리를 한번 만져보고 밖으로 나섰다. 바깥의 남청색 하늘이 완전히 칠흑색으로 바뀌고, 빛에 가려져있던 달이 모습을 드러낼 때 쯤. 다시 방으로 돌아온 키리시마는 손에 무언가를 꽉 쥐고 있었다.

짧은 한숨. 손 안의 물건을 쥐었다 펴며 망설이던 키리시마는 튤립 안에 제가 들고 온 것을 넣어두었다.

 

‘이런 거라도 기뻐 할 수 있다면’

 

돌아온 그녀가 웃어주길 바라며, 키리시마는 이 방에 없었던 사람처럼 조용히 자리를 떴다.

튤립 안에는 열쇠고리 크기의 작은 소녀인형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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