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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

  무엇이든 실제보다 더욱 흉측하게 비추는 거울이 있었어요.

  악마 트롤의 실수로 거울이 깨져 인간 세상에 흩어졌고

  거울 조각은 사람들의 눈과 마음에 박혀버렸지요.

  차갑게, 얼음동상처럼 차갑게 변해버린 사람들은,

  서로를 미워하고

  서로를 증오하고

  서로를 나쁘게 말하는

  그런 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진심이 아니었음에도 말이지요.

 

◈◈◈

 

  “맥박은?”

  “정상입니다!”

  “다행이군. 아직 약물이 어떤 독극물인지는 밝혀내지 못했나?”

  “그건 아직….”

 

  바리아 성내의 의료실이 북적거린다. 평소 바리아에 머무는 의료진 외에도 낯선 이들이 얼핏 보였다. 그들은 하얀 가운 위에 봉고레 문양을 달고 있다. 바리아 의료진 외의 타인들은 봉고레 데치모인 사와다 츠나요시의 명에 따라 바리아 성에 와 있는 상태였다.

 

  “대체 무슨 독이냔 말이야.”

 

  그들이 그렇게 시끄러운 이유는 하나. 의료실 안에 누워있는 작은 여자 때문이었다. 동양인 같기도, 서양인 같기도 한 묘한 외모의 여자는 감은 눈 위에 약품이 묻은 면을 쓰고 죽은 듯 가만히 누워 있다. 이름은 임 요한나. 바리아 비의 수호자인 스페르비 스쿠알로의 직속 부대 출신이자, 마피아계에서는 알게 모르게 그의 연인이라 알려진 여자다.

 

  “일단 독극물에 대해선 알아볼 참이지만, 그 전까지는 조심해 주세요.”

 

  봉고레에 있어야 할 Dr. 샤멀까지 바리아에 와 있으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샤멀은 요한나에게 주의사항을 당부하는 의사를 옆으로 밀어내고 요한나 앞에 앉았다. 어이 아가씨, 잘 들었지? 봉고레의 기술력으로도 아가씨 눈에 들어간 독이 뭔지 몰라. 그러니 조심하라고. 안 그러면 평생 시력 따윈 되찾지 못할 테니까.

 

  요한나는 따끔거리는 눈에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어요, 닥터 샤멀.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누군가 잽싸게 달려와 부축했다. 아마 간호사 중 한 명이겠지. 요한나가 작게 감사를 표하자 들려오는 목소리는 여자의 것이었다.

 

  “그럼 쉬어요.”

  “감사합니다.”

 

  요한나는 더듬거리며 신발을 벗고 널찍한 침대에 드러누웠다. 일이 왜 이렇게 됐느냐, 하니. 그건 약 반나절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

 

  “임무?”

  “그래.”

 

  아침식사를 마치고, 스쿠알로에게서 호출을 받았다. 집무실로 오라는 호출이었다. 요한나는 같은 비의 부대 사람들에게 먼저 일어나겠다는 인사를 하고 집무실로 갔다. 원래는 보스의 집무실이지만 잔저스는 집무실에 앉아있는 일이 거의 없다. 대부분 일은 스쿠알로가 처리하고, 마지막 최종 결재만 잔저스에게 받으니까.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보스를 제외하고도 나머지 바리아의 수호자들이 전원 집합해 있었다. 물론 그 한 가운데 제일 좋은 의자에 앉아 있는 잔저스는 자는지 아닌지 눈을 감고 팔걸이에 턱을 괴고 있었지만.

 

  “무슨 일인가요.”

  “요즘 갑자기 떠오르고 있는 패밀리의 견제라고 해두지.”

  “?”

  “그 쪽에서 잔저스를 불러냈다.”

 

  그에 요한나의 눈매가 살짝 찌그러졌다. 정식으로 마피아계에 들어오기 전, 잘 나가는 여배우였던 요한나의 포커페이스가 흔들린 건 굉장히 흔하지 않은 일이다. 어디 감히 남의 보스를 오라마라야? 스쿠알로는 요한나의 생각을 읽어내고 킥, 냉소를 지었다. 우오이, 내 말이 그 말이다. 요한나는 자신이 끼고 있는 비의 링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래서 제가 대리인으로 가면 되는 거죠?

 

  “보스는 커녕 수호자도 아까워. 그래서 적임자로 추천된 게 너다, 요한나.”

 

  스쿠알로는 무덤덤하게 서류철 파일을 내밀었다. 거기엔 요한나가 받은 임무 대상인 패밀리의 정보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중요한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만, 몸은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스쿠알로가 불퉁하게 내뱉고, 룻스리아가 후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한나쨩, 몸 조심해. 벨은 나이프를 이리저리 기울이며 키득키득 웃어댔다.

 

  “우오오이, 준비 되는 즉시 출발해라.”

  “지금 가도 상관없어요.”

 

  준비는 늘 하고 있으니까. 요한나는 자신의 허리에 주렁주렁 매달린 3개의 박스를 보였다. 그걸 보며 씩 웃은 스쿠알로는 고갯짓을 하며 팔짱을 꼈다. 좋아, 그럼 다녀와라. 요한나는 빙긋 눈웃음을 지으며 떠났다. 그래, 그게 사건이 발단이다.

 

  뭐야. 바리아의 보스가 아니야.

  상관없나. 어차피 본보기고.

  쳇. 이 여자, 생긴 건 반반한데 아깝네.

 

  어이, 원망하려거든 네 패밀리를 원망해라.

 

  그건 요한나가 머리채를 잡힌 뒤 가물가물해진 시야에서 마지막으로 들었던 적 패밀리의 목소리였다. 간단한 만남이라 했던 건 역시나 함정. 패밀리의 총 인력을 동원했는지 요한나 혼자서는 어찌 감당할 수 없었다. 스쿠알로도, 감히 바리아의 사신을 공격하리라고 생각하진 않아서 요한나에게 많은 인원을 붙여주지 않았다. 상대 패밀리의 보스는 머리채를 잡혀 간신히 고개를 들고 있는 요한나의 머리 위로 뭔가를 쏟아 부었다. 비커에 담겨 있던 어떤 것. 그 액체의 색이 투명했는지, 푸른색이었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 액체의 향도 기억나지 않았다.

 

  단지 떠오르는 건 그것이 눈에 닿는 순간 안구를 뽑아내 급속 냉각 기체에 담근 것처럼 끔찍하게 고통스러웠던 통증.

 

  간신히 연락이 닿은 바리아는 즉시 요한나를 데리러 왔고, 요한나는 바로 의료진에게 전달 됐다. 그리고서 약 6시간의 경과. 요한나에게 끼얹어졌던 액체는 독극물로 판명 났지만 그것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아무래도 요한나에게 몹쓸 짓을 했던 패밀리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독이었던 모양. 그들은 해독제를 걸고서 바리아에 제안의 손길을 내밀었고, 잔저스는 다소 분노한 분위기로 그들의 만남을 받아들였다. 다소 분노한 분위기라 칭한 것은, 그의 분노가 얼굴로는 제대로 들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 수 있는 건 그의 손끝에 맴도는 분노염.

 

  아마도 자신의 패밀리가 우습게 보인 것에 대한 분노겠지. 요한나는 소식을 전해 들으며 막연히 생각했다. 눈은 약품처리 된 붕대로 꽁꽁 싸맨 채 햇빛 한 점 들어가지 못하게 막혀 있었다. 어떤 갑작스런 반응이 일어날지 모르니 해독제를 구하기 전까지는 조심, 또 조심해야한다는 게 의료진의 의견이었다.

 

  “망할 쓰레기들이!!!”

 

  지쳐 잠이 들고, 다시 깨어났을 땐 또 안구가 얼음송곳으로 헤집는 듯 끔찍한 고통이 밀려왔다. 신음소리를 꾹꾹 삼키고 나서 귀에 들려온 건 100미터 밖에서도 선명하게 들을 수 있는 스쿠알로의 고함소리. 고함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웅성거리는 소리는 봉고레의 것이다. 봉고레 수호자들이 왔나. 그렇게 생각한 요한나는 비척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라? 일어난 게 맞나? 요한나는 묘한 감각에 여기저기를 더듬거리며 침대 기둥을 잡았다. 왜 이렇게 감각이 둔하지? 그건 요한나의 몸에 일어난 첫 번째 변화였다.

 

  “마비독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비독?”

 

  요한나의 상태를 의료진에게 전한 건 룻스리아였다. 룻스리아는 방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요한나를 발견해 곧바로 안아들어 의료진에게 달려갔다. 그리고서 나온 결과는 마비독일 것이란 예상. 감각이 서서히 마비되고 있다고 한다.

 

  “해독제는?”

  “해독제는….”

 

  엔간해서는 화를 내지 않는 룻스리아가 예의 애교 섞인 말투와 약간의 콧소리를 빼고 진지하게 물었다. 스쿠쨩이라고 부르던 호칭도 빼먹은 채. 스쿠알로는 씩씩거리는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말했다. 그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새끼들이 내던진 미끼였다. 요한나는 스스로도 꽤 영민하다고 자부했으므로 그 말의 의미를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니까, 해독제는 애초에 없었다. 고.

 

  그야말로 세상이 무너지는 말이었다. 일단 마비독의 한 종류로 추정된 그것은 서서히 번지고 있다. 감각이 무뎌진 것은 그에 대한 증거다. 스쿠알로는 차가워진 손으로 요한나를 끌어안아 그대로 어딘가로 향했다. 아마도 곁에 있을 봉고레들은 그 광경에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이미 은연중에 요한나는 스쿠알로의 연인이었고 스쿠알로가 가장 귀애하는 부하이자, 단 한 명의 여자였으니까. 낮게 깔린 츠나요시의 목소리는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의제를 내놓았다. 그 조곤조곤한 목소리들을 뒤로 하고 요한나는 스쿠알로의 손에 이끌려 방을 나왔다.

 

  “원래대로 돌아올 거다.”

 

  이건 단순히 예상에 불과하지만

 

  “봉고레 데치모가 직접 손을 벌렸으니까.”

 

  지금 상태로 보건대 요한나 양의 증상은 앞으로 더 악화될 겁니다.

 

  “우오이, 그 애송이. 생각보다 일에 관해선 확실한 거 너도 알잖냐.”

 

  눈은 이미 못 쓰게 됐고, 감각은 무뎌지고 있지요.

 

  “반드시 돌아올 거다.”

 

  나중에는 다른 감각들도 점점 옅어질 겁니다. 마비독이 신경을 타고 뇌로까지 번지면,

 

  “내가 널 구해주마.”

 

  살아도 산 게 아닌, 그야말로 산송장이 돼버리는 겁니다.

 

  요한나가 의료실에서 얼핏 들었던 의료진들의 목소리가, 스쿠알로의 낮은 목소리와 겹쳐 들려온다. 감히 요한나에게 독 따위를 사용했던 패밀리는 그야말로 전멸. 그들은 요한나에게 사용한 독을 ‘눈의 여왕(La regina della neve)’이라고 명명했다. 얼음송곳으로 헤집는 고통이 가시면 동상에 걸린 마냥 통증은 옅어지고 감각이 사라진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종래엔 얼음동상처럼 산송장이 되어 서서히 죽어버리는 독. 그야말로 눈의 여왕이 내리는 죽음의 저주다.

 

  “믿어요. 스쿠알로. 저는 당신을 믿고 있어요.”

 

  요한나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구보다 무섭고 두렵지만 차마 스쿠알로에게 그것을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그 사람은 자신보다 더, 자신의 처지를 못 견뎌할 테니까.

 

◈◈◈

 

  “스쿠쨩. 왜 그래?”

  “…….”

  “스쿠쨩?”

 

  시싯, 룻스리아. 그 바보 상어 방금 차였다고? 룻스리아는 새끼 손가락을 세우고 차를 마시다 어머, 소리를 내며 찻잔을 내려놨다. 스쿠쨩이 차였다니 무슨 소리야 벨쨩? 여전히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웃는 벨 대신 프랑이 입을 열었다. 비의 아가씨 있잖아요? 그 아가씨가 결별 선언을 했다니까요. 롱 머리 바보 대장한테.

 

  “누가 롱 머리 바보 대장이냐!”

  “으악”

 

  룻스리아는 선글라스를 치켜 올리며 팔짱을 꼈다. 스쿠쨩, 안 그래도 지금 많이 힘든 애한테 무슨 짓을 했기에 요한나쨩이 결별 선언을 해? 스쿠알로는 분한 듯 외쳤다. 그러니까 내가 잘못한 거 아니라잖아! 그리고는 휙 하니 응접실을 나섰다.

 

  “사랑이죠.”

  “낯간지럽기는.”

 

  소파에 너부러진 벨과 그 옆에 앉아서 초코쿠키를 야금야금 먹는 프랑. 룻스리아는 스쿠알로를 쫓아가는 걸 포기하고 그 둘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대체?

 

  “아가씨가 헤어지자고 했어요. 개골.”

  “바보 상어는 그걸 아니까 더 화내는 거지.”

 

  룻스리아는 그 말에 단박에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요한나는 드센 인상과는 다르게 상냥한 구석이 있는 아이다. 분명 독 ‘눈의 여왕’으로 만신창이가 된 자기 자신보다, 그런 자신을 옆에서 견뎌야 할 스쿠알로가 안쓰러워 작별을 고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감이네. 아직도 요한나쨩은 스쿠쨩을 잘 몰라.

 

  “시싯. 내 말이 그 말이야.”

  “그러게요. 롱 머리 대장이 고작 그런 걸로 비의 아가씨를 놓아줄 리는 없을 텐데.”

  “저 바보 상어한테는 나름 소중할 테고. 으, 소름 돋아.”

  “롱 머리 대장, 생각보다 집착이 어마어마하니까요.”

 

  그러게나 말이야. 스쿠쨩, 잘못 하면 일이 나쁜 쪽으로 흘러갈 텐데. 요한나쨩이 좀 걱정이야. 룻스리아는 차게 식은 찻잔을 들어 매끄러운 도자기 면을 훑었다. 그리고 그 시각, 룻스리아가 걱정하는 일이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중이었다.

 

  “그만하라고 했잖아요!”

  “우오오이! 너야말로 그만하라고 했다!”

 

  성이 떠나가라 소릴 질러대는 둘. 요한나는 이제 소리 칠 힘도 없어서 헉헉대며 물을 마셨다. 손끝에 감각이 없어 컵을 놓칠 뻔했지만 스쿠알로가 안정감 있게 잡아 탁자에 올렸다.

 

  “스쿠알로 씨가 어떻게 알아요!”

  “…뭐?”

  “왜 그렇게 자기만 생각하는 거예요! 제 생각은. 제 생각은 안 해봤어요?”

  “너.”

 

  지금 눈이 안 보여요. 그리고 후각도 못 느끼고, 미각도 서서히 맛이 가는 중이에요. 발끝과 손끝부터 시작해 감각이 천천히 사라지고 있어. 그런 내 옆에서 당신이 뭘 할 수 있는데!

 

  요한나는 컥컥거리며 소릴 질렀다. 일부러 스쿠알로를 상처주려 내뱉은 말이지만 그녀 스스로도 자신이 비참해져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만다. 스쿠알로는 말없이 요한나 앞에 섰다. 요한나가 마지막으로 그렇게 스쿠알로에게 바락바락 소릴 질러댄 건 조금 오래 전 일이다. 아직 요한나가 유명한 여배우였을 때. 스쿠알로가 요한나를 그녀의 세상으로 돌려보냈을 때. 그 당시 그녀는 가지 않겠다며 고래고래 소릴 지르고 떼를 써댔다. 지금은 입장이 반전됐지만.

 

  “나 좀 봐요. 하나하나가 다 말을 안 들어. 그런 내 옆에서 당신, 나보다 더 힘들어할 거잖아. 마지막에 결국 내가 산송장이 되어 버려도 당신은 날 끌어안고 힘들어할 거잖아. 그 꼴을 나더러 보라고요? 내 몸이 철저하게 망가져서 당신이 우는 꼴을 나더러 보라고?”

 

  나한테 이러지 마. 제발. 나, 그렇게 추한 꼴 스쿠알로 씨한테 보이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제발 놔 줘. 그냥 조용히, 어디 한적한 곳에서 마지막을 보내다가 그렇게 죽고 싶어요. 산송장이 되어도 숨이 끊어지기 전까진 살아있을 거라 했으니까. 날 보낼 때는 조직원 하나만 붙여주세요. 내가 결국 온 몸의 감각이 마비되고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몸이 됐을 때 단칼에 날 죽여줄 수 있는 그런 조직원을.

 

  결국 스쿠알로는 요한나의 마지막 말을 듣고 쿵쿵거리며 방을 나섰다. 자신의 죽음을 고하는 요한나의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으리라. 요한나는 희미하게 문이 닫히는 소릴 들으며 침대로 풀썩 쓰러졌다. 그리고는 할 수 있는 한 크게, 후련하게 엉엉 소릴 내며 울었다. 나라고 이렇게 되고 싶었던 게 아니다. 나도 행복하고 싶었어. 나도, 당신을 그렇게 보내고 싶었던 게 아니란 말이야.

 

  요한나가 울다가 지쳐 잠들었을 쯤, 스쿠알로는 다시 돌아왔다. 자신이 가장 귀애하는 부하. 가장 사랑하는 여자.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 그렇게 소릴 질러도 무엇 하나 확신시켜줄 수 없었다. 여자의 말대로 그녀를 떠날 수도, 그렇다고 그녀의 증상을 씻은 듯 낫게 해줄 수도 없다. 핏줄이 터지도록 꽉 쥔 주먹은 허리춤에 찬 검 손잡이에 가 있다. 할 수만 있었다면 수십 번이고 수백 번이고 널 이렇게 만든 쓰레기들을 썰어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죽었다. 이미 스쿠알로의 손에, 수백 장으로 조각나서 처참하게 죽었다. 그 패밀리에게로 향한 길엔 바리아 뿐만 아니라 봉고레도 있었다. 봉고레 데치모는 정이 많은 남자였으므로 자신이 친구라고 생각했던 요한나가 그 꼴을 하고 돌아왔을 때 굉장히 무서운 분위기로 전투에 임했다. 약 10년 전만 해도 벌레 한 마리 죽이지 못할 것 같던 애송이는 10년의 세월동안 자라 감히 뒷세계 왕의 자리에 올랐다. 누군가는 그를 봉고레 프리모의 재림이라 칭했다. 그 정도로 봉고레의 츠나요시는 성장했다. 무서운 속도로.

 

  “젠장.”

 

  그런 츠나요시 마저 스쿠알로를 막을 수 없었다. 거친 남자지만 제 검에게만큼은 섬세하다. 검을 다루는 그는 어깨근육부터 손끝 감각까지 세심하게 다룰 줄 알고 자신의 검 또한 귀하게 여겼다. 그런 남자가 적의 피를 사방에 튀겼고 차분하게 내려오던 은발을 붉은 색으로 물들였다. 인간 장기의 살점이 지저분하게 달라붙은 검을 든 바리아의 언더 보스. 그 모습은 흡사 지옥에서 올라온 야차와도 같아서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젠장!”

 

  다행히 독에 대한 연구 데이터는 약간 남아있어서 생존 포로 하나 없이 연구 데이터만 달랑 들고 온 그들은 곧바로 그걸 봉고레 연구팀에 넘겼다. 하루빨리 해독제를 찾기 위해. 봉고레 보스의 권력은 엄청난 것이어서 모든 일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이루어 졌다. 심지어 츠나요시에겐 믿을만한 동맹 패밀리 역시 많았다. 예를 들면 과학으로 발달 된 밀피오레, 오래 전부터 친밀한 사이의 캬발로네, 오래 된 고문서의 정보를 갖고 있는 시몬. 심지어 그들은 빈디체와도 약간의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도와줘. 힘을 빌려줘.’

 

  왕의 자리는 절대 가벼운 게 아니거늘. 츠나요시는 자기 패밀리도 아닌, 바리아의 작은 여자 하나를 위해 고개를 숙였다. 스쿠알로는 그 모습이 약간이나마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쯧, 혀를 찼다. 봉고레의 데치모는 누군가에게 명령을 하기 보다는 부탁을 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 아직도 한껏 물러 있다는 소리다. 한때 츠나요시에게 빚을 진 그들은 기꺼이 나와 그들의 힘을 빌려줬다. 봉고레에게 빚을 달아둔다는 조건으로.

 

  그건 대 마피아 봉고레가 타 패밀리에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갔다는 약점이 되기에 봉고레의 수치라고 할 수 있었으나 츠나요시는 그렇게 했다.

 

  ‘요한나는 제게도 소중한 친구니까요.’

 

  아직까지도 츠나요시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부와 권력, 명예 따위가 아닌 그의 사람들이었다. 츠나요시의 사람들. 그는 정말이지 포용력이 넓은 대공 그 자체였으므로 바리아 마저 그의 경계 안으로 끌어들였다. 친구를 죽게 할 수 없으니, 그녀를 살릴 수 있다면 이까짓 불명예는 아깝지 않습니다. 그는 그야말로 대공이었다.

 

  잔저스는 스쿠알로를 부려먹는 일에 시들해졌다. 정확히는 스쿠알로의 정신이 어디 팔려있는지 잔저스 역시 잘 알고 있다는 소리다. 생각해보면 잔저스가 먼저 나서지 않아서 그렇지 그는 보기보다 능력 있는 보스다. 스쿠알로가 대리인으로 나가던 회담에 참석하게 됐고, 욕을 씨불이면서 서류 결재로 하루를 보냈다. 잔저스 역시 평소 사근사근하게 자신을 대하며 융통성 있게 일을 처리하던 요한나를 마음에 들어 했던 것일 테지. 그 증거로 까다로운 대공의 라이거 베스타는 잔저스 외의 그 누구에게도 갈기를 허락하지 않았으면서 요한나에게 호감을 표했다. 박스병기가 주인의 마음을 대신한다고 생각하면 잔저스가 태도를 전환한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모두가 요한나를 위해 힘쓰고 있는데 요한나는 떠나겠다고 했다. 어디론가 멀리. 상냥한 그녀는 자신 때문에 봉고레와 바리아, 두 패밀리 모두가 마비되는 이 상황을 견딜 수 없는 것이리라. 스쿠알로 역시 그걸 너무 잘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화를 냈다. 조금만 더 이기적인 여자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 해 달라, 저것 해 달라. 죽고 싶지 않다고 엉엉 울며 떼를 쓰는 어린애 같은 여자였다면. 그랬다면 차라리 좋았을 걸.

 

  요한나는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 버렸다. 스쿠알로 역시 그것을 알고, 그리 된 원인을 안다. 요한나는 어린 나이에 천애고아가 되어 버렸고 그녀를 그리 만든 장본인은 다름 아닌 스쿠알로였으니까. 스쿠알로는 그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 요한나 역시 스쿠알로의 사죄를 바라지 않았다. 참으로 이상한 관계였지만 그들은 서로를 아꼈고, 결국 연인이 됐다.

 

  그래, 이렇게 어느 한 쪽도 쉬이 포기할 수 없는 연인이 되었다.

 

◈◈◈

 

  겔다는 사랑하는 카이를 위해 길을 떠났습니다. 물을 건너고 산을 넘어. 너른 들판을 가로지르고 눈의 여왕이 있는 곳으로. 결국 여왕의 성에서 눈과 심장에 얼음 거울이 박힌 카이를 보며 겔다는 소리쳤습니다. 카이! 하지만 카이는 이미 꽁꽁 얼어붙은 얼음동상처럼 차가워져 그런 겔다를 외면했습니다.

 

◈◈◈

 

  “날 좀 내버려 둬!”

 

  요한나는 날이 갈수록 까칠해지고, 짜증을 냈다. 제 맘대로 되지 않는 몸뚱이와, 조급해진 마음 때문이다. 자신을 안쓰러워하는 이들이 싫었다. 정작 그들은 연민과 동정이 아닌, 오직 순수한 걱정으로 요한나를 대했지만 요한나에게는 이미 그런 진심이 들리지 않았다. 전부 다 짜증스러웠고, 화가 났다.

 

  요한나는 이제 오랫동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침대에 누워있는 것. 귀에 들리던 소리는 점점 희미해져 거의 들리지 않았고 혀는 굳어 어눌한 발음이 나왔다. 가끔은 숨 쉬는 감각마저 잃어버려 산소 호흡기를 달고 있어야 했다. 때로 마몬과 프랑이 들어와 환술을 사용해 그녀에게 가짜 풍경을 보여주곤 했지만 처음엔 숨통이 트였던 그것이 이젠 괴로울 뿐이었다. 감각을 잃어버려 가짜 풍경에 만족해야 하는. 눈의 여왕이 뇌에까지 미치면 이제 그녀는 환각으로도 바깥 풍경을 만끽할 수 없게 된다.

 

  ‘시신경을 타고 뇌로 독이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어요.’

  ‘이미 감각은 거의 다 마비된 상태일 겁니다. 가장 기본적인 오감각. 시각, 후각, 미각, 청각, 촉각. 아주 희미하게는 남아있겠지만 그것들이 끊어지면 마지막은 뇌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뇌가 망가지면 다시는 감각이 돌아오지 않아요.’

  ‘마비독이라고 했지만 이건 마비독 중에서도 신경독에 가까워서 그게 뇌를 완전히 장악하면 끝입니다.’

  ‘그 전에 해독제를 만들기 위해 봉고레와 바리아, 그리고 그 외 패밀리들의 연구팀이 열흘 밤을 새며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겁니다, 요한나 양.’

 

  그녀를 담당한 의료진은 그녀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뇌만 망가지지 않으면 얼마든지, 아주 느리겠지만 감각은 돌아올 수 있다고 했다. 신경이 망가지면 감각은 완전히 끊어지겠지만 아직은 신경이 살아있다고. 그러니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하루 두 번 그녀의 방에 들리는 닥터 샤멀 또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직 죽음을 생각하기엔 이르다고 타일렀다.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너무나 착하고, 너무나 상냥하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요한나는 주변인들에게 가시 돋친 말을 끊임없이 내뱉었다. 물론 그게 진심은 아니었다. 요한나는 이미 제 몸 상태를 포기했고, 부디 주변인들 역시 그녀를 포기하길 바랐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고통도 큰 법. 알려지지 않은 독의 해독제를 만드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임을 안다. 가능성이 희박했다. 그녀는 언젠가 산송장으로 죽어갈 그녀를 보는 많은 이들이 아프지 않길 바랐다. 차라리, 차라리 그녀에게서 오만 정을 다 떼고 그녀를 버리길 바랐다.

 

  “요한나.”

 

  가능하다면 이 사람부터. 요한나는 개미소리마냥 희미하게 들리는 목소리를 잡아냈다. 그건 스쿠알로의 것이다. 스쿠알로는 요한나의 미운 말에도 꼬박꼬박 3시간에 한 번 꼴로 방을 찾아왔다. 청각이 아직 좀 더 살아있을 때 벨에게서 듣자하니, 요즘은 잔저스가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바리아에서 가장 한가한 그들의 보스가 일을 한다고. 원래 보스의 일이 맞지만 떠맡아 하던 건 스쿠알로다. 잔저스가 제 일을 찾아 하는 만큼 한가해진 스쿠알로는 시간이 빌 때마다 요한나를 찾았다. 요한나가 어떤 말을 내뱉던 간에 망부석처럼 그녀의 옆을 지켰다. 만일 요한나가 제 3자의 입장이었다면 참으로 눈물겨운 사랑이라 말했겠지.

 

  정말 참으로 눈물겨운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 사랑을 하는 이가 바리아의 오만한 비의 수호자다.

 

  모르는 이가 듣는다면 재미없는 농담을 한다며 코웃음을 칠지도 모를 일이다.

 

  “이만 가봐야겠군. 나중에 또 올 테니 잠이라도 자고 있어라.”

 

  뭔가 웅얼거리는 소리가 나지만 요한나는 모르는 척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이젠 사람의 목소리조차 저게 남자인지 여자인지 간신히 구분하는 정도다. 스쿠알로의 목소리를 구분한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요한나는 악화된 상태였다. 스쿠알로는 그 답지 않게 힘없는 웃음소리를 흘리며 방문을 닫았다. 문 앞엔 걱정스런 얼굴의 룻스리아가 있었다. 스쿠쨩, 괜찮아? 스쿠알로는 말없이 등을 돌려 집무실로 향한다. 잔저스가 일을 시작했다 한들 바리아의 2인자인 스쿠알로의 일거리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아주 조금 줄어들 뿐. 공과 사를 구분할 이성은 남아있었기 때문에 스쿠알로는 잠자코 집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지금, 뒷세계를 통틀어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과학자들과 연구팀이 모여 해독제를 만들고 있다. 밀피오레가 전적으로 과학기술을 지원했고, 시몬은 과감하게 자신들의 서재를 열었다. 그 안엔 그들이 비밀리에 축적해온 고문서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캬발로네는 전 세계를 쥐 잡듯 뒤져 쓸 만한 정보를 싸그리 모아왔다.

 

  “늦지 않을 거야, 스쿠쨩.”

 

  룻스리아의 말대로 그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늦어선 안 됐다. 독의 유일한 중독자인 요한나가 죽어버리면 그들의 모든 노력은 허사가 되어 버리고 만다. 봉고레 데치모는 선대 보스인 노노와 함께 빈디체를 찾았다. 빈디체는 츠나요시에게 빚진 게 있었고, 한때 체커페이스라고 불렸던 남자 역시 츠나요시에게 갚아야 할 은혜가 있었으므로 그들은 당당히 빈디체 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아주 오랜 세월을 살아왔으므로 자문을 구하기에 썩 마땅한 상대다. 빈디체 역시 마피아 중에서는 나름 공정을 지키는 봉고레를 싫어하진 않았다. 빈디체가 나서기 전에 모든 일을 컨트롤하고 중재하는 건 봉고레였으므로.

 

  “비의 수호자님! 태양의 수호자님!”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찰나, 먼발치 복도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비의 수호자님! 태양의 수호자님! 룻스리아와 스쿠알로는 서로를 마주봤고, 복도 코너를 돌아 누군가가 나타날 때까지 건물 기둥마냥 자리에 서있었다.

 

  “보고 올립니다. 눈의 여왕에 반응을 보이는 물질이 발견 됐다고 합니다.”

  “뭐?”

  “여왕의 독이 어떤 것들로 이루어 졌는지 성분 분석에 애를 먹고 있던 연구팀이, 막 1시간 전에 성분 분석을 끝냈고 거기에 대한 해독제를 만들고 있다고 했습니다.”

 

  스쿠알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룻스리아 역시 달렸다. 요한나가 독에 중독된 지 열흘 하고도 이틀이 넘어가고 있던 어느 날이다.

 

◈◈◈

 

  겔다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카이를 품에 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어요. 그러자 놀랍게도 카이의 눈과 심장에 박혀있던 얼음 거울이 겔다의 뜨거운 눈물에 녹아 사라졌고, 카이는 겔다를 알아보며 똑같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

 

  처음, 요한나의 상태를 진단했던 의료진은 넉넉잡아 20일을 불렀다. 고통 없이 빠르게 죽이는 독과 달리 눈의 여왕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흐르며 서서히 대상을 죽이는 독이었다. 의료진이 잡은 날은 말이 좋아 20일이었지 그건 상태가 악화되지 않았을 때 요한나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요한나는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었고 의료진이 최후에 내린 선고는 많이 버텨봐야 2주라는 것.

 

  물론 버티는 것도 그냥 버티는 게 아니라 여러 약물을 투입해 최대한 독의 진행을 막아서 버텨야 2주였다. 그리고 그 2주 중 열흘 하고 이틀이 지났을 때야 겨우 완전한 성분 분석이 끝났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어딘가. 아직도 그들에겐 리미트까지 이틀이나 남아있었다. 지금까지 애를 먹었던 건 완전한 성분분석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 성분 분석만 마쳤다면야 해독제를 만드는 건 금방이었다. 권력이 있고, 부가 있다. 그런 패밀리들이 모여서 하는 최대 프로젝트다. 필요한 건 언제든 구할 수 있었고, 최고의 연구팀과 과학팀이 있었다.

 

  뒷세계라는 특성 상 독 관련 스페셜리스트도 반강제로 데리고 온 상황이었다. 독에 관한 스페셜리스트들은 괴짜들이 많아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알려지지 않을 독이라 하니 덥석 미끼를 물고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 그들은 그 독 샘플을 빼돌릴 속내로 왔겠지만 봉고레를 비롯한 거대 패밀리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예상컨대 이 위험한 독이 외부로 반출되지 않도록 보안에 신경을 쓸 것이다.

 

  “이제 정말 남은 건 이틀. 그 이후엔 요한나 양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요. 실제로 상태는 더 악화되고 있고.”

 

  불려간 회의 자리에서 츠나요시는 눈을 감고 이야기를 진행했다. 마지막까지 부탁드립니다. 그들은 마지막 남은 이틀에 사활을 걸기로 했다. 기왕 시작한 것, 이제는 오기로나마 끝을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무엇보다 요한나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도 이젠 그녀를 궁금해 했다. 대체 그녀가 누구기에 대 마피아 봉고레의 데치모가 저렇게까지 하는 걸까. 봉고레 데치모는 사람 보는 눈이 좋은 걸로도 유명해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아직 만나보지 못한 요한나를 기대하고 있었다.

 

  “우오이, 요한나. 앞으로 조금이다.”

 

  조금만 더 버텨라. 요한나는 이제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 오감각 중에선 촉각만 약간 남아있는 상태였다. 촉각도 극심한 통증에만 희미하게 반응하는 정도. 사흘 전이었나, 잘못해서 뜨거운 커피를 팔에 쏟았다. 분명 비명이 나올 통증이었음에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고작이었다. 커피가 쏟아진 피부는 붉게 물집이 잡혔고 지금은 처치를 끝낸 뒤 커다란 반창고로 붙여놓은 상태다. 스쿠알로는 닿을 듯 닿지 않을 듯 반창고를 손끝을 쓸어본 뒤 자리에서 일어나 요한나의 머리카락을 잡아 올렸다.

 

  츠나요시의 학생 때부터 친구라던 쿄코와 하루가 얼마 전부터 요한나의 수발을 들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요한나의 목욕을 도왔던 건 그녀들이었다. 달콤한 허브향 샴푸를 썼는지 머리칼에선 여적 달달한 향이 맴돌았다. 스쿠알로는 요한나의 새까만 머리칼 끝에 경의를 표하듯 입을 맞추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방을 나섰다. 요한나는 그런 작은 애정 표현에 어색한 여자였고, 스쿠알로가 그녀에게 입을 맞출 때면 왁왁거리며 얼굴을 붉히곤 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여서 얼굴도 붉히지 않는다.

 

  “해독제의 조합 이론은 완성된 상태입니다.”

  “단지 들어가는 약품과 재료가 귀해서,”

 

  연구 경과를 보러 왔던 츠나요시는 상관없으니 재료를 구하라고 일렀다. 봉고레가 2대부터 본격적으로 쌓아왔던 부는 그리 쉽게 바닥날 만한 것이 아니다.

 

  “말했다시피, 요한나는 스쿠알로 뿐 아니라 저희들에게도 귀한 사람이니까요.”

  요한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이들은 많다. 실제로 츠나요시만 해도 그렇다. 스쿠알로가 바쁠 때면 요한나는 바리아의 대리인으로 봉고레에 나서기도 했는데, 종종 그럴 때 츠나요시는 요한나의 덕을 봤다는 것 같았다. 실제로 데치모가 요한나를 마음에 들어 한다는 걸 눈치 챈 봉고레의 검은 사신은 그녀를 바리아에서 빼내려고 시도한 전적도 있다. 검은 사신은 보기에만 그렇지 자신의 오랜 제자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물론 데치모가 단지 마음에 들어 한다고 해서 다른 조직의 여자를 빼내갈 인물은 아니다. 그럼에도 검은 사신이 그녀에게 스카웃 제의를 했다는 건 그녀가 조직원으로도 꽤 유능했기 때문이다. 스쿠알로도 그 사실을 알았지만 처음 몇 번만 버럭 화를 냈지 그 이후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찌됐건 스쿠알로 자신이 바리아에 있는 한 요한나도 바리아를 떠나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 요한나가 마피아 세계에 발을 들인 단 하나의 이유는 스쿠알로였으니까.

 

  “프로젝트의 결과물입니다.”

 

  가제가 붙은 약품의 결과물은 엄지 손가락만한 유리캡슐에 담긴 손톱만큼의 액체였다. 개발을 기대해 봐야겠지만, 주어진 기한 안에 나올 수 있는 최선은 그것뿐이라는 게 연구팀의 주장이었다. 실제로 결과물로 나온 약품은 해독제라기 보단 해독을 도와주는 보조제에 가까웠다. 어쨌든 해독제라고 명명하긴 했다만 그것을 복용하고 몸 안의 독이 완전히 해독되려면 수많은 촉진제와 보조제 역시 같이 복용해야 한다는 게 의료진과 머리를 맞대고 낸 결론이었다.

 

  “하지만 그게 어디야. 해독 효과는 확실하겠지?”

 

  봉고레, 시몬, 밀피오레, 바리아. 4개 패밀리의 보스와 수호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캬발로네의 보스 디노는 웃으며 연구팀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그 웃음이 진심을 담은 웃음이 아니란 걸 모르는 이는 없다. 연구팀은 꿀꺽 침을 삼키며 답변을 달았다. 해독효과는 확실합니다. 눈의 여왕 샘플에 약물을 떨어뜨린 결과, 독소가 느릿하게나마 제거되는 경과를 지켜봤고, 실험쥐들에게 실험을 했을 적 빠르진 않았지만 확실한 효과를 얻었습니다.

 

  감히 요한나를 실험쥐에 비교할 순 없으나 생체실험은 할 수 없으니 그게 최선이었다. 이제 남은 건 요한나가 부디 해독제를 복용한 후 빠른 효과가 있기를 바랄 뿐. 약은 주삿바늘로 직접 혈관에 투여한다고 했다. 그리고 해독제의 효과를 촉진하는 촉진제가 팩에 담겨 수액으로 몸 안에 흘러들어갈 거라고도 했다. 그 외에도 지금 요한나는 굉장히 체력이 떨어져 있으니 영양제와 더불어 약의 부작용으로 인한 조직파괴를 막기 위해 여러 약품을 직접 입으로 복용해야 한다고 했던가. 그야말로 몸에 뚫린 구멍이란 구멍에 죄다 약품을 투여하는 꼴이다.

 

  하지만 스쿠알로는 그래도 좋았다. 그렇게 구차하게라도 요한나가 살아준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요한나. 삼켜야 돼요. 삼켜야 요한나가 살 수 있어요.”

 

  수액과 주삿바늘로 투여하는 건 쉬웠다. 문제는 요한나가 직접 삼켜야하는 약이었다. 감각이 모조리 사라진 요한나는 입을 오물거리는 것도, 물을 삼키는 것도, 힘든 지경이다. 하물며 알약 형태의 것은 어떻겠는가. 간신히 약들을 전부 빻아 가루로 만들어 왔지만 요한나는 물을 탄 가루약도 삼키지 못했다. 수발을 들던 쿄코와 하루는 발만 동동 구르며 요한나의 어깨를 받쳤다.

 

  “여자. 너흰 가봐라.”

  “네? 하지만,”

  “내가 곁에 있을 테니 가보라고 했다.”

 

  스쿠알로가 손짓하자 쿄코와 하루는 조용히 방을 나섰다. 이미 그녀들도 요한나가 스쿠알로의 연인이란 걸 알고 있었다. 스쿠알로는 수척해진 얼굴로 한숨을 푹 쉬며 다가와 요한나의 머리맡에 앉았다. 눈을 뜨지도, 감지도 못해 반쯤 뜬 채로 허공을 보는 모양새가 장난감 인형의 그것과 닮아서 스쿠알로는 요한나의 코 밑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다행히 숨은 쉬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요한나의 상태는 호흡 외의 모든 것이 도자기 인형과 같은 꼴이었다.

 

  늘 따뜻하고 부드러웠던 피부는 차갑게 굳어 팔다리가 뻣뻣했고, 윤기 흐르던 까만 머리칼은 푸석푸석해진 채로 힘없이 늘어졌다. 붉은 빛이 사랑스럽던 입술은 메말라버린 유화물감 같았다. 입술은 굳게 닫혀 차가운 인상을 주고 눈 한 번 깜빡이질 못해 눈꼬리를 타고 눈물이 흘러내린다.

 

  스쿠알로는 요한나를 제 품에 안다시피 해 상체를 들어올렸다. 소름끼치도록 딱딱한 몸은 정말로 도자기 인형을 만질 때 그 감각과 같아서 하마터면 요한나를 안은 손에 힘을 줄 뻔 했다. 조금만 힘을 주면 깨져버리지 않을까 싶어 조심히 그녀를 들어 올린 스쿠알로는 아무 말 없이 약물을 입에 머금었다. 네가 할 수 없는 것은 내가 해주겠다고. 그렇게 약속했었다. 요한나가 처음으로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버린 뒤 스쿠알로의 곁에 왔을 때 스쿠알로가 해줄 수 있는 건 그 약속 딱 하나였다. 네가 할 수 없는 것은 내가 해준다고.

 

  호흡을 대신해줄 순 없지만 약을 목구멍 뒤로 넘어가게 하는 건 할 수 있다. 요한나의 얼굴을 잡은 스쿠알로가 손가락에 살짝 힘을 주자 요한나의 입술은 살짝 틈을 내며 벌어졌다. 턱을 잡고 그대로 입을 맞추자 입에 머금었던 약물이 요한나의 입 안으로 흘러들어간다. 하지만 목구멍으로 넘기는 게 문제여서 스쿠알로는 요한나에게 입을 맞춘 채로 그녀의 턱을 치켜들었다. 인간의 무조건적인 반응으로 약물은 조금씩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가루약을 개어 따뜻한 물에 탄다. 그건 고작 두 모금 정도면 바닥날 분량이었다.

 

  이후 요한나의 약은 스쿠알로가 담당하게 됐다. 약이 목뒤로 넘어가지 않아 곤란해 하던 차에 스쿠알로가 매번 덥석 약을 받아가 잘 먹이는 걸 보고 그에게 약 수발을 일임했다. 스쿠알로는 하루에 세 번 꼬박꼬박 먹이는 약을 일부러 시간을 내어 먹였다. 그야말로 지극정성이었다. 다른 이들은 그런 스쿠알로를 보며, 특히 디노가 스쿠알로를 보며 자주 말했다. 요한나 양이 저 녀석 저걸 봐야하는데. 벌써 약을 투여 받은 게 일주일쯤 지났다. 하지만 어째선지 요한나의 몸은 그녀의 의지대로 움직일 기미가 없었다.

 

  “애초에 약효는 느리게 나타날 거라고 했으니까 참고 기다려 봐야지.”

 

  요한나를 잘 모르는 뱌쿠란은 프로젝트 종료 뒤에도 자주 바리아 성에 나타났다. 봉고레야 그렇다 치더라도 봉고레에게 붙어 나타나는 뱌쿠란이, 바리아 입장에선 썩 불쾌했다. 하지만 어쩌랴. 밀피오레는 프로젝트의 중요 패밀리였고 봉고레의 정식 부탁에 전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밀피오레를 내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아하. 이 애가 요한나라고 하는 그 여자?”

 

  그린 것 같은 미소는 요한나를 보더니 더 깊어졌다. 흐응, 미인이라는 것 외엔 별 볼일 없는데. 츠나요시는 말없이 어깨를 으쓱였다. 요한나는 눈을 감고 있을 때도 꽤나 빼어난 미인이었지만 –그도 그럴 게 그녀는 아직도 가끔 언론에 이름이 거론되는 전직 유명 여배우였다- 그녀의 가치는 그녀가 눈을 떴을 때 더 빛났기 때문이다. 요한나를 아끼는 이들은 그녀의 겉 외양만을 판단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

 

  애초에 더 막말로, 뒷세계에서도 물이 꽤 좋다는 업소에는 요한나 보다 화려한 외모의 여자들도 널리고 널렸다. 그럼에도 그녀가 사랑받는 이유는 그녀가 눈을 떠야만 비로소 알 수 있을 것이다.

 

  “요한나.”

 

  스쿠알로는 약을 먹이기 전, 한 번씩 요한나의 이름을 입에 담는다. 어쩌면 부름에 응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기에. 하지만 아직까지 요한나는 단 한 번도 부름에 응한 적이 없다. 아직 감각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증거겠지. 스쿠알로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가루약을 갠 물을 입에 머금었다. 그리고 건조한 요한나의 입술을 맞추고 약물을 넘겼을 때, 요한나의 눈꼬리를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찝찔하게 짠 맛. 스쿠알로는 처음, 그것이 약에서 나는 맛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약은 무슨 성분으로 이뤄졌는지 모르나 묘하게 찝찔한 맛이 났기 때문이다. 약에 들어간 재료 중 하나겠거니 해서 스쿠알로는 별 클레임 없이 수차례 요한나에게 그대로 약을 먹였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약의 짠맛과는 달리 입에 들어온 짠 액체는 단박에 느낄 수 있는 온도를 지니고 있었다. 따뜻하다? 스쿠알로가 천천히 입을 떼고 멍하니 요한나를 훑어봤을 때 깜빡, 요한나의 눈꺼풀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눈꺼풀이 움직이면서 눈꼬리에 맺혀있던 눈물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스쿠알로는 호흡도 잊은 채 손을 들어 요한나의 뺨을 쓸었다. 분명 뺨에 길게 나있는 건 투명한 눈물 자국이다. 요한나는 자의로 눈을 감지 못했으니 눈은 언제나 건조해서 눈물이 맺혀있었다. 하지만. 그렇지만. 설마? 스쿠알로의 엄지손가락이 요한나의 까칠한 입술을 쓸자 또 한 번 깜빡, 그녀의 눈꺼풀이 감겼다가 뜨인다. 분명히 요한나는 자의로 눈을 깜빡였다.

 

  스쿠알로는 멍하니 그녀를 내려다 봤다. 그녀의 얼굴에 툭, 툭, 작은 물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요한나가 또 한 번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야 그는 그게 자신의 눈물임을 알았다. 요한나? 스쿠알로가 조용히 이름을 부르자 요한나는 느리지만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가느다랗게 눈을 뜬다. 아마도 그건 웃음이었으리라. 아직 마비된 감각이 돌아오지 않아 살짝 일그러진 눈웃음이지만 스쿠알로는 그게 웃음이었다고 확신했다.

 

  “스쿠쨩. 쿄코쨩이랑 다른 여자애가 그러는데, 이제 요한나쨩 팔이랑 다리 주물러 줘야한… 스쿠쨩?”

  “요한나….”

  “요한나쨩?”

 

  스쿠알로가 요한나를 품에 안고 앞으로 고꾸라지자 룻스리아는 놀라서 침대가로 다가갔다. 스쿠알로는 요한나의 품에 고개를 묻은 상태였다. 룻스리아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요한나를 훑어봤다. 혹시 어디 잘못된 건 아닐까. 놀라서 훑어보던 눈이 요한나의 얼굴을 향했다. 그러자 요한나가 깜빡,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약간의 침묵 뒤 룻스리아는 높은 가성을 질러대며 방을 뛰쳐나갔다. 보스! 벨쨩! 프랑! 아니지, 봉고레를 불러와! 의료진이랑 같이! 레비, 너 잘 만났다. 너 가서 사람들을 불러와! 고래고래 질러대는 외침에는 예의 여성스런 말투는 쏙 빠진 채였다.

 

  방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쿄코와 하루는 곧바로 츠나요시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스쿠알로가 저도 모르게 흐르던 눈물을 닦고 다시 요한나를 품에 안았을 무렵 룻스리아와 쿄코, 하루가 부르러 갔던 모든 이들이 요한나의 방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곧 샤멀과 함께 의료진이 들이닥쳤다. 세심한 진료를 위한 장비는 죄다 의료실에 있었지만 의료진들은 여러 번 요한나의 상태를 살핀 뒤 해독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판정을 내렸다.

 

  그야말로 기적.

 

  요한나는 거의 한 달 끝에야 눈의 여왕을 이겨내고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

 

  “그러고 보니 스쿠쨩 말하기로 그 약, 좀 찝찔한 맛이 났다고 하던데.”

  “아하. 나중에 잠깐 제약 차트를 봤었어요.”

  “흐음?”

  “리본도 몰랐었나 봐요. 제약 차트를 훑어보더니 좀 의아해 하던데요?”

 

  왜? 룻스리아가 찻잔을 들고 물었다. 츠나요시는 차를 마시며 빙긋 웃었다. 약에 들어간 성분 중 몇몇이 실제로 인간의 눈물에 들어있는 것과 같은 거래요. 스쿠알로 씨가 약에서 찝찔한 눈물 맛을 느꼈다면 아마 기분 탓이 아닐 걸요? 츠나요시는 찻잔을 마저 비웠다.

 

  “눈의 여왕이 내린 저주를 이겨내는 방법은 사랑하는 사람의 눈물이다, 이런 걸까?”

  “에. 룻스리아 씨. 그거 독약인 눈의 여왕이 아니라 동화 눈의 여왕 말하는 거예요?”

 

  룻스리아는 후후 웃으며 찻잔을 기울였다. 츠나요시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른 의문을 던졌다. 그런데 스쿠알로 씨는 약이 눈물 맛이란 거 어떻게 알았을까요.

 

  “응?”

  “요한나가 먹는 약을 스쿠알로 씨가 맛봤을 리는 없을 거고.”

  “어머. 데치모 군은 그것도 모르니?”

  “네?”

  “잠든 공주님을 깨우는 건 왕자님의 키스라잖아. 예전부터 정론 아니었니?”

 

  룻스리아의 말에 츠나요시가 고개를 까딱이다 묘한 미소를 지었다. 스쿠알로 씨도 다정한 구석이 있다니까요. 어머 그럼. 스쿠쨩은 나름 상냥해. 그게 요한나쨩 한정이어서 그렇지.

 

  ─그 뒤로 한동안 스쿠알로는 츠나요시를 만날 때마다 묘한 미소와 마주쳐야 했다. 그건, 요한나가 깨어나고 걸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을 쯤의 이야기.

 

◈◈◈

 

  겔다와 다시 만난 카이는 눈의 여왕이 자신을 가두었던 성을 나와 행복했던 자신들의 마을로 돌아갔습니다. 겔다가 혼자 가로 질렀던 들판을, 혼자 넘었던 산을, 혼자 건넜던 강을 이젠 둘이 함께 지나 늘 행복했던 자신들의 고향으로.

 

  이야기는 여기서 끝.

  모든 동화들이 그랬듯,

  그들도 역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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