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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부 마츠자카 나츠미는 선배부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연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건 바로 옆에서 자신을 보며 대본을 읽고 있는 사람이 그녀 자신이 좋아하는 오이카와 토오루라는 것이었다. 선배 부원들의 부탁으로 함께하게 되었는데 배역과 대본을 뽑기로 뽑는 바람에 현재, 그녀의 옆에서, 마츠자카를 좋아하는 남자로 나오게 되었다.

  배역이 뽑힌 날로부터 마츠자카의 기분은 좋을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짝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짝사랑하는 역할이었으니까. 한편으론 문화제가 다가오지 않기를 바람도 있었지만 이런 기회가 오는 것도 많진 않으니 지금 이대로 즐기자며 자신을 짝사랑할 수 있게 그냥 이대로 만족했다.

대본 읽기 부터 시작해 의상, 동작, 세팅 등의 여러 일을 하면서도 마츠자카는 불만 없이, 모든 일을 진행하게 했다.

  부원들은 평소, 소품 담당만 한다며 배역을 거부하느라 부장으로부터 도망치던 그녀를 연기를 못하는 선배로서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잘하면서 하지 않으려 하는 구나 하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자신이 그런 식으로 재평가가 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에겐 그저 오이카와만 보일 뿐이었다.

 

  “마츠자카는 말이야.”

  “네?”

  “왜 여태까지 배역을 하지 않았던 거야? 이렇게 잘하면서.”

  “아, 그거 말이지, 작년에….”

  “선배님. 저 그만둬도 될까요?”

  “…. 뭐. 본인이 하기 싫다고 하니까. 우리 연극부는 하기 싫은 사람을 억지로 붙잡진 않거든.”

  연극부 부장이 하려던 말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야 했고, 그때의 사건은 마츠자카에게 있어선 감추고 싶은, 지우고 싶은 일이었다. 부장이 부장이기 전, 마츠자카가 소품 담당이 아닌 배역 담당이었을 적의……. 아무리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궁금해해도 아니, 오히려 더 숨기고 싶어지는 것이었기에 부장에겐 미안하지만 입을 막는 수밖에 없었다.

  궁금해서 자신과 부장을 번갈아가며 보는 오이카와의 얼굴에도. 좋았던 기분이 팍 식어버려 잠시의 휴식시간을 가지기로 하고 마츠자카는 혼자, 의자에 앉아 대사를 읽기 시작했다. 3학년들이 건방지다. 부장에게. 라는 소리가 들려도 자신은 대사를 외워야 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귀로 들리는 목소리에 몸을 일으켜 대본을 자신이 앉았던 의자에 올려놓고는 후배 부원을 불러서 연극 때 해야 할 행동에 관해 물었다.

  연극의 스토리가 빨간 구두 이야기였으니 구두를 신은 마츠자카가 춤을 추면서 걸어야 하는 것에 대한… 몸을 움직이면 소리가 덜 들릴까. 먼저 춤을 보여주는 후배부원을 따라 하면서 겨우겨우 눈으로 좇고 있었다.

 

  “마츠자카. 이쪽으로 이렇게.”

 

  뻗은 팔이 잡혀 오자 깜짝 놀라며 어깨가 들썩이더니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체 도와주고.

이런 짧은 행복은 어느새 곧 시작하는 커튼 앞에 서서 안타까움으로 밀려왔다. 뒤쪽에서 자신을 보며 힘내라는 부원들의 목소리에 무대 위로 올라가 관객들 쪽으론 고개를 돌리지 않은 체 이야기는 시작된다.

  동화 빨간 구두의 주인공처럼 마츠자카는 자신이 준비한 빨간 구두를 꺼냈다. 점점 다가오는 오이카와의 차례를 기다리면서. 무대가 무도회장으로 바뀌니 그 빨간 구두를 신었다. 일이 있어 본가로 갔을 때 게임을 하면서 알게 되어 처음으로 오프라인 때 만났던 친구에게 선물을 받았던 빨간 구두를.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무대로 나갔다.

  빨간 구두를 신은 소녀는 빨간 구두에 매료되어 춤을 춘다. 조명 아래에서 급하게 선후배 부원에게 배웠던 발레를 하는듯한 동작을 취하며 춤을 추듯 움직였다.

  그리고 무도회장에서 만난 오이카와와 함께 손을 잡고 춤을 춘다.

  자연스럽게 해야 한다. 티가 나면 안 된다. 연기다. 연기다. 연기…….

 

 

 

  그 뒤로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떻게든 대사를 하고 끝을 낸 것 같은데 마츠자카의 머릿속은 오이카와와의 춤을 추는 그 순간만이 기억에 남아, 부장이 다음 차례를 위해 내려가야 한다며 끌고 무대 뒤로 나와 익숙하면서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 덕에 정신을 차렸다.

 

  “정신 차리지?”

  “아. 쿠로오씨.”

  “연극 잘 봤다.”

  “켄은 어딨어요?”

  “오자마자 켄마부터 찾냐…. 아까까지 같이 있었는데 켄마가 혼자서 화장실 간다기에 길 잃으면 안된다고 말하니까 알아서 갔다 온다고 하더라고.”

  이번이 겨우 두 번째로 만나게 되어 라인으로 만큼의 친한 행동이 나오지 않아 조금은 어색하게 행동했다. 그런 마츠자카를 보면서 쿠로오는 씩 웃으면서 어깨동무를 하고 왜 그러냐면서 장난을 걸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옆으로 걸었다.

  몇 발짝 걷다가 발밑에 떨어진 조명선을 밝고 넘어지려는 마츠자카를 겨우 붙잡아 근처에 있던 의자에 앉혔다.

  처음 오프라인 모임으로 만났던 날, 만난 기념으로 각자에게 원하는 선물을 해주기로 했었고 그때 자신이 선물해준 빨간 구두를 신고 온 마츠자카를 보고는 역시 내가 산 구두야. 하면서 주워들었다. 반쯤은 어색함에 저와 시선도 못 마주치는 게 재밌는지 장난 좀 쳐볼까 하고 입을 열었다.

 

  “왜 내가 준 빨간 구두를 신고 무대에 올라간 거야?”

  “제가 가지고 있는 빨간 구두 중에 이게 제일 예뻤으니까요.”

  “내가 왜 너한테 빨간 구두를 선물로 준건지 알아?”

  “왜요?”

  “이 구두를 신고 네가 나에게만 오길 바랐거든.”

  그리고는 웃으면서 벗겨진 빨간 구두를 신데렐라에게 유리구두를 신겨주는 왕자님처럼 한쪽 무릎을 꿇고 신겨주었다. 주변에서 들리는 여학생들의 목소리와 남학생들의 질투의 목소리는 섞여 알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버렸다. 여전히 제 발을 잡고 있는 쿠로오를 보면서 마츠자카는 그제야 평소와 같은 미소를 지었다.

  “큰일 났네요. 빨간 구두의 저주를 풀기 위해선 쿠로오씨를 따라갈 수 밖에.”

  “맛있는 거 사준다고 했었잖아.”

  “그래요. 쿠로오씨 켄은 어디 있어요? 우리 학교는 처음일 테니까 탈의실 앞으로 오라고 해요. 나오면 바로 다른 곳에 가게.”

  “그나저나 우리랑 해서 어떡하냐. 저 녀석하고 데이트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쪽으로 오는데.”

  “네?”

  쿠로오의 말에 좌우로 고개를 돌리다 제 쪽으로 웃으면서 걸어오는 오이카와를 보더니 만나면 안될 사람이라도 만난 듯 급하게 쿠로오 뒤로 숨었다. 쿠로오가 키가 크니 작은 마츠자카가 숨겨지긴 했지만 다 보이게 숨어버리는 행동이라 오이카와는 그대로 쿠로오와 마츠자카가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마츠자카, 이 사람은…….”

  “아. 제 친구의 친구이자 제 친구고…”

  “그러니까 마츠자카의 친구구나.”

  “안녕하세요. 항상 이 녀석이 신세를 집니다.”

  “마츠자카의 학교 선배입니다.”

  서로를 보며 씩 웃으면서 인사를 나누다가 마츠자카가 빨리 가자며 쿠로오의 손을 잡고 당겼다.

  “무, 무슨 소리에요! 데, 데이트라니…….”

  “미리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친구들이랑 약속이 있어서.”

  “네, 네. 가세요! 오이카와씨!”

  “그럼 수고했어, 마츠자카. 그럼.”

  오이카와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면서 가고 마츠자카는 고개를 돌려 오이카와가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여학생들의 인사를 받으며 탈의실로 향하는 오이카와를 보면서 눈을 살짝 감았다가 떴다. 자신이 잡은 손이 꽉 쥐어지자 고개를 돌리니 저를 보고 쿠로오가 짧게 숨을 뱉어내며 자유로운 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는다.

  “비싼 거 먹어도 돼?”

  “맘껏 드세요. 어제 사촌오빠가 용돈을 줬거든요.”

  “아 그 나랑 나이 같다던… 부럽다. 나도 걔 동생 하면 안 되나. 요리도 잘한다면서.”

  “에. 뭐. 물어는 볼게요.”

  서로 진담 같은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마츠자카는 제 옷을 받아두고는 탈의실 쪽으로 향했다. 때마침 그 앞을 지나가던 일행과 마주쳐 이야기를 하는 동안 마츠자카는 빠르게 원피스에서 교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나오자마자 자신에게 몰려오는 후배들에게 의상을 챙겨줘서 고맙다며 간단하게 자기 할 말만 하고 쿠로오와 옆에 있던 친구, 코즈메의 손을 잡고는 빠르게 걸어갔다.

  연극이 짧았던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사촌오빠가 동영상으로 찍어준다고 했으니 혼자 있을 때 그걸 보면서 만족하기로 하고 일단은 자신을 위해서 멀리서 와준 둘을 위해 행동해야 했다. 전에 한번 도쿄를 갔을 때 이후로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니까.

  “우선은 켄을 위해 준비한 게 있으니까 우리 반 교실로 가자. 카페 하거든.”

  “가면 일해야 하는 거 아냐?”

  “나한텐 연극 하고 왔으니까 쉬게 해준다고 했었어. 너를 위해 애플파이 준비했으니까 가자.”

  애플파이라는 단어에 코즈메가 반응을 해오자 기쁜지 마츠자카는 활짝 웃었다. 그런 둘을 보고 있다가 같이 가는 거 아니었냐며 쿠로오가 어깨동무를 해와 다시 웃음이 이어졌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만 신경 쓰지 않고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하면서 인파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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