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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끼익-, 이상한 소리를 내며, 교실의 문이 열리고, 많은 학급 학생들의 눈이 문을 향했다.

  이윽고 검은 후드를 뒤집어 쓴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고, 그 뒤를 여자아이 한 명이 따라서 들어왔다.

 

  “오늘부터 여러분과 함께 공부하게 될 유린양입니다.”

 

  유린이라고 불린 아이는 멍하니 학생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지켜보더니, 입가에 작게, 아주 작게 미소를 짓고는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유린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이름만을 짧게 말하고는, 인사를 하려 고개와 허리를 숙였다. 그 모습이 자신들이 인사하는 모습과는 달라 어색하게 보고 있던 차에, 후드를 뒤집어 쓴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유린양은 저 먼 나라 아리안트에서 공부를 하려고 왔다고 합니다. 모르는 것이 많을 테니까 모두 친절하게 알려주도록 하세요.”

 

  “네~.”

  후드를 쓴 남성이 대답에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교실을 나서고, 언제 앉아들 있었냐는 듯, 다들 유린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신입인 만큼 궁금한 것이 많아서이기 때문이리라. 모두들 그녀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질문을 쏟아내느라 여념이 없었고, 그녀도 처음에는 당황하더니, 이내 웃으며 질문에 답을 했다.

 

  “안녕! 내 이름은 오르카야! 옆에는 내 쌍둥이 오빠 스우고! 너는 아리안트 라는 곳에서 왔다고 했지?! 아리안트는 어떤 곳이야?”

 

  “…, 안녕. 그러니까…, 오르카 라고 부르면 될까? 아리안트는 모래로 뒤덮인 사막으로 된 곳이야. 사막이라서 낮에는 덥고, 밤에는 조금 추워지는 곳이기도 해.”

 

  “우와, 재미있어 보이는 곳이네! 그렇지, 스우?”

 

  “…, 응.”

 

  활발해 보이는 금발의 쌍둥이 여동생, 오르카라는 여자아이 말에 그다지 관심 없는 표정의 스우라는 남자아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원래 그런 표정인건지, 아니면 정말 관심이 없는 건지 유린이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다시 한 번 오르카의 말문이 열렸다.

 

  “사막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 나중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

  “…, 나중에, 같이 가자.”

 

  오르카의 말에 스우가 불쑥 손을 내밀더니, 오르카의 손을 잡고 말했다. 오르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더니, 자기들끼리 손을 잡고 가버렸다. ‘뭐야, 저 쌍둥이는….’ 유린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들이 가버린 자리를 보고 있자, 아까 전 오르카 때문에 선수를 빼앗겼던 다른 아이들이 질문을 와르르 쏟아내기 시작했다.

 

  유린은 자신의 아버지가 아리안트의 귀족이자 대부호라는 이야기, 아리안트는 과일과 보석으로 유명하다는 이야기, 또 자신의 다른 이야기들까지 모두 쏟아내고 나서야 질문세례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2.

  그녀의 방은, 이 학교에서 가장 크고 좋은 방으로 배정되었다. 혼자서 쓰기에는 너무 넓다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 자신보다 한 살쯤 더 많거나, 동갑으로 보이는 소년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유한이라고 합니다. 오늘부터 당신의 하인을 맡게 되었어요.”

 

  “…, 하인? 분명 하인은 필요 없다고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

 

  “네? …, 아, 아아. 그러지 말고, 다시 한 번만 생각해주세요? 네? 저 정말 일 잘해요!”

 

  “….”

 

  그녀는 자신이 대답을 하지 않자 이젠 자신에게 애원하다시피 하고 있는, 유한이라고 이름을 밝힌 잿빛머리의 소년을 바라보며 난처하게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알았어. 그러니 더 애원하지 않아도 괜찮아. 유한이라고 했지? 잘 부탁해.”

 

  소년은 자신의 앞에 불쑥 내밀어진 그녀의 손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환하게 웃으며 맞잡았다.

 

  “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릴게요!”

 

  자신보다 더 여자 같은 얼굴로 환하게 웃는, 자신과 똑같은 눈동자 색을 가지고 있는 소년을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살짝 웃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3.

  다행히도, 그녀가 다른 곳에서 왔다고 해서 그 것을 가지고 따돌림을 당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종종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은 있었지만 그건 그녀의 배경을 부러워하던 학생들로 극히 일부였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녀가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고, 그녀는 자연스럽게 학급에, 학교에 녹아들 수 있었다.

 

  그렇게 나름대로 즐거운 학교생활을 보내던 그녀에게, 18번째 생일이 찾아왔다.

 

  “생일 축하 합니다~”

 

  이사장은 그녀의 생일을 맞아 파티를 열었고, (그녀가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그녀는 파티의 주인공이 되어 생일을 축하받고 있었다.

 

  한창 생일파티를 즐기던 그녀에게, 생일 선물이라며 선물상자 하나가 낯이 좀 어두운 시종 하나에 의해 배달되어 왔고, 그녀는 그 것이 아리안트에서 온 제 아버지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파티를 열어줘도 평소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그녀는 급히 선물상자를 열었다. 목걸이였다. 그녀가 좋아하는 사파이어가 박혀 있는.

 

  “와아, 예쁘다!”

  “부럽다…!”

 

  여자아이들의 부러운 환호성이 터졌지만, 그녀는 그저 아버지의 선물이라는 생각에 기뻐 제 목에 목걸이를 걸었다. 그러자, 문득 아버지가 그리워졌다. 이번 방학에는 아리안트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아리안트에 있을 무렵 아버지의 시종을 맡고 있었던 것 같았던, 그녀도 몇 번이나 본 적이 있는 이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와 무언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그녀의 초록빛이 약간 섞인 푸른색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

 

  그녀의 눈에서 갑작스레 눈물이 터져 나오자, 다른 학생들은 당황해 저들끼리 수군거렸다. ‘왜 그러세요, 왜 우세요?’ 그녀가 특별히 허락했던 그녀의 유일한 하인인 유한이 그녀에게 다가와 물었지만, 그녀의 눈물이 그치는 일은 없었다.

 

  그 때였다. 이사장이 그 교실에 들어온 것은. 그는 굳어진 얼굴을 하고는, 울고 있는 그녀를 교실에서 끌어냈다. ‘파티는 취소다!’ 라는 말만을 남긴 채, 그녀를 데리고 교실 밖을 나섰다. 그 뒤를 안절부절 못하며 하인인 유한이 뒤따랐다.

 

  4.

  “이야기는 들었겠지?”

  “….”

  “말이 없는 것을 보니 들은 모양이군.”

 

  후작님께서 친구 분과 새로운 다이아몬드 광산을 준비하시다가 병으로 그만…. 이것이 아까의 시종이 알려준 이야기였다. 즉, 아버지가 친구와 함께 광산을 준비했고, 그러다 갑작스레 병이 생겨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였다.

 

  이사장은 거기에 그녀의 아버지가 전 재산을 걸었다고 덧붙였다. 즉, 그녀에게 넘어올 재산이 없다는 거였다. 그 것을 알아차린 이사장이 그녀를 따로 불러낸 것이다.

 

  “여태까지 네 아버지에게 받은 것들을 생각해서, 쫓아내지는 않겠다. 대신 너를 하인으로 쓸 거다.”

 

  이사장의 말에 그녀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아버지….’ 하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쯧. 작게 혀를 한 번 찬 이사장은, 그녀의 옆에 서있던 유한에게 ‘네 방의 옆방을 내줘라.’ 하고는 유한과 유린을 쫓아냈다. 유한은 하는 수 없이, 아직까지 울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그녀를 데리고 이사장실을 나섰다.

 

  5.

  다락방의 방은 비좁았다. 그녀가 체구가 큰 편이 아니었기에 다행이었지, 체구가 조금만 더 컸더라면 지내기 힘들었을 거다, 생각하며, 그녀는 익숙하게 심부름 바구니를 들었다.

 

  이제는 적응된 일이지만, 이사장은 그녀와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녀에게 허드렛일을 맡겼다. 빨래에 청소, 설거지까지. 평소 하인의 손에 맡기지 않는 그녀에게 그런 일들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게 된 것은 좀 아쉬웠지만, 그녀는 지금 자신의 일로도 바빠 그 것을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조금만 더 늦으면 이사장이 화를 내리라.

 

  “다녀올게, 리츠.”

 

  제 식량을 쥐에게 조금 뜯어준 유린은 심부름을 나섰다.

 

  6.

  “아, 죄송합니다….”

 

  음식 재료를 잔뜩 들고 학교로 돌아오던 그녀는, 학교 앞에서 부산스럽게 움직이던 남자와 부딪혔고, 그녀가 먼저 사과를 하자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나야말로 미안하다. 사과하지.”

 

  그녀는 손을 황급히 내저으며 자기보다 훨씬 큰 그를 올려보았다. 그리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잘생겼다….’ 라는 말이 무의식적으로 내뱉었다. 그런 그녀의 말에 무표정했던 얼굴에 아주 작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군. 그나저나 옆 학교의 학생인가?”

 

  그녀는 멍하니 그의 미소를 바라보다가, 그의 물음에 그제야 머뭇거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는 그녀의 손에 들린 장바구니를 흘긋 바라보고는 ‘하인인가….’ 하고 중얼거렸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쯧, 그는 작게 혀를 차는 소리를 냈다.

 

  “하인이라면 우리 아가씨가 찾는 사람은 아닌가보군.”

 

  ‘우리 아가씨?’

 

  그게 누구냐고 물으려던 차에, 그는 순식간에 옆의 저택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대화가 끊긴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었다. 얼굴은 살짝 붉어져 있었다.

 

  7.

  새벽녘, 그녀는 쌀쌀함을 느끼며 눈을 떴다. 창문은 분명 닫아놓고 잤는데…. 몸을 일으키자 제 이불이 묵직해져 있는 것이 느껴졌다. 눈을 깜빡였다. 제 이불 위에서 몸을 말고 자고 있는 검은 고양이가 있었다.

 

  “웬 고양이지…? 아니, 애초에 고양이가 어떻게 여기에 들어온 거지?”

 

  작게 중얼거리며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자, 고양이가 눈을 떴다. 황금색의 눈동자가 예쁘다고 생각할 무렵, 창문에서 소리가 났다. 잔뜩 경계하며 창문을 돌아보았다. 이전에 보았던 그 남자였다.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그녀가 그러건 말건, 그가 고양이를 향해 ‘네로.’ 하고 부르며 손짓했다.

 

  “야옹-.”

 

  고양이가 작게 울더니,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아까 그녀가 했듯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양이는 그의 손에 얼굴을 부볐다.

 

  “미안하군. 네로가 잠을 깨웠나?”

 

  “네…. 그렇지만 어차피 곧 일어나야 하기도 했고….”

 

  “그렇다니 다행이군. 네로가 워낙 호기심이 많아서 말이야.”

 

  그가 작게 웃으며 고양이를 품에 안은 그는 창문 안의 방을 둘러보며 그녀에게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런 곳에서 지내는 건가.”

 

  “아, 네, 뭐….”

 

  “아무리 하인이라지만 너무한 대우로군.”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방을 둘러보다가 작은 침대에 앉아있는 그녀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살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러다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그럼 이만. 하고 그녀에게서 등을 돌렸다. 아니, 돌리려고 했다.

 

  “아, 저기, 잠깐만요!”

 

  “뭐지?”

 

  “… 저, 실례라는 건 알지만, 혹시 성함을 여쭤 봐도 괜찮은가요?”

 

  “뭐, 이름 정도라면. 내 이름은 이카르트다.”

 

  “이카르트 님….”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곱씹는 것을 보며 그는 낮게 웃음소리를 내고는 정말 그녀에게서 등을 돌려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마지막에 등을 돌리기 전에 본 황갈색의 눈동자가 달빛을 받아 아까 전에 본 고양이의 눈동자의 색과 같은 금색으로 보였다는 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하지 못할 그녀의 비밀이었다.

  8.

  “유린 아가씨,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그러니까 이젠 아가씨가 아니래도. 그냥 이름만 불러.”

 

  “아니에요, 그럴 수는 없죠! 한 번 아가씨는 영원한 아가씨인걸요!”

 

  “의외로 고집이 세구나.”

 

  유린과 유한은 양손에 대걸레와 양동이를 들고 복도를 걸었다. 둘의 얼굴 여기저기에는 피곤했다는 것을 알려주듯 땀이 여기저기 걸려있었다. 유한은 대걸레와 양동이를 내려놓고 그녀의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잠시 멈칫했다.

 

  “응? 왜 그래, ㅎ…?”

 

  이내 그녀도 하던 행동을 멈추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깜빡였다.

 

  그녀의 방 안은 언제 그렇게 차가웠냐는 듯이 벽난로에 불이 때워져 있었고, 침대에는 얇은 이불대신 두꺼운 이불이 자리했다. 창문에는 커텐이 쳐져 있었고, 식탁에는 한가득 요리가 차려져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거지…? 유한, 네가 한거야?”

 

  “아뇨, 그럴리가요! 저도 여태까지 나가 있었는걸요.”

 

  “그럼 누가….”

 

  “그나저나, 아가씨. 저 요리는 어쩌실 생각이세요?”

 

  “글쎄…. 누가 준비해 주었든, 버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긴 하다만….”

 

  “그럼 어서 드세요! 힘드셨을테니, 드시고 영양 보충하셔야죠?”

 

  “… 힘든 것은 너도 마찬가지 아니었어? 그러지 말고 같이 먹자.”

 

  “… 네?! 제가 어떻게 감히 아가씨와 같이 음식을….”

 

  “괜찮으니 어서 들어오렴.”

 

  “감사합니다….”

 

  그녀의 말에 얼떨떨한 표정을 짓던 유한의 손을 그녀가 잡고 이끌었다. 모처럼 먹는 제대로 된 음식에 조금은 신이 난 듯 입가엔 가득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그런 그녀의 표정을 배신할 수 없었던 유한은, 이내 작게 웃으며 그녀의 방으로 들어섰다. ‘잘 먹겠습니다.’ 그녀의 조용한 인사가 방안을 울렸다.

 

  9.

  “내일부터는 2인분을 준비해야겠군.”

 

  커텐이 처져 보이지 않는 창문 밖에선 검은 머리를 하고 있는 남자가 작게 중얼거리고 있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10.

  그 뒤로도, 그녀의 방에는 계속 변화가 생겼다. 첫날만 1인분의 식사가 올라왔을 뿐, 그 다음날에는 계속 2인분이 준비되어 있었고, 시설도 점점 좋아졌으며, 이후에는 따뜻한 옷도 준비가 되었다.

  그녀가 그 일을 점점 곤란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녀는 안절부절 못하며 방안을 배회했다.

 

  “이러다간 이사장님께 들키고 말텐데….”

 

  어쩌지…. 입술을 꼭 깨문 유린이 혼잣말을 했다. 그 이야기를 창밖에서 듣고 있던 그도 차마 그걸 생각하지 못했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그 이사장이라는 놈이 문제로군….”

 

  ‘그나저나 외모는 아가씨가 찾는 분과 많이 닮았는데 말이야.’ 들리지 않을 말을 중얼거린 그는 이내 창문에서 뛰어내려 저택으로 되돌아갔다.

 

  11.

  “이카르트. 요즘 많이 바빠 보이네요?”

 

  “아, 시그너스 아가씨. 네, 갈 곳이 있어서 조금.”

 

  “…, 후후. 제게는 숨길 필요 없는데 말이에요. 옆의 학교에서 하인으로 일하는 아가씨 때문인 건 다 알고 있답니다.”

 

  “그건, 어떻게….”

 

  “나인하트가 알려줬어요. 요즘 이카르트가 계속 그 곳에 가고, 옷이며 음식 재료를 사들이고 있다고. 도대체 어떤 아가씨이기에 평소 남에게 관심이 없는 이카르트가 이렇게 신경을 쓰는 걸까, 저도 궁금해지던 차였답니다.”

 

  저택의 복도를 걷다가 시그너스와 마주친 이카르트는 살짝 놀란 표정으로 시그너스를 바라보았다. 시그너스도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인자하게 웃었다.

 

  “조만간 한 번 이곳에 데리고 와요. 그 곳의 이사장에게는 제가 말해둘게요.”

 

  “…, 당신의 명대로.”

 

  이카르트는 허리를 숙여 시그너스에게 예를 표했다. 시그너스는 웃으며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를 지나쳐서 복도를 걸어갔다.

 

  12.

  “… 어라, 편지?”

 

  유린은 오늘은 화려한 요리 대신 빵과 우유와 함께 탁자 위에 놓인 편지를 잡아들었다. 굉장히 고급스러운 종이 재질이었다. ‘누가 편지를 보낸거지?’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편지 봉투를 열었다.

 

  ‘당신을 우리 저택에 초대합니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시그너스로부터.-’

 

  “시그너스? …, 내가 아는 그 시그너스?”

 

  에이, 설마…. 아리안트에 있을 제 하나뿐인 친구였던 시그너스가 왜 이 곳에 있겠는가. 그렇지만, 그러기엔 시그너스의 친필 사인도 동봉이 되어 있어서, 그 것을 본 이후에는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그너스가 이 곳에 와있으며, 그녀를 제 저택에 초대한 것이다. 설마 시그너스가 제가 이곳에 있는 것을 알고 보내준 걸까?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쳐갔다. 그렇지만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13.

  “… 정말 시그너스잖아?”

 

  “…, 유린? 정말 유린인가요?! 세상에, 이게 어떻게 된 거에요?”

 

  그녀가 저택에 초대된 날. 그녀는 시그너스가 바로 옆집에 이사 왔던 부자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눈을 깜빡였고, 시그너스는 제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이가 제가 직접 적은 초대장에 의해 초대된 손님이라는 걸 알고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절대로, 이렇게 하인 일을 할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시그너스는 유린의 모습을 보고 눈시울을 붉혔다.

 

  “설마, 이렇게 다시 보게 될 거라곤 생각 못해봤어. 잘 지냈어?”

 

  “물론 전 잘 지냈어요! 오히려 잘 못 지낸 건 유린이잖아요?”

 

  “…, 나도 잘 지냈어.”

 

  “거짓말…. 물론 이카르트가 이거 저거 챙겨 줬다고는 하지만….”

 

  “뭐…? 이카르트 님이?”

 

  “네, 몰랐나요? …, 물론 이카르트가 하는 일이니까 그 무엇보다 비밀스럽게 처리했을 테지만, 이카르트가 사람을 이렇게 챙기는 사람이 아니어서….”

 

  시그너스는 울먹거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럴수록 유린의 표정은 오묘하게 변해갔다.

  놀랐다가, 당황했다가, 마지막에는 얼굴을 붉혔다. 시그너스는 그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가, 이내 그녀에게 작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이제라도 당신을 찾았으니까 다행이에요.”

 

  “날, 찾아다니고 있었어?”

 

  “물론이죠…! 그걸 말이라고 해요? 분명 그 학교에 있을 거라고 했는데 아무리 봐도 학생 중에는 없어보여서 포기해야 하나 하고 하고 있었는데…. 설마 하인이 되었을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아버지의 사업이 망했다고 하셔서, 그렇게 되었지….”

 

  “…, 네? 그럴 리가 없어요. 후작님의 사업은 망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크게 성공해서, 함께 하셨던 저희 아버지와 집안은 엄청난 부자가 되었죠. 그러자, 아버지는 당신을 찾고 싶어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당신을 찾아다니고 있었던 거랍니다. 저희 집안의 재산 절반은 당신의 것이에요.”

 

  “…, 그렇구나. 아버지는 실패하지 않으셨구나.”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이라며 그렇게 지키려고 애를 쓴, 제 목에 걸린 목걸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목걸이를 손에 그러쥐었다. ‘다행이다. 고마워요.’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시그너스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14.

  “그래서, 이곳에서 함께 지내줄 건가요?”

 

  “응. 너와 너와 함께 지내는 하인들이 허락해 준다면.”

 

  “물론 허락해 줄 거예요.”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시그너스에게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시그너스는 그제야 그녀를 꼬옥 끌어안았다.

 

  “다행이에요! 거절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거절할 리가 없잖아? 내 친구인 너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데 말이야. 아, 그렇지만….”

 

  “응?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응. 내가 데리고 있던 전담 하인을 이곳에 데려올 수 있나 싶어서….”

 

  “물론이에요. 당신이 원한다면 말이에요.”

 

  “그리고….”

 

  “그리고?”

 

  “이카르트 님을, 내게 줄 수 있어?”

 

  “이카르트를?”

 

  의외라는 듯 시그너스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어째서 그를 자신에게 달라고 하는 걸까, 시그너스는 빤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말을 한 그녀의 얼굴은 붉어져 있었다. ‘아-.’ 하고 시그너스가 짧게 소리를 냈다.

 

  설마 그녀가 그를 좋아하게 되어버린 걸까? 그래서 그를 자신에게? 거기다 그는 기본적으로 남에게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다. 그런 그가 그녀를 그렇게 신경 써 주었다는 것은, 그도 그녀에게 관심이 있다는 뜻이리라. 후후, 시그너스가 입을 가리고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15.

  “어서 와, 한!”

 

  “네, 아가씨! 지금 나갈게요!”

 

  “늦군.”

 

  “늦어서 죄송하네요!”

 

  유한은 짐을 챙겨서 자신이 지내던 다락방을 나섰다. 그 곳에는 다시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는 유린과, 그 옆에서 그녀를 지키듯 서있는 이카르트에게로 다가갔다. 유린은 웃으며 유한을 향해 입을 열었다.

 

  “다시 한 번 잘 부탁할게, 한.”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아가씨!”

 

  유린의 말에 감격을 받은 듯한 한이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듯 외쳤다. 그 것을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지켜보던 이카르트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린과 나 사이를 갈라놓을 생각은 하지 말고.”

 

  “안하거든요!”

 

  ‘쳇, 아가씨의 연인만 아니었어도!’ 라고 유한은 투덜거리며 먼저 등을 돌려 이야기를 나누며 저택으로 돌아가는 이카르트와 유린의 뒤를 따랐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그 망할 이사장에게, 혀를 한 번 내밀어주는 모습을 보여주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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