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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멈출 줄 모르는 굳센 강처럼 유연하고 부드럽게 흐르는 그녀의 머리칼은 제 몸을 태우는 눈부신 별이 가득 박힌 밤하늘과도 같아서, 모두들 그 머리칼을 시샘어린 시선으로 부러워했더랬다. 견우라는 호를 가진 쵸로마츠라는 남자와 혼인을 올리는 날도 사람들의 시선을 모두 빼앗은 눈부심에 하객들은 세상에 둘도 없는 보석 같은 신부를 얻었다며 그들의 앞길이 영원히 환할 것이라 축복했다. 쵸로마츠도 그녀의 흔치 않은 아름다움을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대단한 것이라 여겼다. 은하수. 미리내라는 이름의 이미를 담고 있는 공활한 우주도 그녀의 빛남과 매우 걸맞은 것이라, 저를 보며 빙긋이 웃어주는 미소를 눈 안 가득히 담으며 여러 번 곱씹었다.

  말 잘 듣는 착한 아들로 스무 해를 살아 온 제게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불분명한 어느 지점부터 많은 것이 변해가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혼자서 어두컴컴한 새벽을 맞이하던 일상이 눈을 뜨면 저보다 일찍 일어나 저를 보며 환한 미소로 반겨주는 사람이 존재하는 밝은 일상으로 바뀌었고, 아무리 말을 걸어도 대답 없던 소와만 하루의 전부를 보내던 딱딱한 시간이 이제는 제 말을 듣고 상냥하게 흐르는 목소리로 하나하나 고운 대답까지 해주는 사람이 존재하는 따뜻한 시간으로 바뀌었다. 확연한 차이였다. 저를 보며 웃어주는 사람이 생긴 일상은.

  제 인생 중 그 어느 순간보다도 즐거운 일이었기에 그들은 단 한순간이라도 서로에게서 떨어지고 싶지 않아했다. 미리내는 제 이야기를 무엇보다 귀중히 여겨주는 쵸로마츠의 푸근한 태도가 손에서 꼭 끌어안고 싶을 만큼 소중했고, 쵸로마츠에게는 저와 눈을 마주치기만 하면 입가에 미소를 그려주는 미리내의 향기로운 웃음이 품에 그러안고 싶을 만큼 소중했다. 어쩌면 사람의 모든 것이 다 사랑스러워 보일 수가 있는지. 그들은 일언반구도 없이 서로를 투명한 눈에 담고 있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훌쩍 가버렸다. 서로의 반쪽을 쉬이 내어줄 정도로 소중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직까지도 믿기지 않았다. 한 달을 1년, 1년을 10년으로 생각할 만큼 그들의 시간은 여느 사람들과 다르게 더 길게 길게 늘어갔다. 태어나는 숭고한 순간부터 함께 보내왔다는 듯이.

  제 사랑하는 아내에게 선물을 해 주고 싶던 쵸로마츠는 미리내 몰래 주변 아낙네들을 찾아가 머리 땋는 법을 배웠더랬다. 평생 긴 머리라고는 만져본 적이 없는 손. 봄날의 푸릇하고 여린 새싹이자 별하늘을 담은 빛나는 머리칼을 제 손으로 직접 곱게 땋아주고 싶었다. 별 것 아닌 선물이지만 그녀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까. 제가 땋아준 머리를 보며 기쁨에 가득 차 웃고 있을 그녀를 생각하니 가슴 한 켠이 또 콩콩, 소리를 내며 빠르게 뛰었다.

쵸로마츠는 꽃을 한 아름 꺾어다 품에 가득 안았다. 그녀의 빛남에 묻히지 않을 보드랍고 하얀 살결을 가진 상사화. 제 몸을 휘어진 활처럼 만개한 꽃잎이 유독 아름다운 아이.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를 등 뒤로 느끼면서 쵸로마츠는 모든 것을 제쳐두고 서둘러 제 사랑에게 달려갔다. 저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맑은 강물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을 제 사랑을 위해.

  한 가닥 한 가닥 천천히, 쵸로마츠는 제 손길을 따라 고요히 흐르는 머리칼을 매만지며 제가 그동안 연습한 것을 전부 보이려 애썼다. 잘 할 수 있을까. 제 몸을 온통 뒤덮은 긴장으로 자꾸 손이 헛나가는 것을 꾹꾹 눌러 참으며. 괜찮아. 너무 긴장하지 마. 제 손에 들어와 있는 그녀의 머리칼이 제게 그렇게 속삭이는 듯 했다. 최고의 침묵이었다.

  엉성하게 완성된 머리에 마지막 꽃을 꽂았을 때, 쵸로마츠는 숨이 턱 풀리는 것을 느꼈다. 제 눈으로 들어오는 눈부심. 그녀가 마음에 들어 할까, 고민하는 순간 뒷모습은 스스로가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이제야 떠올랐다. 그녀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데 그녀가 볼 수 없다니. 끝났나요? 라고 제게 물어오는 그녀에게 쵸로마츠는 허둥대며 아, 네. 끝났는데. 라며 말끝을 흐렸다. 기운 없는 목소리에 미리내는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돌려 고생한 손을 꼭 그러잡고 저를 똑바른 시선으로 마주하며 언제나와 같은 미소로 바라보며 속삭였다. 당신의 눈에만 아름다워 보이면 그걸로 저는 충분하답니다. 고마워요. 서방님. 오늘도 그 말 한마디에 스르륵, 녹았다.

  그날이 방아쇠가 되어 사랑이라는 아이는 범잡을 수 없을 만큼 무럭무럭 자라났다. 서로를 바라보는 것에 중독되어 둘은 원래의 의무도 모두 잊어버리고 하루의 모든 시간을 사랑하는 일에만 부었다. 제 머리칼과도 같이 부드러운 베틀을 돌리는 것도 뒤로 하고, 단단한 땅을 제 성품처럼 푸근한 땅으로 갈아 놓아야 하는 일을 뒤로 하고. 결국 소는 이끌어줄 사람이 없어 사람들이 정성 들여 가꾸어 놓은 꽃밭을 온통 망쳐 놓았고, 베틀은 멈추어 궁 안의 사람들이 입을 옷이 없어졌다. 당연히 왕은 분노했고 결과는 둘을 떨어트려 놓는 것. 그것 말고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땅한 벌은 없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였지만 황제의 명이였기에 둘은 절대로 붙을 수 없는 머나먼 거리에서 서로를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다. 사랑이 과해서 벌을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애통하고도 억울한 일이었으나 저들의 죄를 잘 알기에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허공으로 흘릴 뿐이었다. 눈물은 넘치고 넘쳐 웅덩이를 이루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 하나가 푹 빠질 강을 이루었다. 맑고 슬픔 가득한 강. 시간이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이 많이 흘러도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그들의 모습을 하늘에서 지켜보던 까마귀들은 탄식을 자아냈다. 서로 만나지 못해 흘린 눈물이 범람하는 강을 이룰 정도로 저렇게나 슬퍼하는데 황제께서는 왜 그 너그러운 마음으로 한 번 자비를 베풀어 주시지 않고. 까마귀들은 부부를 딱히 여겨 제 몸을 버려서라도 일 년에 딱 한 번 그들을 만나도록 해 주고 싶어 했다. 하나 둘. 점점이 모여 그 누가 건너도 무너지지 않을 단단한 다리가 만들어 져서 7월 7일이라는 날. 뼈저리게 서로를 그리워하던 부부는 은하수가 머리칼보다 환히 빛나던 날 까마귀들의 등을 타고 각자의 체온을 부둥켜안았더랬다. 눈물로 흐릿한 시야 속에서 서로를 보고 웃는 미소를 눈 속 가득히 채워 넣으면서. 7이라는 숫자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서로에게서 시선 한 번 떼어놓지 않으면서. 그렇게 그리워하던 사랑이라는 아이를 가슴 깊숙이 쌓아갔더랬다. 까마귀가 사라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의 손끝을 매만지면서.

  견우와 직녀는 7월 7일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빛나는 머리칼보다 더 환한 미소와 부지런한 성격보다 소중한 다정한 목소리를 나란히 마주하기 위해서. 단 한 순간도 사랑을 잊지 않고 무럭무럭. 7월 7일만을 기다렸다. 은하수가 그들의 머리위에서 반짝이는 순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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