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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랑팔랑, 창문 밖의 바람개비가 바람에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병원 특유의 냄새도 코를 쿡쿡 찔러와서 잠시 희미했던 의식이 번쩍 돌아왔다. 어쩌다가 잠들어버린 듯 싶었다. 고개를 들자 그 앞에는 곤히 잠든 너가 있었다. 새근새근거리며 그에 맞춰 흉부가 움직이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어린 아이같은 숨소리가 병실을 작게 메워갔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애쓰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이다, 깨어나지는 않았단 말이지..."


혹여나 자는 사이에 큰 소리를 내거나 해서 너에게 들켰다면 그건 나름대로 큰일이었다. 낮이기도 하니 더욱 더 깨기에는 쉬우니까. 후원자로써 몰래 너를 지원하고 있는 내가 그렇게 간단히 정체가 탄로난다면 무슨 보람이 있을까. 침대 구석에 놓았던 중절모를 조심히 들어올렸다. 약간 눈꺼풀을 움직인 느낌이 들어서 당황했지만, 조만간 조용해졌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계속 있는다면 일어나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안타깝지만, 오늘은 이제 돌아가는 게 나은것 같았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비어있는 꽃병에 몇개의 꽃을 놓아두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서 보면 좋아하겠지, 아마. 기뻐하면 다행이라며 조금씩 웃었다. 그리고 조심히 자리를 빠져나왔다. 아직도 정적에 찬 병실의 문을 닫았다.


"...그래, 그러면 된거야. 웃는다면 된거지."


어째서인지 흘러나오는 씁쓸함을 애써 참아가며, 나는 병원을 나왔다.

 

안녕하세요, 사사키 미우입니다.

이렇게 편지를 쓰는건 익숙하지 않아요. 겨우 쓸만한 상태가 되어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사실 병원의 간호사가 전해준다고 해서 말하는거지만, 저는 당신이 누구인지 전혀 몰라요. 왜 굳이 저를 도와주는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아주 상냥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분명히 알수 있었어요. 아니라면 저를 후원할리가 없다는 건 당연하니까요. 정말 감사하다고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제 걸어다닐수도 있는걸요! 어쩌면 밖에서 우연히 당신을 만날지도 몰라요. 저는 모르고 지나치겠지만, 당신은 저를 알아보겠죠? 그때는 꼭 저에게 말을 걸어주세요. 항상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을거에요.


지난번 편지를 보셨나요? 자는 도중에 찾아오시다니, 너무 비겁하세요...얼굴도 보지 못했다구요. 얼핏 중절모를 본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그 것만 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걸요. 저만 당신을 못 보는건 너무 아쉬웠어요. 잠든 저를 보는건 즐거웠나요? 즐겁다고 말할수도 없을까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항상 당신이라고 부를수는 없으니까 이름을 붙여드릴게요. 중절모 아저씨, 어떤가요? 물론 아저씨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붙여봤어요. 마음에 들어하시면 좋겠네요. 답장에 괜찮은지 대답을 적어주세요. 이것저것 다른 이름도 생각해두고 있으니까요.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요.


답장은 빨리 왔는데, 한달만에 다시 보내게 되네요. 재활로 밖에 다니는 일이 많아서 그랬답니다. 조금은 이해해주실거라고 믿어요. 밖에서도 중절모만 보면 아저씨 생각이 잔뜩 났었어요. (제가 보기에는) 엄청 멋진 모자도 있었고, 선물로 드리고 싶었는데 못 샀네요. 애초에 아저씨가 보기에는 멋지지 않을테니까, 으음...사지 않는게 나았으려나요. 병원의 사람들한테 아저씨에 대해서 들을수 있었어요. 항상 중절모를 쓰고 있고, 하프보일드고, (사실 하프보일드가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러면서 저를 지켜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구요. 항상 보고싶어요. 만나면 껴안아주고 싶다고 해야할까요, 감은 잘 안 잡히지만요.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깨어있을 때 찾아와주세요. 중절모 아저씨라면 반드시 알아볼수 있을거에요.

 

살랑거리는 부드러운 바람이 부는 병원에서, 눈을 감고는 침대에 앉아있었다. 남자가 보내주었던 꽃의 달콤한 향기를 느끼며 앉은 채 잠든 듯한 소녀의 모습은, 마치 그림과도 같았다. 소녀의 짧은 머리카락도 그에 맞춰 조금씩 흩날렸다. 소녀가 조금씩 눈꺼풀을 들어올렸을 때, 그 곳에는 중절모를 쓴 탐정이 있었다. 작고 여린 목소리가 병실에 울려퍼졌다.


"...아저씨?"

"아아, 그래. 아저씨다. 나이 차이는 얼마 나지도 않지만 말이지."


탐정은 가벼운 손짓으로 소녀에게 자신의 모자를 씌워주었다. 이 순간이 꿈과도 같았던 소녀는, 멍하니 머리 위의 모자를 가져와 껴안을 뿐이었다. 그 눈에 말할수 없는 기분이 잔뜩 들어차있다는 사실을 안 남자는 웃었다. 이런 순간을 위해 계속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보잘것 없는 도움이 되겠지만, 그 것으로 이렇게 웃을수 있다면. 따뜻하고 부드러운 기분이 공기를 잔뜩 메워갔다.


"저..."

"응?"

"...이름을, 알려주세요. 아저씨의 이름을..."

"내 이름이라...히다리 쇼타로, 라고 해. 탐정이야."

"히다리 쇼타로...정말로 좋은 이름이에요. 하나 더 부탁해도 될까요?"


그 말과 함께, 소녀는 껴안고 있던 모자를 탐정의 머리 위에 씌워주었다. 가볍게 내려앉은 모자를 붙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기다리는 순간이 마치 영원 같다고 생각했다. 약간은 어색하게 굳어있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지고,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을 타고 목소리가 퍼져갔다. 그 때, 소녀는 분명히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쁘면서도 한 없이 불안한 마음을 간직한채로. 


"이게 현실이라고...알려주세요. 꼭 꿈을 꾸는 기분이에요. 제가, 아저씨를 만났다고 믿을수 있게..."


긴장된 탓이었을까, 소녀의 손이 조금씩 떨려왔다. 눈을 꼭 감고는 불안한 생각만을 되뇌었다. 너무나도 바랐던 일이기에 더욱 더 그랬다.

어쩌면 정말 꿈일지도 몰라, 단순히 착각한게 아닐까, 아저씨는 내 앞에 없을지도─────


─────그 마음이 마술과도 같이 녹아버렸다.

몸은 가볍게 감싸여지고, 온기가 맞닿아왔다. 기억에 처음으로 남은 온기가 어색해서, 조심스럽게 마주 안았다. 그 뒤로 들려왔던 탐정의 목소리는 소녀에게 영원히 남았으리라.

"나는 여기에 있어, 미우."

소녀의 곁에는 탐정이 있었다. 아마도,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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